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바다가 자리잡은 여수에서, 2016년에.
전라남도 여수에 처음 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주 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익숙한 듯 새로운 이 곳. 아마 한국에서 육지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몇 곳 중 하나가 아닐까. 다른 바다 도시보다 강한 바다 비린내가 풀풀 나고 푸른 산들이 멋지게 뿌리내리고 있는 여수는 그만큼 신비롭고 새롭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여수 EXPO역으로 내려가는 시간도 그만큼이나 즐겁다. 어떠한 테마라고 정하자면 천천히 느리게 보는 여행, 또 여수의 새로운 모습을 찾으며 내 삶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찾으려 한 여행이 아닐까.
2박 3일 여수 일정에서 가장 처음 온 곳은 이순신 광장이다. 왠진 모르겠지만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면 알 수 없는 웃음거리가 되어버린다. 뜬근없다나. 하지만 여수는 이순신 장군의 기가 억지로라도 남겨져 있는 곳이라 더욱 매력 있는 게 아닌가.
사실 여수에서 볼 것이나 할 것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관광지'라고 선정된 많은 곳들이 그리 멀지 않기에 짧게 와도 발만 빠르다면 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발걸음을 늦춰서 골목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바다 냄새를 맡아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는가. 이렇게 어시장에서 만난 상어로 의심되는 생선도 보고 말이다.
사실 어딜 가나 관광지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특히나 수산시장을 가면 부산, 여수 심지어 노량진까지. 생선이 많아서 그런 건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많은 경우 비슷하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생선을 보면, 아니면 조금만 자세히 생선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곳에서만 흐르는 특유한 비린내가 옷에 스며듬을 알 수 있다.
생선들이 잔인하게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얼음 속에 파묻힌 이 생선들의 대열이 심상치 않다. 아직도 피를 많이 묻히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흰 배를 까 보여야 하는 이것들은 우리 모두의 어느 정도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라는 골치 아픈 생각이 든다.
친구를 고등학교 때 교회 중고등부에서 만났다. 당시 학교도 달라 특히 친해질 이유가 없었지만 어쩐 일인지 가장 오래된 친구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둘 다 머리가 어느 정도 길고 기타 치는걸 좋아했는데 이제는 군대도 전역하고 각자 서울과 부산에서 짐을 싸서 여행을 다닌다.
특히 친구가 군복무 중이라 갈 수 없었던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것에 더욱 큰 의미가 있고 여행을 빌미로 서로의 앞 길을 치열하게 고민해볼 계기가 된 것이 즐겁다.
첫 끼니로 장어탕과 서대회를 영화식당에서 먹었다.
'먹방' (먹는 방송)이라면 '먹방'인데 장어탕과 서대회를 먹고 바로 해남상회로 넘어갔다. 소도매 해산물 가게에서 해산물 특선(?) 도시락을 개발 중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테이크아웃 자연산 해산물 도시락'이라니! 내가 아는 해남상회는, 가장 싱싱한 해산물을 접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 처음 먹어본 흑해삼부터 개불까지, 전라남도 하면 빠질 수 없는 해산물은 여기서 다 맛볼 수 있는 듯하다.
그렇게 바다의 비린내가 아직 가시지 않은 해산물들을 먹고 슬슬 걸어 이순신 광장 쪽으로 갔다. 여수는 향일암이나 산을 제외한 관광지는 모두 근접한 곳에 있다고 해도 거짓이 아니다. 택시로 10분, 걸어서 30분 거리가 많고 이순신 광장과 진남관은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남쪽을 진무 한다는 의미의 진남관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당시 진해루 자리에 지어졌다. 진해루가 정유재란(1716년) 때 일본군의 불에 의해 소실된 진남관을 1718년 전라도 좌수사 이제면이 다시 건립하였다고 한다. 후에 순종 (1910)부터는 50여 년간 여수 공립 보통학교와 여수중학교 등 교육의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그리 높지 않은 진남관에서 바라보는 여수 풍경은 소박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사실 여수를 만끽하려면 무언가를 많이 본다거나 하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그것은 볼 것이 없다는 건 아니다. 그저 삶의 터전에서 남아있는 영롱한 모습을 느낀다는 것, 그것으로 만족스럽다.
