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희 Jun 10. 2016

진로고미니스트를 위하여 #2. 포토그래퍼 이성원 인터뷰

성실하다는 평판? 나와 잘 맞는 일을 택한 행운의 결과죠.

 사실 이 인터뷰의 발원지는 당신입니다. 아이디어 많은 포토그래퍼인 당신은 내게 불쑥, ‘덕업일치’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 얼굴을 찍고 싶다고 했었죠.


덕업일치 : 사자성어 ‘언행일치’에서 비롯,
‘덕질(독자적인 취미생활)’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뜻의 신조어. 우리는 범위를 조금 넓혀 ‘좋아서 자발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일이 곧 현재 직업인 상태’로 풀기로 했다.

  


 앗, 내가 하고 싶던 인터뷰와
일맥상통인데?
어서 숟가락을 놓자!


 "오, 좋은데요. 그럼 성원오빠가 사진 찍을 나는 옆에서 인터뷰를 할게요. 같이 만들어 봐요!"


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기획. 대상은, 다름 아닌 기획자 자신입니다. 포토그래퍼 이성원.




1. WHO : Who's that guy?


정 : 와! 사진 속 이 남자... 제가 비슷한 사람은 한 명 압니다만, 이미지가 완전히 딴 판인데요?

(지금껏 차분한 모습만 보아 왔으니, 보수적인 이미지로 알던 여배우의 파격 노출 사진을 본 듯한 안구의 충격이었달까요. 하하)

 

<놀람 주의>

사진 1. a photographer


이 : 그래보이나요? 사실 별 건 없는데. 이건 내가 작업할 때 짓는 표정을 모티브로 촬영한 거거든요. 카메라를 눈에 바짝 붙이고 피사체에 렌즈를 들이대는 순간, 사진가는 이런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죠. 후반 작업까지 하고 나니 제가 봐도 첫인상이 좀 강해 보이긴 하는데... 어쨌든 오랜만에 나를 찍게 돼서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정 : 반전이네요. 세상을 향해 강한 메시지를 담아 힘껏 외치는 중이라고 생각했어서.(웃음)

 잔뜩 클로즈업을 해 놓고 눈이 있을 자리에 렌즈가 큼직하게 들어앉았으니 순간 깜짝 놀랐거든요. 리얼리즘이 상상력과 격하게 결합했달까?

 앞으로 우리가 만날 사람들도 이런 스타일로 찍을 건지 궁금해요. 인물사진을 찍는 수 많은 방식 중 이런 리얼한 표현방법을 택한 이유도.


이 : 네. 합성을 통해서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키치한  방식으로 보여 주는 큰 틀은 유지할 것이고요. 대신 쨍한 조명 노출이라든지 사진의 거친 질감은 주인공이 나니까 내 뜻대로 한 것인데 앞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웬만한 아기 무게와 맞먹는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와 기싸움을 하는 일은 꽤나 터프한 노동이에요. 아름다운 결과물 뒤에 숨겨져 있는 힘든 과정을 내 표정과 전체적인 사진의 톤으로 표현해 봤죠.

 또 눈동자 대신 검은 렌즈는 카메라가 내 신체 일부가 되어 간다는 뜻이에요. 햇수로 18년 째 카메라를 들고 살다 보니 어떨 때는 저 차가운 물체가 꼭 혈액이 흐르는 내 몸의 일부인 것 같아서.




2. WHAT : What's your job?


정 : 좋아요. 그럼 저 렌즈로 무엇을 찍나요 당신은?


이 : 돈 되는 사진과, 돈이 안 되는 사진을 다 찍죠.


정 : 하하, 명쾌하네요. 돈 되는 사진이라면, 의뢰받아 찍는 잡지 사진 같은 걸 말하는 거겠죠?


