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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iwan Dec 17. 2015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읽기

- 사랑이란 심장을 지켜내는 일

                                                                                                                                                                                                                              

  황야의 마녀는 소피에게 할머니가 되는 저주를 내린다. 소피는 언제나 구석에 있었다. 거기서 그녀는 화려한 모자들을 만든다. 그 예쁜 모자들은 다른 처녀들의 머리에 씌워진다. 단 한 번도 예쁘지 못했던 소피. 아무런 죄도 없고, 누구에게 시기를 사는 일도 없이 조용히 일만 하던 그녀에게 왜 저주가 내린 것일까? 그건 하울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황야의 마녀는 하울에게 빠진 소피를 보았던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이처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저주는 소피가 감내해야 할 것. 용기를 내어 소피는 하울이라는 절망으로 들어간다. 그것도 추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절망이라는 커다란 구덩이다. 절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희망을 꿈꿀 수 있는 마음을 내어놓을 때 절망은 그 빈자리를 검은 구멍으로 채운다. 하울은 캘시퍼와 계약을 맺고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었다. 하야오는 악마를 심장을 잃어버린 존재로 규정한다. 황야의 마녀가 그렇고 캘시퍼가 그러하며 하울 역시 그러하다. 전쟁을 벌이는 세상은 절망의 바다다. 하울은 우울한 눈으로 절망의 바다를 날아다닌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우리는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젊음을 잃어버린 소피는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소피는 말한다. "늙어서 좋은 것이 있다면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절망을 키운다. 무언가를 갖지 못할 것 같은 불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결핍을 사람들은 다른 것으로 채우려 든다. 그러나 사실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다.


절망에게 다가가기


  삶이란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 자신의 심장을 끝없이 뛰게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소피는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그녀는 씩씩하게 청소를 하고 음식을 차리고 하울과 마르클 그리고 캘시퍼를 돌본다. 절망에 빠지지 않은 자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이란 절망하지 않고 언제나 다시 시작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소피는 지혜(sophi)롭다. 지혜가 절망의 내장 속에서 괴물이 되어 울고 있는 하울을 찾아간다. 지혜가 절망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저주가 풀리고 소피는 다시 젊음을 되찾는다. 그러나 머리는 하얗게 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저주가 풀리더라도 고난의 흔적은 남는 법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고난의 흔적은 소피가 얻은 지혜를 의미하기도 한다. 소피는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친다. 사랑한다는 건 저주를 받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저주의 구덩이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고 끝없이 노력할 때 사랑은 비로소 완성된다고. 나와 너의 '심장'을 굳건하게 지켜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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