사실 많은 것을 보는 것이 무리인 이곳에서 2012년 여수 엑스포는 굉장한 볼거리였다. 세계 각국에서 참여하고 KTX까지 들어오게 만든 이것은 다만 폐허로 자리 잡고 있다. 과연 누가 옛 잔재 같은 엑스포를 보러 여수까지 오기나 할까? 싶지만 무언가 남겨져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해상 케이블카는 아시아에 두개 밖에 없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다. 분명 어느 홍보 글에서 읽은 것 같은데 정확한지 알 수 없다. 주로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케이블카 대신 바다를 건너는 케이블카는 분명 새롭다. 특히나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주차장에서 11층까지 올라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종류가 두 가지다. 일반 케이블카가 있고 크리스털 (투명 유리)가 있는데 후자가 왕복 20,000으로 일반보다 비싸다. 특히나 케이블카 바닥 유리가 깨끗하지 않아서 아쉽다. 하지만 줄을 기다리는 게 싫다면 혹은 아래를 조금이나마 보고 싶다면 후자를 추천.
해양케이블카는 약 1.5km나 이동한다. 특히 바람이 불면 더욱 스릴이 넘치고 바다보다는 대교와 찻길 위를 지나갈 때 그 짜릿함은 증폭된다. 산 위에서 하강하여 다시 산 위를 올라가는 매력이 있다.
케이블카를 가다 보면 높이를 실감할 수 있다. 왼쪽 이순신대교에는 22m라고 표지판이 쓰여있는데 그보다 훨씬 위에 있으니 실제 높이가 체감이 된다. 특히나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왼쪽 오른쪽 풍경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시야를 제시하기도 한다.
예전에 그런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1층에 있는 사람은 2층이 있는지 모른다고. 배가 많이 정착된 모습을 앞에서는 봤지만 위에서 보니 또 다르다.
비록 전체 이동거리는 1.5km이지만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남산 케이블카처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다시 위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인상적이었다.
이순신 대교가 있는 왼쪽을 바라보니 정착된 배들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배들이 보인다. 작디작은 조선소 그리고 그 위 알 수 없는 작은 마을. 해가 살짝 저물어가는 이 시간에 바라보는 모습은 참 따스했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지만 분명 야경을 보기 위해선 더 기다려야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면 한층 더 올라가 전망대에서 바다와 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그 모든 걸 덮는 하늘과 구름을 보면 시원한 여름 내음과 먼 산이 밀려온다.
제주도에서 잠깐 살 때, 부산에 갔을 때, 그리고 여수에 왔을 때 항상 느낀 것은 공통된 아픔이다. 바다 동네에서만 공감할 수 있는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은 모두 이 아름다운 바다로부터 오는 것이다. 야경을 보기 위해 얼른 어두워지길 기다리며 돌산 공원과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산과 바다가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 아름답게 피어있다고 하는 말이, 과찬이 아니다. 바다를 보아도, 산을 보아도, 하늘을 보아도 아름답다. 어떠한 볼거리라던지, 관광 특화 음식을 맛보는 것보다 이 곳에서는 그저 이곳의 자연을 보고, 이곳의 음식을 간단하게 먹는 것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여행이 된다는 것 - 그것이 여수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해가 다 저물고 나면 드디어 이곳에서 돌산대교를 바라보며 야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왠지 해가 저 산 뒤로 내려가는 동안 이 시간도 결코 나쁘지 않다. 특히 여유롭게 여수를 찾는다면 말이다.
야경을 기다리며 날이 슬슬 쌀쌀해졌다. 5월 중순의 여수는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했다. 야경을 보기 위해 마냥 기다리기보다 이곳 사람들의 터전을 조금이나마 침범하고 싶었다. 돌산 케이블카 타는 곳에서 조금 더 내려오니 마을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어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겼다.
경사가 생각보다 가팔랐던 길을 내려가니 작은 해안 동네가 나왔다. 길을 걸어 내려오자 바다 냄새는 더욱 진했다. 우리가 내려온 샛길은 바다와 산 중간에 있었고 그렇기에 각각의 냄새들이 서로의 영역을 넓히려 싸우고 있었다. 길을 내려오자 배들이 정착된 작은 정착장이 있었고 조금 더 오른쪽으로 걸으면 아까 케이블카를 타고 오며 보았던 조선소가 있을 것 같았다.
