<『클래식으로 이해하는 세계사/クラシックでわかる世界史』와 한국어 번역본>
일본인 음악학자 니시하라 미노루(西原稔、1952-)의 『클래식으로 이해하는 세계사/クラシックでわかる世界史』(아르테스퍼블리싱アルテスパブリッシング, 2007초판, 2017신판)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음악사’이기보다는 ‘세계사’에 무게가 실려 있다. ☞ 책 정보 보기
이 책에서는 종교개혁으로 대표되는 16세기를 출발점으로 절대왕정, 프랑스 혁명, 빈 체제를 거쳐 1차대전이 종결되는 1920년까지, 서양 역사의 주요 장면과 클래식 음악이 교차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이와 같은 서술 방식의 특성상, 일반적인 서양음악사에서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는 몇몇 인물이나 작품들에 관한 뒷이야기들이 상세히 다루어지기도 한다.
석사과정 진학을 준비하던 2011년을 전후해서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고, 특히 12장 “저물어 가는 유럽 1890-1914” 부분은 일본 근대의 서양음악 수용을 주제로 했던 학위논문에도 어느 정도 참고가 되었다. 챕터의 제목만으로는 세기 말에서 1차 대전에 이르는 유럽의 혼란을 요약하는 듯하지만, 여기에는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세계 각 지역으로 흩어진 음악가들이 상세히 언급되며, 그 중에서도 체레프닌(Alecksandr Tcherepnin 1899~1977)을 비롯해 일본에 정착해 활약한 러시아인 음악가들의 활약에 적극적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서문에서부터 11장까지 이 책에서 서유럽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온 역사의 무대는 12장에 들어서 급격히 도쿄(東京)로 이동하며, 서양음악 분야에 종사한 일본인 1세대에 해당하는 야마다 코사쿠(山田耕筰, 1886-1965)와 코노에 히데마로(近衛秀麿, 1898-1973)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을 거쳐 브람스와 말러로 이어져 온 서양 클래식 음악가 계보에 합류하게 된다.
동아시아 최초의 서양음악 전문 교육기관인 도쿄음악학교는 1887년에 설립되었고, 1889년 메이지 헌법 제정으로 일본의 근대화와 서구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12장에서 논의되는 시기는 바로 이때와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1898년에는 도쿄음악학교 초기 졸업생들 중심의 연주모임인 ‘메이지 음악회’가 결성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배경들을 아우르며, 이른바 ‘클래식으로 이해하는 세계사’의 한 부분에 ‘일본 근대사’를 편입시키려고 시도하는 셈이다. (덧붙여 주지하듯 한반도가 일본에 강제합병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이 책은 『클래식을 뒤흔든 세계사』(북뱅, 2016)라는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 되었다. 발매 이후 꾸준히 대형서점 매대의 좋은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책이 적지 않은 존재감을 지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어판에는 각 장에서 언급되는 주요 음악가와 작품들에 관한 요약글을 보기 좋게 편집해 두어서, 얼핏 교과서로의 활용을 의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에 관한 교양서가 드문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 정도의 읽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책 정보 보기
그러나 번역본에서는 이 책 12장의 특수성에 관련한 별도의 해설이나 주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최근의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드물게 역자서문이나 저자가 작성하는 한국어판 서문도 첨부되어 있지 않았다. 음악사에서 뿐 아니라 전반적인 역사의 흐름에서도 중요한 시기에 관련한 내용을 다루는 데서, 일본인 저자의 관점을 아무런 배경설명 없이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