위쪽부터 1.패션쇼장의 백스테이지 컷 2,3.고혹적인 섹시를 컨셉으로 촬영했던 배우 클라라 4.배우 이본의 여성지 인터뷰 5. 트렌디 메이크업 화보


(그는 많은 매체에 자기의 이미지를 실어 왔다. 경험상 프리랜서가 여러 발주처와 꾸준히 일한다는 건 두 가지 모두 잘한다는 뜻이다.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내는 것과, 발주처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 흠. 비결을 좀 알아야겠다.)


이 : 그렇죠. (휴대폰을 보여주며)다양하죠?


정 : 그렇네요. 상품, 건축물, 풍경들과 유명 인물들. 보면서 퍼뜩 든 생각인데 말이죠. 일터에서 저렇게 아름다운 분들을 만나고 가깝게 지내는데 모델들 중 누구와 사귀거나 그런 일은 없었어요?

 트렌디하고 화려한 직업군, 마음만 먹으면 놀기 딱 좋은 환경일텐데... 갑자기 과거가 몹시 궁금해지는군요. 그러고 보니 성원 씨의 너무 정숙한(?) 면만 봐 왔네요 나는.


이 : 음... 솔직해야 하는 거죠? 하하하

안타깝게도 모델과 사귄 적은 없어요. 스태프들과 어울린다거나 긴긴 밤을 놀면서 즐긴다거나 하며 트렌디한 이 직업의 혜택을 누리기에는 두 가지가 내게 부족했죠. 알다시피 난 술을 전혀 못 하잖아요. 치명적이죠.(웃음) 그리고 결혼을 일찍 했어요. 벌써 7년 차니까! 관계에 서툴렀고 돈도 지금보다 못 벌었고 일도 더 바쁘게 했던 어시스턴트 시절이 지나가고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길 즈음엔 이미 어떤 멋진 여자가 제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죠.

놀 틈을 못 만들고 살았네요! 이런 이런...


정 : 이런이런... 한참 더 놀다 할 걸 그랬다 그쵸? 내 남편이 그랬으면 집에서 가만 안 둘 발언이에요. 그치만 저녁 약속 한 번 쉽지 않은 아기엄마로서 이해가 되는 말이긴 하네요.

 돌아가서, 그럼 돈 안 되는 사진이란 뭐에요?


이 : 이런 거죠. 갑자기 뭔가가 뇌리를 스치면서 '아, 이건 찍어야겠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오늘 아침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는데, 죽은 나비의 몸뚱이가 움직거려요. 분명 죽은 것 같은데, 이상하잖아요? 자세히 보니 개미가 자기 덩치보다 몇 십 배는 더 큰 나비의 죽은 몸을 옮기려고 하고 있더라고요. 집이 어딘진 몰라도 너무나 짠한 거죠. 왜 짠하지?생각해보니 내가 저 개미 같고, 짊어진 큰 나비는 내 가족, 내가 부양할 내 자식과 아내 같더라고요. 그 순간 찍고 싶어졌어요. 이 시대 가장들의 자화상 같았달까, 순간적으로.

그런데 마침 손에 휴대폰 밖에 없어서 카메라를 들고 나올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 시야에서 사라진 거에요! 맙소사. 개미가 그새 어디로 데려간 거죠. 저 큰 나비의 몸뚱아리를.

그래서 또 한 번 짠했죠. 이런 식으로 찰나가 찾아와요. 일상에서 영감을 주는.


 때론 찰나의 아이디어가 모여 제법 일관된 구상이 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에요.


사진 2. a person. 인물 내면의 특성까지 한 장의 사진에 담아낼 수는 없을까? 그린 사람의 개성이 녹아 있는 드로잉이 사진과 만나면 어떨까?
사진 3. 사진 2와 연속된 시리즈. 분할된 프레임의 절반은 모델이 직접 자기 얼굴을 드로잉해 채웠다. 사진을 과연 찰나적 단편적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묻는 듯하다.


사진 4. mirror man. 개개인은 자신이 투영된 시각으로 각각 다른 모습의 남을 본다. 대학원 시절, 강남의 한 클럽 앞에서 거울로 만든 특수의상을 입고.

