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는 사람들
그런 시기가 있었다. 애써 살아야만 삶을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저 애쓰고 있는 것이 힘들었지만 애쓰는건 무섭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애써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모른다는 건 무서웠고 더 어려웠다. 견뎌내다보면 괜찮은 날이 올거라는 생각보다 구름같은 의심이 가득했다. 이전에 열심히 살았던 시기가 지금 나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도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임솔아 작가의 소설집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애써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만두는 사람들’의 혜리는 스웨덴에 살면서 한국인들처럼 살아가지 않으면서도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초파리 돌보기’의 지유는 잊지 않기 위해 애쓴다. ‘희고 둥근 부분’의 진영은 병명조차 낯선 미주신경성 실신을 앓고 있으면서도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무게를 느낀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의 문경은 늘 다른사람을 위해 돌보다 이젠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을 내밀었다’에서 하연은 어떤 가짜의 역할을 수행한다. ‘단영’의 능원은 자신과 밤에도 낮에도 같이 생활하던 아란에게 조차 본명을 알려주지 않는다.
언급된 하연, 지유, 진영, 혜리, 문경, 능원 그리고 ‘중요한 요소’의 소민까지, 이 인물들은 각기 다른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스쳐 지나가는 주변인물로 등장하다가 갑자기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 서로를 확인해 주세요’라는 단편에서 소환된다. 종이 책에서는 이 소설은 소설집의 한 가운데, 회색 용지에 쓰여 있어 다른 단편들과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앞선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다시 등장한다는 점도, 온라인 상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 점도 그렇다. 처음에는 동명이인인지 같은인물인지 조차 헷갈렸다. 왜냐하면 꼭 중심인물이 아닌 사람들도 있었고, 앞선 소설에서도 같은 이름의 인물들이 있어 이것이 평행세계처럼 같은 인물의 다른 세계인지, 같은 시대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말한다. 단편에서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과 태도로 온라인에서 대화한다. 그래서 처음엔 작가가 바로 그 혼란스러움을 의도했나보다, 했는데 다시 읽으니 동일한 인물들의 재등장이며, 그들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이렇게 이 소설집은 각각의 단편에서는 지금 한국 사회를 도려낸듯한 예리함을, 그리고 ‘마피아’에서는 인물들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며 책의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뚫어보는 시선과 더해진 이야기 속에서 지금의 한국을 그려본다. 조금은 부딧히고 실수해도 용납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더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