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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진남자 Mar 17. 2017

봄...캠퍼스...낭만...그리고 새소리

봄과 함께 찾아온 새로움의 기대

아침 일찍 일어나 새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 새 내가 자연의 일부이며 신선한 공기가 느껴진다. 


내 영혼의 맑아짐...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수없이 많은 아티스트들이 생산해내는 음악도 공감이 되고, 몰입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아무런 리듬도 없고 가사도 없는 새소리가 가끔은 휠씬 더 많은 쉼과 내 영혼을 맑아지게 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학교 캠퍼스는 특별한 곳이다. 필자가 공부했던 1990년대 캠퍼스의 모습과 2017년의 후반의 캠퍼스의 모습은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잔디에 옹기종이 모여 앉아서 웃고...대화하고...게임하고... 무엇인지 모르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차며 새

(그림1 : 고려대학교 자연계캠퍼스내 학생들의 모습)
(그림2 : 잔디광장에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

학기를 시작하고 있다. 새로운 대학생으로서 시작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다수의 재학생들 역시 새로운 학기의 시작은 활기참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우리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어찌보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시작되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어찌보면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열대기후에 속한 많은 국가들 혹은 냉대기후에 속한 많은 국가들은 계절의 변화를 크게 인지하기 어려워 날짜상의 파티를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축복된 대한민국은 뚜렷한 4계절이 있어서 계절의 변화가 쉽게 느껴진다. 그러하기에 뭔가를 결심하기도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도 좋은 조건을 갖춘 자연의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은 누구나 그 젊은 시절의 낭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중학교 시절이든 고등학교 시절이든...아니면 대학교 시절이든 소중한 학창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 특별히 사람들은 학창시절의 추억에 대해서 회고하는 것일까? 필자 역시 사회에서 조금 찌들어서 살다보니, 나름대로의 이유는 생기는 것 같다. 


필자의 나름대로의 이유를 추적해보면,


첫째, 학창시절이 그립게 만드는 것은 내 어린 날 함께 했던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학교를 다닐때만 하더라고 중학교는 50명 넘게, 고등학교도 50명 넘게 급우들이 있었다. 물론 모두와 친하기는 어려웠지만, 절반이상은 친밀한 관계를 가졌었기에 많은 친구들이 기억에 남는다. 비록 공부밖에 안했었지만, 쉬는 시간 틈틈히 수다를 떨며, 같이 체육과 빌려가면서 입어가며...이런저런 추억을 가지고 언제 생각해도 웃을 수 있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둘째, 이해관계가 없는 평등한 사회였다. 

물론 절대적인 평등의 기준이 뭔지를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학창시절에는 너와 내가 별다르지 않은 그냥 '친구'였다. 나이가 들어 그들을 보니, 서로다른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냥 친구였던 그들이 지금은 나름대로의 사회안에서의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어서, 어찌보면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사람들도 많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그냥 지금도 '친구'로서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같은 고민을 가지고 살았던 동시대의 증언자들이다. 

중고교시절 혹은 대학교시절만하더라도, 거의 목적은 단하나, 대학입학전까지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 대학교 절업후에는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이냐는 것이다. 너무 심플했지만, 인생 전체를 생각해보았을때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30% 결정되고, 직업을 가지면서 30% 시작되고, 결혼을 하면서 40% 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창시절의 친구들은 인생의 60%를 함께 고민하였고, 함께 뒹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정겹다. 정겹다 못해 그립다.


캠퍼스는 낭만이 있다. 푸르른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화려한 불빛들의 향연이 없더라도, 드넓은 푸른 바다의 광경이 없더라도 캠퍼스에는 지식과 사랑, 만남과 네트워킹, 새로움과 받아들임.....


수없이 많은 것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질수 있는 열매의 장터이다. 이런 캠퍼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간만에 찾은 캠퍼스에서 필자 역시 새로운 마음을 배우고, 배양하여 새로운 것들은 창조해 내고자 한다. 


