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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Jul 08. 2016

아주 사적인 이슈 앤 포커스 #2.침묵 권하는 사회

개그맨 이상훈씨를 고소한 어버이연합의 뿌리깊은 어버이, '엄숙주의'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에서 패러디 개그를 선보인 것으로 어버이연합에 고소당한 개그맨 이상훈 씨를 보며. 문제의 장면을 한 번 글로 옮겨 봅니다.


(유민상)자, 두번째 문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통장 없이도 거래할 수 있는 계좌를 뜻하는데요, 쉽게 돈을 송금받을 수 있는 이 계좌를 무엇이라고 할까요?여러분, 정답은 이거죠?!(가상계좌)

(이상훈)기소 0번 이상훈, 쉽게 돈을 송금받을 수 있는 것? 어버이연합!

(유민상)아유 깜짝이야~ 무슨 소리에요!

(이상훈)맞습니다! 전경련으로부터 수억원의 돈을 차명계좌로 송금받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입을 이렇게 다물고 있습니다.그리고 돈을 보내준 전경련도 이렇게 부르르 떨면서 말을 안 하고 있어요.(다문 입을 부르르 떨며) 이렇게 떨고 있어서 전, 경련인가?(박수웃음)

(유민상)아니 왜 자꾸 그런 얘기하시냐고요!



당사자 빼고는 모두에게 웃음을 안기는 이 상황을, 분노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을 어버이연합과 전경련 어르신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두 단체에 대한 이상훈 씨의 '디스'가 혹시 심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공식석상에서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무려 대통령과 함께 한 만찬 자리에서, 수많은 취재진과 마이크가 앞에 있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의장은 참석을 안 하셨죠. 사실 대통령과 의장은 사이가 좋지 않지요. 두 분은 뭐랄까, 꼭 게이와 레즈비언이 소개팅을 하는 것 같아요. 둘은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만 아시다시피, 그 사이에선 어떤 좋은 일도 일어날 수가 없죠.
(중략)
대통령께서 당선이 된 지도 몇 달이 지나셨죠?
그런데도 왜 아직 하루에 다섯 번씩이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돈 달라는 메일을 보내시는 겁니까?(정치후원금 의미)
대체 왜죠? 도박 중독에라도 걸리셨어요?
(중략)
 이제 대통령께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했으니 가서 저에 대한 (보복성)세무조사를 기다려야겠군요.


 이  남자는 과연 목숨이 몇 개이기에 이와 같이 대범한 발언을 마구 던지는 것일까요? 또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대통령의 표정은 어땠을까요? 바로 이랬습니다.


그저 사람들과 같이 웃을 뿐이었어요. 위는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이 2013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언론인 초청 만찬에서 연설 중에 한 말입니다.(의장은 존 베이너 당시 미 하원의장을 말합니다.) 딱히 어떤 발언을 발췌할 필요도 없을 만큼 8분 30여초의 발언 시간 내내 '디스'는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수위가 높은 발언인 듯 보이는 것들도 있지만 청중과 오바마는 웃음으로 상황을 즐깁니다.


 그런데, 그런가 하면 대통령은 늘 패러디를 '당하고만' 있는 편인지? 최근의 만찬자료를 한 번 보시죠.

 지난 4월 백악관 출입기자단을 초청해 대규모로 벌인 만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트럼프를 겨냥하고, 레임덕에 관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한 발언입니다.

#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가 외교정책 경험이 전무하다고 거정한다지요?하지만 솔직히 그는 수 년 동안 숱한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왔잖아요.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나, 미스 아제르바이잔...(미스 유니버스대회를 후원하고 대회에서 심사한 것을 의미)

# 전 이제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이제 사망 선고가 떨어질 날을 세고 있어요. 지난주 만난 영국의 조지 왕자는 심지어 샤워가운을 입고 나왔죠. 외교의전을 완전히 무시하다니,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네요.



 

 똑같은 상황인 대통령과 언론인의 만남. 다른 나라의 풍경을 한 번 봅시다.

주부로서 자로 잰 듯 정갈히 찬이 놓인 3구 나눔접시에 먼저 눈길이 가네요.(ㅎㅎ)사진부터 좋은 대조를 이루지요?

이어지는, 아까 오바마의 연설 격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모두 발언 전문입니다.


오늘 이렇게 편집국장님 보도국장님 여러분들 함께 모시고 오찬 기회를 갖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함께하신 이 자리가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소통하는 그런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나라의 국정을 맡은 이후로 참 어떻게 해서든지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제2변화와 제2도약도 이루면서 한편으로는 안보도 탄탄하게 챙기고 그렇게 하려고 많은 거기에 모든 힘을 쏟으면서 살아왔지만 지나고 보면 아쉬운 점이 참 많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경제는 세계 경제하고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세계 경제가 침체상태가 지속적으로 나가니까 또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 경제도 같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국민들께서도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이제 어려움이 닥치고 계속 이런 식으로 지내왔는데 그러나 남은 임기기간 동안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의를 잘 반영해서 변화와 개혁을 이끌면서 각계각층과 협력과 그리고 소통을 잘 이뤄나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해가지고 그 구호가 '3년의 개혁으로 30년의 성장 이룬다' 그렇게 돼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노력이 단기적으로 그때 그때 어려움을 넘기고 한다는 그런 경제정책이 아니라 지금도 기초도 튼튼히 다지고 활성화도 이뤄나가면서 그것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도 준비하고 또 안보라는게 우리 혼자서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하고 어떤 신뢰 속에서 긴밀한 공조라든가 교류라든가 이런 것을 통해서 지켜지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노력도 계속하면서 안보도 잘 챙기고 그래서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미래 성장 동력을 꼭 만들어내고 또 국민의 삶이 지금보다 더 좋아지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도 저와 정부의 이런 노력에 힘을 보태주시고 정부와 국민과의 가교에 좋은 역할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즐거운 또 좋은 점심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크롤 안 내리고 끝까지 읽으신 분, 손?!)