저 때,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몰려들었어요. 강남역 한복판에서 온통 거울 조각으로 된 옷에 햇빛이 비쳐 주변이 심하게 번쩍거렸으니까.(웃음) 만약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였다면 나를 보고 있는 그 모습들을 찍어서 반사된 면에 일일이 합성했을텐데. 그럼 완성도가 더 높아졌을텐데 아쉽네요.


그리고 또, 무럭무럭 크고 있는 아들(20개월 된)을 찍는 일도 종종 있죠. 찍고 싶을 때마다 즉각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여느 부모와 다를 게 없지만 가끔은 직업의식이 발동해 정성을 쏟고 싶을 때도 생기거든요. 하하

사진 5. flying little boy

저런 독창적이고 멋진 가족사진을 마음만 먹으면 갖게 될 수 있다니! 당신의 가족이 부럽네요!



3.WHEN


When's first?

정 : 묻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어요. 먼저, 언제부터였는지? 입문 스토리를 들려 줘요.


이 : 우연과 운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죠. 고 3 가을 무렵부터 사진과의 인연이 시작됐어요. 바뀐 내 짝이 마침 사진학과 지망생이었는데 그 전까지 특별히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가 친구가 준비하는 걸 보니 매력이 느껴져서 뒤늦게 나도 사진을 목표로 하게 됐어요. 아이러니한 게 결국 나는 사진학과에 붙고, 그 애는 떨어졌다는 거.


정 : 이런 건 입시나 오디션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말인데.(웃음. 제가 유경험자라서.) 꼭 현직 가수가 들려주는 오디션 합격 수기같네요. 그 때 가족들은 성원씨를 적극 지지해 줬나요?


이 : 아니요. 아버지가 크게 반대하셨어요. 사진 찍는 일을 진지한 진로로 인정하려 하지 않으셨죠. 이해하고 인정하시는데 한참이 걸렸어요.


정 : 이런. 할 이야기가 많이 있을텐데 그래도 단 몇 마디로 압축시키는 걸 보니 알겠어요. 반대에 많이 흔들렸거나 방황하지는 않았던 느낌인데요?


이: 맞아요. 입학금도 어머니가 몰래 주신 돈으로 겨우 마련하고, 늘 재료비에 쫒겼던 대학시절이지만 정신없이 바빠서 방황할 새가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대개 졸업할 즈음에야 첫 전시회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1학년 때부터 단체전을 하기 시작해서 대학 내내 전시준비를 하느라 쉴 틈이 없었거든요. 작품이 있어야 전시를 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으니 바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방황도 시간적으로 여유 있을 때 할 수 있는 거라고 봐요.


When do you feel like...?

정 : 대학생의 생활고가 느껴지긴 해도, 뒤늦게 사진에 매력을 느껴 진로를 고민하는 분들이 보면 부러워할 대답이네요. 길을 선택하고 그 길로 밀고 나가는 게 힘겹지 않고 자연스러웠으니.

 그렇다면 사진을 찍으면서 언제 행복하고, 언제가 힘드나요?


이: 스트레스 받을 때는 현장에서 본질과 상관 없는 골치 아픈 문제들을 대면할 때에요. 이를테면 사람을 상대하는 일 같은 건데, 난 천생 아부나 마음에 없는 칭찬 같은 걸 잘 못해요. 그런데 그런 게 필요한 순간이 있잖아요. 특히나 큰 기관의 대표직처럼 '명함이 화려한, 연세가 좀 있는, 양복 입은 분들'을 찍을 때는 내가 꼭 부하직원처럼 아부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럴 때가 썩 유쾌하진 않죠.


