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루비 Sep 25. 2017

내 인생의 수많은 비상용품

여분 계좌에 대한 고촬.

예전에 농협 계좌를 닫은 적이 있다. 학교에서 입학할때 학생증이랑 같이 만들어준 계좌인데 나는 주 거래 은행이 국민이기도 하고, 집 주변에 농협이 없어서 결국엔 졸업과 동시에 닫아버렸다. 근데 은행직원이 진짜로 닫으실거에요? 요즘엔 통장 새로 만들기도 어려운데 진짜로 닫으실거에요?라고 거듭 물어봤었다. 그땐 영업때문에 그러시나 하고 아무 생각없이 ‘네 닫을건데요?’라고 했었다. 주변에서도 귀찮게 뭐하러 닫아? 은행 계좌는 닫는거 아니야라고 했었던거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될 지 모르잖아’라는 심리가 반영되는 것 같다.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는 미래를 대비해 유지해놔라. ‘지금 당장 필요없지만 미래엔 어떻게 될지 모르니 버리진 말고 어딘가 치워놔.’ 생각해보면 있을지 없을 지 모를 재앙을 대비해 들어두는 생명보험과도 같은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이런 생각으로 ‘킵해둬’를 적용시킨 것들이 너무 많다. 너무나도 많다. 아까 예로 든 보험도 그렇지만 물건도 똑같다. 언제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버리지 못하는 창고에 쳐박혀있는 옷, 신발, 가전제품, 수많은 그 물건들. 막연하게 모으는 적금(물론 나도 내 미래를 위해 적금을 모은다.) 혹시 잘 될수도 혹은 현 애인과 안될 수도 있잖아라는 마음으로 관리하는 어장 속 물고기들.


오지않는 미래를 대비해 쟁여놓은 비상용품들*(을 가장한 쓸모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과연 이것들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봐야겠다. 요즘 미니멀리즘이다 뭐다 하고 재산을 간소화하고 물건을 간소화하는 생활방식이 유행하는데,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많은 비상용품(비상人도 포함해서)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몇 살이나 살지 어떻게 알아. 더 안정적이고 편안한 미래를 위해 지금 현재를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이 수많은 비상용품들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비상용품이 있는지, 그리고 과연 그것들은 정말 필요한 것인지 내 인생을 돌아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