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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hun Mar 25. 2024

NHK 교향악단의 역사

佐野之彦, 『N響80年全記錄』, 文藝春秋 2007.

佐野之彦, 『N響80年全記錄』, 文藝春秋 2007.


일본의 첫 전문 오케스트라 단체인 ‘신교향악단’을 모체로 1926년에 처음으로 결성된 NHK교향악단이 80주년을 맞이하던 2006년에 간행된 책이다. 오늘날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단체 결성 초기의 상황과 전시체제의 삼엄함 속에서 이루어진 연주의 배경들을 비교적 상세히 서술하고 있어서, 일본 근대의 오케스트라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는 한편, 상당한 놀라움을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https://www.amazon.com/N響80年全記録/dp/4163685901


메이지 초기 서양식 외교 공간이었던 ‘로쿠메이칸’ 중심의 서구 문화 학습 시기에는 전문 연주자를 대신해 취주악 중심의 육해군 군악대가 활약했고, 황실의 전통음악 계승 단체인 궁내성 악부 단원들이 서양음악을 학습하며 공식적인 자리에서 연주를 맡게 되었다. 이후 전문 음악가 양성기관으로 1888년 개교한 도쿄음악학교를 중심으로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클래식 음악 지도가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다.  


1920년대에 접어들며 화족 가문 출신의 지휘자 코노에 히데마로와 초창기의 서양음악 작곡가 야마다 코사쿠를 중심으로 일본인 연주자들로 구성된 전문 오케스트라 결성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일본의 초기 오케스트라 결성 과정이 민간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의 ‘공적인’ 기획이었다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여러 배경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924년 야마다가 기획한 ‘일러교환교향관현악단연주회’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1925년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도쿄방송국은 이후 일본방송협회로 조직을 정비해 일종의 정부 산하 기관으로서 역할을 했는데, 여기서 신교향악단의 초기 형태인 일본교향악협회를 지원하고 연주회 방송을 내보낸 것은 오케스트라 역사에서는 물론, 일본의 초기 방송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신교향악단에서는 서양인 지휘자를 초빙해 계약하고, 일본에 방문하는 서양 연주자들의 협연도 적극적으로 기획했다. 그러나 전시체제에 접어들면서 동맹국이었던 독일의 영향을 반영하는 레퍼토리가 두드러지거나 유태인 연주자를 배척했던 사례들이 전해지고 있는 부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시체제에도 국책에 따라 정기연주회를 한 번도 중단하지 않고 진행할 수 있었고, 종전 이후에는 NHK교향악단이라는 명칭으로 일본의 외교를 비롯한 국가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오는 등, 일개 문화단체가 아닌 국가 단위의 정책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던 부분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1940년(쇼와 15) 9월 일본은 독일, 이탈리아와 ‘삼국군사동맹’을 체결하고, 미국과 영국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해는 황기 2600(신무천황이 즉위한 것으로 알려지는 시기부터 계산한 연대) 기념하는 행사들이 성황을 이루었다


신교향악단에서는 4월 3일의 예능제 제정교향작품 1회 발표연주회, 11월 26일 2회 발표연주회, 6월 11일의 건국제 제정기원 2600년 기념곡 발표연주회, 11월 22일 기원 2600년 봉축 대연주회를 진행했고, 12월 7일부터 시작된 봉축 대연주회는 당시 일본 음악계의 인원들을 총동원한 대규모 행사로 기록되어 있다. 신교향악단, 중앙교향악단, 도쿄방송관현악단, 궁내성 악부, 도쿄음악학교, 星桜취주악단 단원들이 모여 ‘기원 2600년 봉축 교향악단’을 위한 大오케스트라가 결성되었다. 



이제 곧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NHK교향악단에서 어떤 방식의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전시체제의 활동에 관련한 더욱 구체적인 사료들이 공개되기를 바라고, 이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더 활발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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