정 : 공감해요. 정부기관이나 지자체 행사에서 의전이 지나치게 중시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단순히 아부하는 기분이 들어서를 넘어 과연 누구를 위해 이 많은 행사 인원과 비용이 사용되고 있는 것인가에 생각이 미칠 때 좀 답답해져요. 내 밥벌이 현장에서, 이러면 배은망덕한건가? 하하


이 : 맞아요. 비슷한 생각이야.

 행복할 때는, 음. 작가의 정신세계에 관한 질문이라면 좀 일차원적인 답 같기도 한데. 내가 열심히 번 돈으로 내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내가 순수한 작가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아닌가봐요. 그랬다면 이런 질문에 작품 이야기가 나왔을텐데 하하.


정 : 아냐. 밤낮 예술만 생각해야 진정한 예술가라는 명제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지금은 천문학적인 값이 된 서양 화가들 작품도 당시엔 생활인으로서 의뢰받아 그린 작품인 경우가 허다하잖아요. 아까 당신이 말한 '좀 나이 든, 양복 입은 분들'의 초상을 그린 게 시대가 흘러 명작 소리를 듣는 거라고요. 생계의 도구로서 나온 사진과 창작욕의 발현으로서 나온 사진, 저와 같이 제 3자인 대중은 별 구분 않고 보는 듯해요.




4.HOW : How to make this ?


정 : 잠깐 숨 좀 돌리고 갈까요?(옆에 놓인 잡지를 주르륵 넘겨보다가..)이 사진들 좀 봐요!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배경, 그 속에서 인물은 또 이렇게나 디테일하게. 대체 이런 사진은 어떻게 찍는 걸까요?

2016.5월 호 잡지 럭셔리의 한 화보


이 : (한참을 들여다 본 후)일단 여긴 아마도 야외가 아니라 세트같네요. 뒤에는 천으로 된 실사 배경에, 여러 풀과 나무 소품으로 세트를 꾸미고. 이 쪽에선 스모그 발생기를 켜고요. 메인 조명을 일단 세트 뒤편에서 하나 때려요. 그럼 태양을 비스듬히 역광으로 받은 듯한 효과가 나면서 연기가 화사하게 올라오겠죠. 그러고는 오른쪽 옆에 부드러운 광원을 하나 배치하고 반사판을 반대쪽 편에 놓았을 거에요. 그렇게 찍힌 게 아닐까 하네요.


정 : 와우. 쉬자고 던진 질문인데 쉴 틈을 안 주시네. 적어야겠으니 다시 말해 줘요. 야외에서 찍은 게 아닌 것 같다고요?


이 : 네. 한참 봤는데 아닌 것 같아요. 일단 인공광이 없다면 나무들 때문에 저렇게 고루 빛이 들어올 수가 없을 텐데, 숲에서 저 정도의 광원을 공급하려면 일반 전력으로는 어림없고 아예 발전차를 써야 할 거에요. 화보로는 어림없죠. 대략 중급 예산 영화 정도는 돼야 그 정도 장비 동원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결정적으로 저기에 보이는 지점이 세트와 실사 배경의 경계 같네요.


정 : 그런 게 보인단 말이죠? 신기해. 어디에요?

찾으셨어요? 사진 중간 즈음을 가로질러, 배경이 뿌옇다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지점을. 찾아 낸 당신이라면 진정 매의 눈으로 인정합니다...(안 보였던 1인)

이 : 여기, 원근감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거리감의 차이가 있잖아요. 뭐, 그렇다고 딱 단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 확률이 상당해 보이네요.


(같은 잡지에서 또 한 장을 짚으며)

이 : 보여요? 이 사진에도 합성된 부분이 있어요.

바로 제품 아랫부분의 영어문구.

그냥 찍으면 저 작은 글자들은 저렇게 선명히 나오지 않아요. 매끈한 제품 표면에서 생기는 빛의 반사선이 글씨에도 나타나게 되죠. 하지만 중요한 로고 부분이니 따로 글씨를 합성한 거죠.

그냥 보여서 말한 건데 다희 씨 신기해 하는 눈빛을 보니 나도 좀 색다른 기분이 들긴 하네요.


