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켈러,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이야기의 이야기

by 도리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익숙한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서 호랑이는 홀어머니를 잡아먹은 후 아이들도 먹으려고 한다. 아이들은 경계심을 가지고 재치를 발휘해서 호랑이에게서 도망치려 하지만 막다른 상황에서 빌었을 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 아이들을 구해준다. 그 후 오누이는 해와 달이 된다.


책마다 조금씩 디테일이 다르지만 큰 흐름과 등장인물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태 켈러의 이야기는 다르다. 특히 호랑이가 다르다. 그 호랑이는 서양의 이야기의 검은 개처럼 음산한 기운을 풍기기도 하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으로 유혹하기도 하며 맞서 싸우는 용맹함을 요구하기도 한다. 여러 얼굴을 가진 호랑이에게서 릴리, 언니 샘, 엄마 존, 할머니 애자의 모습이 다 겹쳐있다.


한국이 익숙한 나에겐 책 속에서 할머니의 이야기가 모계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미처 전달되지 못한 부분들이 보인다. 반면 이민 첫 세대인 할머니가 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지 않았는지, 그 이야기가 엄마 존에게는 왜 닿지 못했는지, 하지만 둘째 손녀인 릴리에게는 그토록 생생하게 전달되었는지가 구태연한 설명 없이도 너무 이해되었다. 때로는 자신의 비극을 너무 가까이에서 경험하거나 지켜본 사람에게는 공유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다.


나는 할머니 애자의 이야기가 엄마와 자매들에게 더 많이 전달되기를 바랐다. 한국의 비극을 기억하는, 그래서 한이 맺힌 세대의 이야기가 더 많이 전해지길 그래서 할머니가 슬픔에 빠진 이야기들을 다 건져내지 못했고, 언어가 다른 이국 땅에서 그 이야기를 잊고자 했다는 사실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손실되고 불완전한 이야기가 릴리에게 넘어갔을 때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다. 그 이야기엔 할머니 애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할머니의 슬픔과 비극만 담겨있지 않다. 대신 그의 사랑과 단단한 심지가 담겨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조금은 뿌리와 다르고 전통적이지 않더라도 한국이 담긴 이야기 말이다. 태 켈러와 같이 4분의 1만 한국인이더라도, 평생을 해외에서 살았어도 한국의 이야기를 이어갔으면, 그리고 어딘가 다르고 조금은 낯선 그 이야기들이 한국으로 더 많이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언젠가 나의 이야기도 이해받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