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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희 Aug 18. 2016

그러니까, 전기료 폭탄 주범이 에어컨이 아니라고요?

전기요금 누진제는 감추고 '신상 가전'을 홍보하는 정부의 이상한 통계학


통계를 조삼모사식으로 이용하려 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뉴스를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광복절 연휴 직후, 동아일보와 채널 A, YTN에서 보도한 뉴스 중에 이런 게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전기료 폭탄 주범이 에어컨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전기료 폭탄주범?에어컨은 억울해요.(동아일보, 2016.8.16)


골자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1. 일 년동안의 총 사용 전력량을 다 합해 봤더니 에어컨보다 TV, 냉장고, 하다못해 전기밥솥이 더 많더라.

: 그래서 에어컨은 억울하다.


2. 10년 전 제품을 최신 것으로 교체하면 소비전력량(=전기요금)이 줄어드니, 가정에서 빨리 고효율의 새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에너지 수급 정책상 중요하다.

: 그러니 정부는 하반기에 가전제품을 신상(에너지소비등급 1등급 제품)으로 바꾸면 구입가의 10퍼센트를 환급해 주겠다.


제목만 보면 국민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여 인식 관계를 바로잡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을 알려주려는 것 같은데요, 내용은 그저 모순투성이에, 기사 쓴 진짜 목적을 의심하게 만드는, 눈가리고 아웅하기의 표본을 보는 것 같습니다.



1. 연간 사용전력량의 총합을 비교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기사에 삽입된 표. 스스로도 민망한지 '초당 소비전력랑은 에어컨이 가장 많다'고 한 줄 덧붙인 코미디스러움.

대체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국내선 항공기 정가가 부당하게 비싸다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가정합시다. 이런 상황에 이런 보도가 나옵니다. 친절한 표와 함께.


한 해동안 가정에서 쓴 교통비를 합해 봤더니, 연간 총 비용은


버스비의 경우 600,000 원

(1,250원*하루2회*한달에 20회*일년 12달)

항공료의 경우 224,000 원

(112,000원(대한항공홈페이지 기준)*2회(출장 및 가족여행))


알고 보니 버스요금이 항공요금 총액보다 높더.

(그래서 항공료는 억울하다)


이게 말이 되는 비교인가요? 대체 어디에서 비교 포인트를 잡아야 합니까?



2. 게다가, 지금 쟁점은 누진제에 땨른 '전기료'이지 '사용전력 자체'가 아닙니다.


1년에 약 36만Wh(와트시), 즉 한 달에 약 30,000 Wh를 똑고르게 사용하는 냉장고가 전기요금 상승에 기여하는 비중과

1년에 약 24만Wh라는 양을, 길어야 두 달 반 남짓한 기간에 몰아 쓰는 (한 달에 100,000~120,000Wh) 에어컨이 누진제의 등급 상승에 기여하는 비중은 어느 쪽이 높겠습니까?



3. '정부가 각 가정에서 고효율의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을 에너지 수급 정책의 중요한 점으로 보고 있다'는 말 자체는 이해하겠습니다. 정부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전력 수급을 염두에 두어야 하니까요. 허나 살림살이 팍팍한 우리가 에너지 걱정을 하는 이유는, '국가적인 전력 사정을 생각해서'라거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이니 아껴야 한다'는, 어린 날 포스터 대회에서부터 줄기차게 주입 받은 기억 때문이 아닙니다.


'비용'. 돈의 문제. 피부로 느껴지다 못해 살이 떨리게 만드는 '돈의 문제' 때문이죠.


표에 있는 것처럼 보급률이 80퍼센트에 육박한데도 사치재라 하는 그 놈의 에어컨 바람 좀 쐬었다고 해서 몇 십 만원을 더 한국전력에 송금해야 하는 데 대한 답답함, 화, 그리고 실질적인 가계의 압박을 느끼는 국민이 지금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마당에 '에너지 효율이 높은 새 제품으로 교체하면 전기료가 덜 나간다'는 메시지는, 분노를 활활 불붙이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름철 전기료 몇 십 만원 아끼려고 수 백만원 지출하면 다시 몇 십 만원을 환급받을 수 있고, 한 달에 몇 천원 정도 전기료도 낮출 수도 있다는 얘기죠? 일석이조네요 그쵸?


이게 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와네트가 현대 서울로 환생했다는 얘기 같은 말도 안 되는 말인가요.

에너지 절약에 동참해줄 것을 애국심과 공동체 의식에 호소하는 차원이겠지 하며 너그러이 생각해 봐도 도무지 화가 가라앉질 않습니다.


10퍼센트의 보조금까지 줘 가면서 새 가전제품을 사라고 권하는 정부나, 그런 정부의 정책을 친절히 소개, 아니 홍보하는 뉴스를 보도하는 YTN, 채널 A, 동아일보는 대체 뭣이 중헌 걸까요.


'대체 우리를 뭘로 보고 이런 기사를 버젓이 뉴스로 보도하는 걸까.' '기업과 언론과 정부는 과연 한통속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저 개돼지 취급받는 한 국민의 지나친 피해망상인 것일까요?


기사 속 전력소비 1등 먹은 진짜 억울한 전기밥솥은 지금 뚜껑이 열릴 판입니다.


가뜩이나 더운 날, 사람들을 더 열 오르게 만드는 이런 뉴스는 정말이지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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