정 : (신기방기)그냥 인터뷰 컨셉 바꿔서 싹 다시 합시다. '광고사진 읽어주는 남자', 어때요?


이 : 오호, 괜찮은데요? 잡지 다 가져와 봐요 얼른.



5.WHY : Photographer?


정 : 자,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 사진인가?

다른 일을 직업으로 삼아 본 게 아니니 당신은 진로찾기의 험한 여정을 스킵한 셈이에요. 그만큼 궁금해요. 첫 연애를 한 첫사랑과 결혼한 보기 드문 남자, 그에게 배우자란?!


이 :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흔한 성공 비결이 '운이 좋아서'라는 말인데요. 여기서는 나도 그 대답을 안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내 짝꿍이 사진학과를 지망했던 것부터, 전공으로 삼은 분야가 마침 적성과 잘 맞았다는 점.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영 재주가 없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점까지 말이에요.

 적성에 맞는다는 건 이런 얘기에요. 난 끈기도 집념도 별로 없어요. 공부나 다른 예술 분야로 갔으면 아마 큰일났을 거란 얘기죠.(웃음) 다른 모든 예술 분야는 어느 정도의 끈기와 집념이 투자되어야 초기의 성과를 낼 수 있잖아요? 피아노로 프로포즈 송을 연주할 요량이면 제아무리 단순한 곡이라도 일정시간을 투자해서 배우고 연습해야 되듯이요.

 그런데 다른 분야와 가장 구별되는 사진의 특징이, 퀄리티와 상관없이 즉각 눈으로 볼 수 있는 결과가 나온다는 거에요. 장비인 카메라와 셔터를 누를 힘만 있으면 수련을 거칠 필요 없이 당장 결과물을 볼 수는 있죠. 일단 찍어 보고, 그걸 보면서 수정하고, 개선하려고 연구하면 돼요. 큰 인내를 요하지 않고 시작이 쉽다는 점에서 나와 참 잘 맞는 일이에요.

 또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중시하고, 남들이 보는 이미지에도 신경을 쓰는 편인 내게는 이 사진가란 직업이 만족스러운 거죠. 속칭 '간지'가 좀 있잖아요.(웃음) 어렸던 대학시절에는, 덩치 큰 카메라를 메고 보헤미안 포스를 풍기면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멋지다고 봐 주는 것 같은 느낌을 즐겼죠! 유치한 청춘의 겉멋이라 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도 사진을 찍을 때의 내 모습은 참 멋지다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공부로 잘 풀리려고 노력했어봐요. 공부가 안 되는 날 저렇게 온 몸에 거울을 달고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쯧쯧쯧' 혀를 차는 우리 동네 어르신들께 난 온통 욕이나 먹었겠죠.

그래서 난 운 좋은 사진가에요.

아니, 운 좋게 사진가죠. 하하


정 : 오, 센스있는 마무리 멘트!

그럼 이어서 묻죠.


그래서, 지금 행복한가요?
이 일을 하는 지금 당신.


이 : 앗, 이거 잘 대답해야 되는 거죠?

잠깐만요.


네. 행복해요. 대체로.

 난 아직 이 분야에서 탑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충분히 행복해요. 가장으로서 먹고 살 만큼 수입이 있고, 시간적으로도 직장에 몸담은 친구들보다 여유로운 편이며 어디에 구속받거나 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일하고 있으니까.

 자아 실현이라는 의미에서도 만족해요. 시각 예술 분야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이 있죠. 다른 분야와 달리 순수 창작품이 아닌, 상업적인 계기로 만든 작품을 내 놓아도 여전히 예술가로 보아 주는 분야는 사진이 유일하죠.




6.WHERE?


Where's your money come from?

정 : 방금 이유 중 첫 번째에 '수입'을 꼽았어요. 아닌게 아니라 일에서 소득이란 정말 중요하죠. 이런 거 공개해 본 적 있어요? 내 수익구조 같은 거.