 모두발언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 훌륭한 말, 좋은 말만 있잖아요.

바로 그 '좋은 말'만 있는 것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죠.

대통령이 저렇게 시작했을진대, 저 자리에 참석한 언론인과연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하고 작심한 듯 비판도 할 수 있을까요? 청와대 보좌관이 공영방송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윽박지르듯 보도 내용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판국에 청와대 서열 끝판왕인 대통령이 함께 하는 자리에 과연 참석한 언론사 국장님들이 소신있게 의견을 말하며 즐겁게 식사하고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사실 저런 모습은 행사장에서 흔한 기념사이자, 흔한 풍경입니다. 행사장에 사회자로 서는 것이 일인 저는, 저렇게 '각 잡힌' 행사장 분위기에 너무나 익숙합니다. 좋은 취지로, 많은 인력과 예산을 들여 준비된 멋진 행사들. 그 속에서 격의 없이 맘 속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인사들을 보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부끄럽지만 사회자이자 지금 글을 쓰는 저도 저런 행사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키진 못합니다. 행사의 중요도가 높을수록, 실내를 감도는 경직된 분위기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엄숙주의. 나 가지고 웃음거리로 삼지 말라. 나도 두루뭉술 좋은 말만 할 테니 피차 말로 불편하게 하지 말자.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일은 내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유머를 쿨하게 받아들이는 문화의 부재가 너무나 아쉬운 요즘입니다. 


역사와 종교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총체적으로 다른 미국과 우리를 단순히 비교해 자괴감이 들 이유는 없습니다. 허나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입니다. 매년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하는 언론의 자유도 순위에서 미국은 우리보다 언제나 상위에 랭크되어 있으니 말입니다.(2016년 4월 기준, 미국은 28위로 '언론 자유국'으로 분류된 반면 대한민국은 66위로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가 낮은 순위에 랭크되는 두 가지 고질적인 이유가 바로 국가보안법과 함께 '최대 7년형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명예훼손법'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갈 부분입니다.


 저는 엄숙주의가 싫습니다. 권력층이 향유하고 주도하는 엄숙주의란 더더욱 싫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전국 카네이션 연합에(아쉽게도 실존하지는 않습니다) 역으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마땅할 것 같은 어버이연합의 처사를 비난하기에 앞서 내가 공개석상에서 '디스'의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전직원이 참석한 워크숍에서 오후 팀 빌딩 (레크리에이션)을 앞두고

부장A : 자! 우리 잘 합시다! 우리 팀 오늘 잘해서 포상 꼭 받아봅시다.

사원B : 네. 여러분!(좌중의 웃음을 기대하고) 우리 포상금 받아서, 단체 회식도 하고 남은 걸로 부장님 가발도 좀 바꿔드릴까요?! 아자아자 화이팅!

부장 : .......


'무례함와 유머러스함의 간극'. 오바마도, 어버이 연합도, 부장님도 딱 그 사이에 있었을 겁니다. 열이요? 받죠!

 조롱의 소재가 설령 엄연한 팩트인들 당사자인 나는 나는 열 받는다 이겁니다. 하지만 대체 그 순간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뭐가 있을까요?

 모두가 순간 '헉!'하고 느끼는 순간, 내가 신경쓰지 않으면 많은 제3자들은 더욱 더 신경쓰지 않고 그냥 순식간에 넘어갑니다.

 부장님 쿨하시네. 나만 속으로 헉!했나 봐.


허나 내가 발언자를 걸고 넘어지면 제3자인 남들은


 역시 그렇군. 저건 정말 저 사람의 문제거리가 맞구나.

라고 단단히 인식하게 되지요.



부장: 그런 큰 비밀을 누설하다니! 꼭 일등해서 많이 보태 줘요. 좋은 걸로 바꾸게!


그저 이렇게 넘어가면 어떠세요.



 

 공개 망신이다.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실수든 의도적이든)마음에서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저는 명예훼손 논란이 줄어드는 사회를 희망합니다. 특히나 힘있는 쪽의 약한 쪽에 대한 명예훼손은, 사실상 본인이 더 우스워지는 결과를 낳을 뿐(나는 너의 말에 자극 받고 상처 받을 만한 약한 존재임을 공표하는 꼴)이란 인식이 우리의 인식 저변에 널리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른 고소를 거두는 것만이 명예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과, 소중한 각자의 어버이를 둔 이 사회 수 많은 자녀들 또한 지금 그 아름다운 용어를 훼손하고 있는 당신들 때문에 화가 나 있다는 것을. 화 내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어버이연합 어르신들께 말씀드리며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많이 웃는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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