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2023 전국 초등 축구리그 인천 스플릿 B 경기를 한다. 8월-9월 2달간 이어지는 초등리그. U12 (초등학교 6학년) 경기다. 5학년인 아들은 6학년 경기를 올려 뛰기 할 수 있어 매주 수요일 구단 차를 타고 송도 LNG 축구장으로 향한다. 딸 케어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집결 시간 (보통 경기 시작 1시간 전) 까지는 직접 데려다 주기는 힘들다. 갈 때는 구단 차로, 올 때는 근처 사는 다른 친구 부모님 차를 얻어 타고 오거나 시간적 여유가 될 때 경기도 관람할 겸 내가 데리러 가기도 한다.
이번주 수요일 경기 Kick-off 시간은 19시. 이 날은 내 생일이기도 해서 아들 경기 끝난 후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남편과 딸까지 함께 경기장에 갔다. 오후 내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고 날이 찼다. 경기 시작 전에는 비는 그쳤지만 강한 바람이 계속되었다. 오늘도 체력 소모가 심한 경기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U12 경기라 아들은 교체 선수로 짧게 뛰는 날이 많았다. 본인 학년 경기가 아니니 송도 구장으로 응원 갈 때면 그라운드에서 뛰지 못할 수도 있다 생각하고 편하게 간다. 그런데 오늘은 선발로 뛴다. 오랜만에 남편도 아들 경기를 보러 왔는데 선발로 뛰니 일단 기분이 좋다.
포지션은 오른쪽 윙. 위아래를 길게 뛰며 공격과 수비를 함께 한다. 최근 구단 전술이 바뀌면서 아들 포지션도 센터백에서 오른쪽 윙으로 바뀌었다. 아들 말로는 다른 포지션보다 움직임이 많고, 힘든 포지션이라고 한다. 유소년 경기는 포지션 변화가 자주 있어서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모르니 그냥 다 잘해야 한다고 한다. 축알못 엄마는 포지션이고 뭐고 그런 거 잘 모른다. 그저 교체되지 않고 운동장에서 오래 뛰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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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예상외로 접전이었다. 상대팀 순위가 아들 팀보다 낮아서 아이들도 좀 수월한 경기가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공격을 주도하지 못했다. 전반전 중반부, 골대 앞까지 내려와 수비를 하던 아들은 상대팀 슛을 클리어링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클리어링이 되지 않아 세컨드 슛을 허용했고, 아들의 오른발을 살짝 비껴지나 골인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골에 모든 선수들이 당황했다. 아들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머리를 감싸며 속상해했다. 모든 선수들이 얼른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6학년 경기는 템포가 굉장히 빨라 집중하지 않으면 전세가 역전되는 것은 순간이다. 아직 성장하는 아이들이라 같은 학년이라도 피지컬 차이가 있어 효율적이고 영리하게 플레이를 해야 한다. 5학년이지만 키가 큰 편에 속해 올려 뛰기를 한다 하더라도 6학년 형들과의 경기는 제대로 긴장해야 한다. 중간중간 좋은 수비도 했고, 괜찮은 패스도 많이 했다. 슛 찬스도 있었지만 아쉽게 골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아쉬움을 남기고 전반전은 1:0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아들은 교체되었고 후반전 내내 경기장 바깥 라인에서 기본기 훈련을 했다. 멀리서 아들의 모습을 보니 좀 기운이 빠져있는 것 같았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아들이 뛰는 팀이 이겨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를 간절히 바랐다. 축알못 엄마가 보기엔 전반전보다 후반전의 경기가 훨씬 나아 보였다. 아들이 안 뛰어서 경기가 더 잘 풀리는 건가? 이런 생각도 잠깐 들었다만 비합리적인 의심은 거두기로 했다. 여러 번의 좋은 찬스가 있었지만 결국 경기는 1:0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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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아이들은 감독님의 지도와 훈계(?)를 듣고 각자의 짐을 챙겨 귀가 차량에 탑승했다. 차에 탄 아들은 말이 없다. 얼굴이 죽상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오늘 나 때문에 졌어"라는 짧은 대답만 했다. 핫스팟을 켜달라더니 같은 팀 학부모님이 찍어주신 경기 영상을 보며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복기한다. 밤 9시가 다 된 시간에 도착한 식당에서도 밥만 먹고 말이 없다.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다가 사라진다.
"누구나 다 실수를 하고, 꼭 너 때문에 진 건 아니잖아. 중원에서 잘 막았으면 슛 찬스 자체가 아예 없었을 텐데. 안 그래? 니 탓이 아니야."라고 말을 했더니 "엄마가 모르는 게 있어"라는 짧은 대답만 한다. 집에 귀가하는 동안에도 말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아들.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생각하고 더 이상 말을 안 시켰다. 경기를 이기고 온 날도 크게 기뻐하지 않고, 지고 온 날에도 크게 자책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오늘은 좀 다른 날인가 보다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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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보다 보면 아들이 잘하는 순간보다 실수하는 순간을 더 많이 기억한다. 잘하는 건 당연한 거라 그다지 기쁘지 않다. 하지만 잘못한 게 눈에 보이면 '저래가지고 무슨 축구선수를 하겠냐' '딱 봐도 재능 없는데 그만 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팍 튀어 오른다. 잘할 때는 손흥민, 이강인 선수처럼 될 수 있겠구나 한 껏 들떠있다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쟤는 딱 여기까지야'하고 선을 그어버린다. 어떤 경기에서든 실수하지 않는 선수는 없다. 50분 내내 완벽하게 뛰는 아이도 없다. 그런데 내 아들만큼은 완벽하길 바란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 리 없다만 축구시키는 학부모 마음은 늘 중간이 없다. 일부러 흠잡으려는 건 아닌데 장점이 아니라 단점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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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선수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있다. 반면 대학 때까지도 눈에 띄지 않는 선수가 있다. 어릴 때부터 쭉 잘해온 선수가 있는 반면, 늦게 터지는 선수도 많다. 그러니 아이들이 언제, 어떻게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 아무리 초등학생이지만 본인의 단점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유소년 축구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으니 늘 부족한 느낌에 시달리고,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아이들이 대분이다.
이런 마음으로 운동하는 아이들에게 부모까지 보태서야 되겠는가 생각하지만 늘 마음과는 반대로 말이 나간다. 장점만 보고 응원만 해줘도 모자랄 판인데 된다 안된다를 섣불리 판단한다. 그저 운동하는 게 즐겁다면 그걸로 된 건데도 너무 먼 미래를 보고 너무 큰 꿈의 잣대를 들이댄다. 잘하고 있는 아이를 억지로 끌어내리려는 못난 마음이 자꾸 꿈틀 거닌다.
"너 때문이 아니야"
이 말을 다시 한번 해주고 싶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동안 기분이 많이 풀린 아들 얼굴을 보니 다시 말을 꺼낼 필요는 없겠다 생각했다. 엄마에게 입 뽀뽀를 하는, 아직은 비글미 넘치는 초등 5학년. 그저 사랑스러운 아들이 다친 곳 없이 안전하게 경기를 끝냈구나 그거 딱 하나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