이 : 아니, 국세청이랑 와이프말곤 처음이죠.


정 : 큭. 무한한 영광입니다. 처음 성원 씨와 알게 된 게 레이디경향이라는 잡지 인터뷰 때문이었잖아요. 그 때는 잡지 사진 기자로 일했던 거고, 그 후에 프리랜서가 된 거죠? 몇 년 정도 지났더라?


이 : 정확히는 레이디경향과 사진 공급 계약을 한 회사 소속의 포토그래퍼였죠. 그러다 독립한 지 4년 정도 됐고요. 지금은 지인 몇몇과 운영하는 스튜디오에 주로 머물면서 개인적으로도 스케줄 요청이 오면 촬영을 나가고 있어요.


정 : 누구나 독립하면 어려움을 겪기 마련인데, 4년이면 산전수전 한창 겪고 있을 시기 아닌가요? 어땠어요 그 동안?


이 :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큰 위기까지는 운 좋게 없었던 것 같아요. 프리가 된 직후엔 레이디경향 쪽 인맥으로 작은 촬영 일을 맡아 하다가 점차 다른 쪽에서도 일이 들어와서 점점 바빠지기 시작했죠.

말했다시피 술도 못 마시지, 말 주변도 없지. 그래서 영업력은 꽝인 사람이라 나는 대신 이렇게 마음먹었어요. 일이 왔을 때 확실히 보여 주자. 그렇게 해서 한 번 나한테 온 사람은 놓치지 말자고.

그렇다고 제가 무슨 다단계도 아니고, 그래도 떠날 사람은 갔지만.(웃음)

 다희 씨가 '일도 잘 하고 인간관계도 잘 해야' 프리랜서에게 꾸준히 일이 온다고 말했는데 나는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요.

'일도 못 하지 않고 사람한테도 특별히 못하지 않는 이상 일감은 떨어지지 않는다'고요.

 여태껏 '이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나중에 불리할 것 같아서' 내키지 않는 일을 맡아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게 뭐 거창한 신념이라서가 아니라, 나는 그렇게 못 하는 성격인 거에요.

 이를 테면 건당 일 이 천씩 되는 대기업 광고 같은 일들을 제의받을 때가 있어요. 광고모델들처럼 6개월 혹은 1년 전속으로 그 기업의 지면광고 사진을 찍어 주는 계약이죠. 포토그래퍼들 대부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받는 편이지만 난 그런 일은 받지 않아요.


정 : 알겠다. 진행자로 치면 고정출연 제의인 셈이네요. 그런데 왜 안 받아요? 내 경력에도 도움이 되고, 확실한 고정수입도 생기는 일인데.


이 : 비용이 높아 보일지 몰라도 소요시간 대비 결코 크다고 볼 수 없어요. 기업 광고 일은 대부분 광고대행사가 하니까 사소한 결정에도 두세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 때문에 작업 효율성이 너무 낮거든요. 이래저래 시간 소모가 많아 다른 프로젝트를 맡을 기회를 놓칠 수도 있고요. 나로선 별로 매력적인 카드가 못 되는 셈이죠.

이래저래 나름 골라가면서 일을 한대도, 편차는 있지만 대충 500에서 600정도는 들어오고 있으니까 뭐, 생활하기에 별 무리는 없어요.


정 : 한 달에? 이 봐요 당신, 별 무리없다는 말 되게 겸손한 표현인 거 알죠? 모르면 나쁜 사람이에요 알겠죠?(웃음)

근데...독자의 이해를 도와야... 세 전? 아님 세 후?


이 : 그게 뭐에요? 아, 세금 얘기구나. 그럼 세 후요. 통장에 꽂히는 돈.


정 : 국세청과 아내 분에 이어 이제 나와 많은 브런치 독자들도 알게 됐네요. (웃음) 결국 매 기회마다 작업의 결과로 승부한다는 직구 전략?! 멋진데요. 더 흥했으면 좋겠다 이성원!