샛길에서 도로로 나와 오른쪽으로 걸으니 작은 배들이 모여 있었다. 배 안에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궁금해하며 한참을 쳐다보다 고개를 들었을 때 비로소 신기한 광격을 보았다. 내 앞에는 바다와 배들이 있고 그 뒤에느 작은 집들이 동산 위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왼쪽에는 조금 더 큰 동산이, 오른쪽에는 키가 비슷한 아파트들이 서로 균형을 잡고 있었고 그 위에는 포근하고도 시원해 보이는 하늘이 흐르고 있었다. 참 아름다웠다.
다시 등을 돌려 돌산대교 쪽으로 걸어갔다. 걷다 보니 조명들이 신기하다. 설명에 의하면 LED 조명 거리라고 한다. 해가 가장 밝을 때는 아마 해가 머리 바로 위에 있는 오후 2시 혹은 3시 일 것. 그런데 가장 찬란할 때는 해가 뜨고 이렇게 해가 질 때가 아닐까.
장군도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돌산대교가, 오른쪽에는 해양공원이 있다. 해가 거의 다 저물었을 때도 우리는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이 바다 앞에서 화려한 쇼나 높은 건물이 없어도 그저 이대로가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돌산공원을 향해 샛길로 올랐다.
야경은 여수를 대변하는 듯했다. 화려하지도, 허세도 않인, 그저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돌산대교와 이순신 대교에 조명을 쏘는 것 외에 딱히 우리가 생각하는 멋진 야경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풍경이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덜했다.
이번 여행에서 대부분의 모든 사진을 아이폰 (6 플러스)로 찍었다. 나머지는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 그래서인지 야경에 대한 걱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찍으면서 흔들리고 또 흔들렸지만 그러려니 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아침 (토스트와 계란)을 챙겨 먹고 여수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로 약 3천 원, 10분이면 간다. 터미널 반대편에 위치한 이마트 뒤 주차장에 있는 쏘카를 하루 동안 빌려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첫 드라이브 목적지는 향일암.
여수의 대부분 관광지와 볼만한 곳은 서로서로 근처에 있다. 예를 들어 게스트하우스에서 해양케이블카 까지 걸어서 오분, 케이블카에서 오동도까지 걸어서 오분,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수 엑스포역까지 걸어서 10분, 엑스포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택시로 10분. 게스트하우스에서 이순신광장까지 택시로 10분. 그런 여수에서 가장 먼 곳이 향일암이다.
지나다니는 버스도 50분에 한 번꼴로 있고 가는데도 거의 두 시간이 걸린다. 차로 가면 30분이 정도 걸리는 향일암은 꾸불꾸불한 돌산의 뒷길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 더 관광지 같은 느낌의 주차장과 거리가 나온다. 빽빽이 자리 잡은 갓김치와 여러 특산품 매장들은 마치 대만 지우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이곳이 훨씬 작고 메시지가 명료하다: "와서 사. 택배도 돼"
무료로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까지 가면 성인은 한 명당 2천 원을 내야 한다. 현금만 되지만 카드밖에 없으면 일단 올라가서 카드 결제를 하고 영수증을 매표소로 가져다줘야 한다. 길은 이렇게 계단 길과 돌아가는 길이 있는데 올라갈 때 계단으로, 내려올 때 산책로로 내려오면 편하다. 계단길은 천천히 가도 15분이면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가니 대웅전은 상당히 작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으나 이곳만의 문화가 산 위에 자리 잡혀 있음은 확실했다. 올라오며 작은 카페에서 파는 4천 원짜리 식혜를 봤는데 여기까지 올라와서 팔려면 조금 비싸도 괜찮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뒷길로 오면 차가 올라올 수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대웅전과 관음전에는 여자스님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 듯하였다.
아침부터 향일암에 올라갔다 오니 허기지기 시작했다. 여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옆에서 누군가 문자로 맛있는 꽃게 집에 가보라 하여 금세 차를 몰고 도착했다. 일인당 12,000원에 간장게장/양념게장 그리고 꽃게탕과 불고기까지 먹으니 배가 불렀다. 깔끔한 인테리어 식당을 좋아한다면 추천.