지금도 새들의 지저귄다. 어떤 노래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내며 지저귀고 있다. 그만큼 머리가 상쾌해진다. 다시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자연으로 귀의하고 싶다. 생활의 불편함이 없다면 이렇게 도심을 떠나 수일간 자연으로 귀의하는 것도 삶을 삶답게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이 아닐까???




'새로움'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기대로서 받아들일 것인가?


본인의 정신적 노화정도가 궁금하다면 위의 질문에 답변을 해 보아라.


답은...생각보다 명쾌하다.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미 당신은 젊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초등학교 시절때를 생각해 보아라. 가보지 않았던 곳을 엄마손을 붙잡고 가고자 했던 열망, 타보지 못했던 룰러코스터를 타보겠다고 졸랐던 모습들, 시냇가에서 송사리만 보아도 잡아서 온갖 종류의 고문을 하며 알아보고자 했던 호기심 많던 여러분 자신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아라 . 그땐 분명히 젊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의 입에서 변화가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이미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아서일까? 아니면 이것이라도 이룰 것들을 잃게 될까봐일까? 이것 역시 쉽게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처절한 경쟁속에서 성장하여 왔고, 사회는 경제적 지위를 가진자와 못가진자, 사회적 지위를 가진자와 못가진자, 권한을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등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이룰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는 없지만, 잃게 될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다. 


새로운 변화는 현재 질서의 변화를 지향한다. 


변화는 변화자체로서 그 의미를 가진다. 변화에는 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의 결과가 속성을 가지기 시작한다. 즉, 긍정적인 변화, 부정적인 변화...이것 역시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서 그 긍정과 부정이라는 속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사회는 다양한 이해관계에 놓여진 것들이 많기에 많은 '변화'들이 단순히 긍정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다. 다만, 다수의 의견과 소수의 의견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통해서 기존의 질서는 무너져야만 한다.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 그룹의 속성은 이미 많은 것들을 기득권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질서가 별로 불편하지 않고, 현재의 질서가 별로 손해가 없고, 현재의 질서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부족하지만, 그래도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그룹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캠퍼스 중요하다. 캠퍼스에 있는 이들은 일종의 특권을 가지고 있다. 

'시간'과'열정'이다. 대학생들은 적당한 수강신청이 가능하기에 자기가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원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청년의 시기이다. 그래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며, 선배들이 가진 문화를 생각의 체로 걸러 얼마든지 당당하게 변화를 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그룹들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항상 '기대'함이 존재한다. 


비록, 그 '기대'함이 20년넘게 '의미없음'으로 나타나더라도 이 세대를 변화시키며 이 세대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대학생'들뿐이다. 이들은 가진 특권으로 대학생들은 이 사회를 변화시키며, 잘못된 경제적 질서를 새롭게 바꿔가며,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는 행동의 중심에 서 있다. 


그래서 필자는 캠퍼스가 설레인다. 이곳에서 쌓을 수 있는 지식의 깊이...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안락함...

이곳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키워가는 시간과 역량들...

이곳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생각의 학습들...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는 그룹과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나 따라가기 급급한 수용하는 그룹과

이 변화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변화를 거부하는 그룹과

이 변화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변화는 하나, 기존의 틀에서 변화를 꾀하는 그룹...


각각의 모양으로 대세적인 변화를 바라보며 수용한다. 이런 그룹의 특성에 따라서 가기때문에 사회적인 변화를 경제적인 변화보다 어렵다. 그러하기에 캠퍼스에 있는 대학생들이 소중하다. 이들은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그룹이다. 사회적 변화는 가치와 연결된다. 


소중한 가치만 있다면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투자할 수 있는 그룹은 세대 전체를 통해서 대학생 시절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 필자가 바라는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 역시... 이러한 가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합의된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온전한 변화를 위해.


(그림3 : 변화는 높이 쌓인 성이 아닌, 하늘아래 있는 건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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