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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Jul 06. 2016

#14.언니쓰의 성공에서 찾은'틀을 깨는 매력'의 힘

신선함!신선함! 틀을 깨는 신선함에 늘 목마른 우리


 

 평균나이 35세, 최고령 42세의 프로젝트 걸그룹 '언니쓰'의 성공에 주말의 방송가가 들썩했습니다. 금요일 심야에,(MBC에서 나혼자 산다가 방영되는 바로 그 시간!)'나 혼자 산다'와 '정글의 법칙'이란 쎈 터줏대감들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닻을 올린 이 프로그램은 걸그룹 데뷔가 꿈이었다는 배우 민효린씨의 소원풀이 프로젝트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출연자들의 진지한 눈빛과 결코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는 고된 노력 속에서 진정성을 발견한 시청자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하며 급기야 지난 주말 연예계를 '접수'하기에 이르렀죠.


 언젠가부터 온통 아이돌들이 장악해 버린, 그 예전 가요 톱텐을 사랑해 마지않던 30대 이상이 시청할 일이라곤 없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홍진경이 '웃음기 1도 없이' 몰입해 춤을 추고, 배우 라미란이 걸그룹들의 전매특허와 같던 교태를 '위화감 1도 없이' 선보이는 장면은 언니쓰의 성장 스토리를 연예뉴스로만 드문드문 접해 왔던 저에게도 뭉클함을 안기더군요.

 감동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는 법. 방송이 큰 화제를 낳으면서 공연 영상은 뮤직뱅크 역사상 최단기간 네이버 동영상보기 300만 뷰를 달성했고, 다수의 음원차트에서 발매와 동시에1위라는 성적과 함께 본방 프로그램은 7퍼센트가 넘는(닐슨코리아 제공 7.6%, TNMS 제공 6.3%) 시청률까지 기록했으니. 정말이지 화려한 성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 저는, 언니쓰의 'shut up'을 듣다가 별안간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무서운 영화와는 담을 쌓고 사는 저조차 단번에 떠올릴 만큼,) 공포영화 역사상 고로 유명한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무엇을 떠올리시겠어요? 힌트는 일본 영화라는 것, 그리고 제목이 한 글자라는 것입니다.

 네. 바로 영화 '링(1995)'에서 보는 사람 심장을 멎게 만들었 그 장면이에요! 억울하게 우물에 빠져 죽은 여자 주인공 사다코가, 비디오 우물에서 나와 점점 가까이 다가오다 브라운관 밖으로 스멀스멀 기어나오던 씬 말입니다.


원본 이미지를 쓰기에는 저의 간담이 너무나 서늘할 듯하여 부득이 개콘의 패러디 장면을 넣었습니다. 사실 저 사진도 전 엄청 무서운걸요^^;;끙끙


 위처럼 수 많은 패러디를 양산했을 뿐 아니라 총 9편에 달하는 후속편과 리메이크작으로 가히 '호러계의 프랜차이즈'로 불릴 만한 영화 링 속 이 장면이 이렇게 유명한 이유는 바로


스크린 너머에만 있던 평면적인 공포를
객석에 도달 가능한 입체적인 공포로 전환시켰다

는 데에 있습니다.


 이전의 공포영화에서 귀신은 각종 잔혹방법으로 희생자를 만들어내며 '열일' 해 왔지만, 활약은 어디까지나 스크린 너머에 그쳤습니다. 관객들은 "너무나 무섭지만 모두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 나는 다행히도 밖에서 저걸 보고 있는 ." 라며 공포의 감정을 '즐기던' 존재인 것이죠. 그러다가 그 무서운 귀신이 예고도 없이 화면 밖으로 스윽 한 발 내딛고 나오는 순간, 내재전제가 산산히 깨어지무서운 혼령과 무방비로 맞닥뜨리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수 밖에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공포'(2차원->3차원 이니까요)라 부를 만합니다.



