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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Dec 17. 2023

지나간 한 시절의 아쉬움

팟캐스트를 멈추다

비공식 마지막 녹음 날. 마지막 멘트를 하며 멤버들을 바라보는데 살짝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2019년 5월 1일 노동절 팟캐스트 계정을 만들고 5월 3일 첫 에피소드를 업로드했다. 그로부터 거의 5년 가까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 이 팟캐스트에도, 각자의 멤버들에게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모두 같은 회사에서 시작했는데 어떤 멤버는 이직을 했고 멤버가 바뀌기도 했다. 어떤 멤버는 아이를 가졌고 낳았다. 어떤 멤버는 독립했고 또 어떤 멤버는 아팠다.


팟캐스트를 처음 시작할 즈음 회사는 불안정했다. 아직도 비정규직 동료들이 태반이었고 본사 팀 소속이 아닌 정식 회사로 분리된 지 막 1년이 된 참이었다. 크게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단 말과 다름없다. 함께 노를 저어 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건 즐거웠지만 마음 한 편으론 늘 불안함이 있었고 아마도 그때 많은 동료들이 사이드 잡을 꿈 꿨던 게 아닐까 싶다. 그 전해인 2018년까지 나 역시 언제나 두 어 개 이상 일을 하던 엔잡러였으므로, 팟캐스트를 해보자는 동료의 제안에 덥석 응했다.


동료는 라디오 피디가 한때 꿈이었던 사람이다. 반면 나는 라디오를 잘 듣지도 않았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너무 촌구석이라 분하게도 전국에서 인기를 끌던 표준 방송 대신 재미없는 지역 방송이 나오던 곳이었고 그나마도 안테나를 길게 뽑아 들어도 방송이 잘 잡히지 않아 이내 포기하곤 했다. 그 이후로 모든 매체는 활자거나 영상이었던 내게 듣는 매체는 새로웠다. 얼굴이 나오지 않는 매체가 주는 편리함과 신선함이 좋았다. 시네필은 아니지만 넷 다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떠드는 걸 더 좋아했으므로 녹음 시간이 늘 기다려졌다.


그날도, 녹음을 끝내고 서로를 보는데 분명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 녹음 시간은 우리에게 일종의 치유다. 영화와 드라마는 사람 마음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던 어떤 감정들을 건드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그 감정을 고이 담고 기록해 녹음 시간 동안 서로에게 공유한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알지만 편할 만큼 오래 알았고 듣는 사람들은 우리의 얼굴을 모른다. 그래서 더없이 편하게 깊은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때론 숨이 안 쉬어질 만큼 웃기도 했다.


영상을 만들고 여러 사이드 잡을 하며 느낀 건, 꾸준함이 가장 큰 무기라는 점이었다. 오래 하면 그 자체로 무기가 된다. 뭐든 시작하는 게, 그리고 시작한 후 한 번 더 해내는 게 그 무엇보다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4년 반은 결코 헛되지 않다. 듣는 분들을 위해 명확히 매듭지어야 하는 걸 알지만 너무 아쉬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문틈을 열어두고 싶다.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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