게장을 먹고 웅천해변공원에 도착했다. 웅천동은 신도시스러운 곳이었는데 바로 앞에 해변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해변과 공원이 있었다. 가장 즐거웠던 것은 이렇게 장도라는 아주 작은 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일곱 가구 정도 살고 있다는 장도는 물이 빠지면 노두 (징검다리)라고 불리는 방파제 길로 건너갈 수 있다. 들어가니 집인지 의문이 가는 건물들과 몇몇 낚시하는 사람들 빼고 주민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바로 맞은편이 신도시 단지에 비해 이렇게 여유롭고 비밀스러운 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웅천동을 떠나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주차하고 걸어서 오동도로 향했다. 입장료도 없는 한려해상 국립공원 오동도에 오동나무는 없다. 오히려 관광객이 많고 여수를 검색하면 매번 빠짐없이 나오는 곳이라 거부감도 들었으나 막상 걷다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락내리락 오동도를 살펴보고 나서 내려오는 길에 지압 발판은 시원하게 피로를 풀어주었다.
그렇게 해가 저물 즈음에 오동도를 나왔다. 다시 방파제를 건너면서 참 여수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어제만 해도 '우리 너무 빨리 다 본 것 아닌가'라며 농담을 했는데 그것이 참 좋았다. 오히려 이곳에서 며칠간 더 있으며 그저 이대로 시간을 보내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오동도 방파제 입구에서 도보로 5분이면 가는 숙소에 잠깐 들렸다 차를 반납하러 다시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순신 광장에 가면 해양공원을 걷기 전에 거북선 모형이 있는데 그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또 다른 느낌이다. 유치한 모형들과 홍보영 영상이 반복 재생되더라도 이곳에서 바라봤을 여수 바다는 어땟을지 조금이나 상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수에서 시내라고 말하는 곳은 어디일까? 여수에서 시내는 크게 두 곳으로 나눠지는 듯하다. 여수의 시내와 여천의 시내. 원래는 개별 구역이었던 여천이 여수시에 포함되면서 시내 또한 두 곳이 생긴 것 같은데 여수의 시내는 서시장/교동시장이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서시장은 이순신 광장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한다.
서시장엔 여러 포장마차들이 즐비하다. 어디가 더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2번 포장마차에서 해물 삼합을 먹었다. 해물 삼합은 해산물, 삼겹살, 그리고 김치가 섞여서 먹는 한판 음식인데 실제로 예전에는 '한판'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한판이나 고기쌈이나 참 독특한 문화임이 분명하다. 한 번에 다 섞어서 먹는 것을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그럴 때 느끼는 맛의 조화가 분명 있다.
그렇게 여수에서의 즐거운 이틀이 지나갔다. 충분히 느리게 보고 움직였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많이 보았고 시간은 금방 흘렀다. 얼마나 더 느리게 걸어야 충분하다고 느낄까?
2012년 엑스포가 열리던 당시 나는 한국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2016년에 방문한 엑스포 디지털 갤러리는 여수 엑스포역으로 가는 나의 길의 관문이자 충격이었다. 마치 북한에 온 듯, 아무것도 없는 건물과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모습이 놀라웠다.
2012년 엑스포 당시의 열기는 알 수 없으나 비어있는 공간들과 북한 혹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진열이 완벽했던 편의점을 잊을 수가 없다. 사용되지 않는 공간에 차라리 청년 사업가들을 위한 무상 사업을 진행해도 좋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엑스포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친구는 엑스포역에서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고 나는 바로 기차에 올랐다.
여행을 마치며
기차 타고 오며 생각했다. 내가 한국에 온지도 이제 1년 반이 되었고 여수도 여러 번 왔었는데, 무엇이 그렇게 새롭고 신기할까. 아마 여행객의 색안경이 바라는 역동감 대신 평온한 일상을 선사해서 그런 건 아닐까.
마음에 잔잔함이 필요할 때, 혹은 짧게 쉬어가는 시점이 필요할 때 여수를 다녀와도 좋겠다 싶다. 잔잔한 바다를 끼고 산을 등에 엎고 있는 여수. 그곳에서 잠깐의 여유를 찾았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