Where to go?

정 : '여기보다 어딘가에-.'

사실 별로 안 좋아하는 표현이긴 해요. 현실 부정의 뉘앙스가 풍겨 나와서. 그치만 질문의 의도가 바로 이거라서요. 지향점이요. 사진 작가로서.


이 : 먼저 진지한 버전으로 말하자면,

보는 사람들이 '아!' 하고 잠시 하던 일을 멈춘 채 상념에 잠기도록 만드는 사진들을 선보이는 것.

살면서 어떤 소설 한 권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뭐 그런 말들 하잖아요. 똑같아요. 누군가의 영혼에 각인되고 그의 삶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사진들을 많이 찍어내는 일. 모든 사진가가 다 똑같을 거에요 그건.


 다희 씨가 생활인 얘기를 했으니까 생활인의 자세로 말하자면, 돈 안 되는 사진과 돈 되는 사진의 경계가 없어지는 일.(조금 어려웠다. 곱씹을 만한 말인 것 같아서 어려운 채로 옮겼다.) 찍고 싶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곧장 작업에 착수하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더 많이 만들고자 해요. 물론 그러려면 작업 당 몸값이 더 높아지는 것도 중요하죠. 대신 일이 많아서 너무 바빠지는 건 경계하고 싶어요. 생활의 밸런스도 중요하니까.  바라는 게 너무 많나요? 하하




 몇 주 전 유명한 관광지로 여행을 갔었습니다. 숱하게 많은, 카메라를 든 사람 속에서 나 또한 숱하게 셔터를 눌러대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도 소비하는 것도 너무나 쉬워진 이 시대에
훌륭한 포토그래퍼가 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 같다는.


정 : 사진 분야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는 과연 점점 얇아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공고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 난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얇아질 거라고는 보지 않아요.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라도 보통 수 십에서 수 백 장 중 한 장 정도 '작품 같은'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거잖아요?하지만 프로라면 그 퍼센테이지가 백 장 중 구십 장 쯤으로 높아져야 하고, 그 확률적인 격차는 그저 좋은 장비가 많이 보급되고 기술적으로 찍기 쉬워진다고 해서 쉽게 좁혀질 수는 없는 일 같아요.

 또 하나,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렸잖아요. 프로는, 의뢰인이 원하고 있지만 아직은 머리 속에만 있거나 스케치로만 존재하는 구상들을 파악해서 실제 이미지로 만들어 내야 하고, 그 댓가로 돈을 벌죠. 그 능력은, 내가 찍고 싶은 것을 찍었는데 그게 우연히 잘 나와 인스타나  페북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는 것과는 차별되는 능력이라 생각해요.

마치 요리의 전성시대라 불리는 지금의 요리사와 같다고 보면 되겠네요! 아님 가수도 그렇고요. 노래 잘하는 일반인이 많아도 가수와 비가수의 벽이 허물어지지는 않듯이 말이에요. 근데 가수처럼 노래 잘 하려면 대체 어떻게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 거죠? 아 노래 잘 하고 싶다...



이렇게 오늘의 시간은 끝나갑니다.


포토그래퍼라는 직업,
별로 특별할 것도
부족한 것도 없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면서요.
어때, 의도대로 얘기가 잘 풀린 것 같아요?
앞으로 만날 사람들과도...
잘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이 : 재미있으면 된 거지. 재미있으면 된 거에요. 난 사진 찍으면서 재미있었는데 다희 씨는 안 그랬어요?

정 : 맞아. 재미있어요 지금 저는. 내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중이니까요. 인터뷰하고, 글로 쓰고. 완성되면 누가 보게 될까 싶은 생각에 흥분이 돼요.



그럼 아주 잘 하고 있는 거네요.

계속 합시다 이렇게!


매거진의 이전글 #1.어버이날, 죄송하지만 좀 더 기다려 주세요 부모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