 

 차원을 깨는 종적인 프레임 넘나들기의 예가 위와 같다면, 그림이라는 횡적인 프레임끼리 넘나드는 예는 여기에 있습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씨의 작품들은 커다란 LED 화면을 무대로 동서고금의 명화 속 장면들이 중첩되어 어우러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통상 미술사에서 대가라 불리는 화가들의 작품 색은 너무나 뚜렷해 도저히 한 캔버스에 담긴 장면을 상상하기 힘들지요. 이를테면 모나리자가 고흐의 밀밭 속에서 윤두서의 초상과 마주보고 미소짓는다든지 하는 등 시공간을 초월한 장면은,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아티스트 이이남 씨는 그 명화 속 인물들을 한 폭의 새로운 디지털 캔버스에 넣어놓고 서로 교류하도록 만듭니다. 바로 이렇게요.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 우리의 옛 화가 소치 허련 선생이 그린 산수화와 같은 배경 안에 있습니다. 심지어 성당은 조금씩 산수화 배경 안으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프레임의 통합, 융합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회화가 아니기에 손 안에 가지고 있다는(즉 소유한다는) 개념이 다소 불분명합니다. 그런데도 해외 유수의 경매에서  번번이 그의 작품이 고가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가 하면, 지난 G20 정상회의 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가로서 그가 각국 정상에게 소개됐을만큼 이이남씨의 작품세계는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월요일과 화요일마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열연을 펼치느라 바쁜 남자주인공 에릭이 갑자기 수요일에 MBC 드라마 '운빨로맨스'에 등장해 아무렇지도 않게 데이트 중인 황정음-류준열 커플 옆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을 말입니다. 상상하는 것 자체로 파격적이지 않나요? 하나의 우주 안에 있던 계가 깨지고 이 쪽 세계에서 저 쪽 세계로 차원을 넘나드는 -웜홀이 등장하는-SF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면 과장된 표현일까요.

 

 언니들의 슬램덩크도 이와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시청자에게 신선함을 주는 '프레임 깨고 나오'의 파격을 매력포인트로 장착한 것이죠. SM사의 터줏대감인 소녀시대의 리드싱어 티파니가, 라이벌 회사인 JYP 엔터테인먼트사의 녹음실을 찾아 박진영의 지도를 받으며 녹음하는 장면을 볼 때. 또 불과 반 년 전쯤, 푸근한 외모 설정으로 열연하며 추억의 옆집 아줌마 쌍문동 치타여사로 각되었던 '응답하라 1988'의 배우 라미란 씨가 10대 위주의 가요프로그램에서 멀쩡히 다른 아이돌들과 같이 등장하는 모습을 볼 때.(심지어 조금도 지지 않는 매력을 뿜어내는 그녀의 아우라라니!) 대중이 알고 있던 기존의 이미지와 오버랩되며 신선함은 극대화됩니다. 고정된(것으로 믿었던) 둘 이상의 프레임을 출연자들이 자유자재넘나드는 것을 보 매력을 느끼는 것입니다.





자, 언제나처럼 이제 분석한 결과를 가지고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 보아요. 관계가 권태롭다고 느낄 때, 늘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관계에서 신선함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신선함을 불어넣으려면?


틀을 깨는 인물(상황)=
매력적인 인물(상황)

이라는 등식을 활용해 봅시다. 고정되었던 틀을 살짝 넘어가 주는 것, 풀어 말하면


관계의 틀 속에서
늘 상대방이 해 왔던 말과 행동을
반대로 내가 해 보는 것

입니다. 늘상 토크쇼의 호스트 자리에 앉던 사람이 게스트 석으로 자리를 바꾸는 것처럼 말입니다. sm 엔터테인먼트로 출근하는 티파니만을 보아 오다가 '저 가수가 jyp에 있을 리가 없는데. (근데 오늘은 거기에 있잖아!)' 싶은 말이나 행동을 한 번쯤 해 주는 것이죠.

 예컨대 어떤 관계에서든 '의존적-주도적'인 차이가 다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내 역할이 주로 맞춰 주는, 배려하고 따라가는 캐릭터였다면 의도적으로 상황을 주도하는 말이나 행동을 함으로써 익숙한 설정을 넘나들어 보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동안 관계에서 능동적인 편이었다면 오늘은 문득, 아무렇지도 않게 선택권을 상대에게 넘겨보는 것이죠.



저의 경우, 위와 같은 시도가 가장 빛을 발할 때는 아이와의 관계에서입니다.


이것 줘! 사탕 줘! 저건 싫어. 안 먹을래 치워 줘!

잠 안 잘거야!(쏟아지는 장맛비에) 밖에 나갈래!


 휴우. 이렇게 점점 고집이 세지는 세 살배기 아이.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필요를 채워줘야 하는 존재인 저는 가끔 일부러 아이보다 더 어린 듯 행동합니다. 사실 처음엔 의도한 것이 아니었어요. 어느 날, 졸려하면서도 낮잠을 거부하는 아이를 재우려 씨름하다 지쳐

 '그럼 엄마가 힘들어서 먼저 자야겠다. 재현이가 나 좀 재워 줄래? 엄마 눈 감을테니까 토닥토닥해 줘.'

이렇게 마음이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직전에 포기하듯 '해 줘!'라고 말해 보았는데 의외로 효과가 괜찮더군요.


'네가 엄마 좀 재워 줘.' '엄마 이것 좀 먹여 줘.' '엄마 세수 좀 시켜 줘.'

 갑작스레 훅 치고 들어오는 엄마의 투정이 안 먹힐 때요? 물론 있지요. 허나 타이밍을 잘 맞춰 주면, 까탈스럽던 재현이는 더없이 즐거워하며 제가 진짜로 잠들 때까지 토닥토닥 손짓을 해 주기도 하고, 맛있게 먹던 음식을 기꺼이 제 입으로 넣어 주며, 고사리 손으로 제 얼굴에 연신 세숫물을 끼얹어 주기도 합니다. 짜증은 스르륵 사라지고 빛나는 눈빛과 생글생글해진 표정을 보는 즐거움이 꽤나 쏠쏠하답니다.




 늘 데이트를 계획하는 편이었고 비용도 내가 더 많이 부담해 왔다면, 오늘은 반대로 해 보세요. '배고파. 나 밥 사주라. 어서 뭐 먹으러 가자.' 천연덕스럽게 말입니다.

늘 '당신이 해 줄래?' 했던 편이라면 '내가 해 줄게.'

음식점에서 주로 메뉴를 골라왔던 사람이라면 오늘만큼은 "자기가 골라 줘."

 집에서 배우자에게 주로 잔소리를 하는 편이었다면 한 번 잔소리를 들을만한 행동을 해 보세요. 이를테면 남편이 하던 것처럼 신었던 양말을 돌돌 말아서 아무데나 슬며시 놓아두는 거죠. 과연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하고 나를 빼꼼이 바라보는 남편 때문에 집안 공기가 조금은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남편이 평소 군말 없이 해 주었던 일들도 곰곰이 떠올려 반대로 해야 할 거에요. 퇴근하면서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내 오는 것이 암묵적으로 남편의 역할이었다면, 오늘은 내가 꺼내 오는 거죠.

 이런 말을 자연스레 건넨다면 더욱 좋을 거에요.


"별 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 동안 의식도 못했었는데 이거 은근히 귀찮네. 말 없이 챙겨줘서 새삼 고마워." 




'역할 바꾸기'와 '반전 매력'이라는 말은 얼핏 상관없는 두 용어로 보이지만,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에 관해서라면 이렇게 겹치는 지점이 많습니다. 특히 반전 매력이라는 말은 유행어처럼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 같지만, 영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을 만큼 보편적인 용어입니다. 그만큼 익숙지 않은 모습은 신선하기에 상대방의 주의를 확 잡아끌 수 있는 것이죠. 별안간 화면 밖으로 나와 버린 영화 주인공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나저나 언니쓰의 음악, 파워풀한 에너지가 전해져서 전 참 듣기 좋던데요. 걸그룹 언니쓰 뿐 아니라, 오랜 프레임에 갇혀 정해진 길을 걷다가 불쑥 다른 길을 기웃거리는, 변화를 시도하는 세상의 모든 '언니쓰'를 응원하며 마칩니다.

많이 웃는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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