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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Dec 31. 2023

인생 첫 차를 사다!

그런데 티코다?

얼마 전 인생 첫 차를 샀다. 서울에서 차를 사는 건 미련한 짓이라 생각해 왔던 내가 마음을 고쳐 먹고 무려 내 차를 사버렸다. 변은 이렇다.


수능을 치고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면허를 따라던 부모님의 말씀을 여느 때처럼 싹 무시한 채 놀러 다니기 바빴다. 누가 그랬던가.. 수능 직후 면허를 따지 않으면 10년 뒤에나 딸 수 있다고. 저주를 알고도 노력하지 않은 난 12년 뒤에야 땄다. 그것도 내 자의는 아니었는데, 캠핑이나 여행을 갈 때마다 장거리 독박운전을 해야 했던 애인이 자꾸 흘겨봤기 때문이다.


다행히 당시 애인이 소형 세단을 갖고 있어 덕분에 장롱면허는 면하고 바로 운전을 시작했다. 그런 지 조금 안 돼서 애인은 갑자기 기존 소형차를 팔고 더 큰 웨건인 xc70을 사버렸는데, 당시엔 구 스웨덴 차니 괜히 반갑고 간지도 나고 크고 캠핑할 때 여러모로 좋고 차박도 할 수 있어 환호했으나 막상 내가 운전하려니 당혹스러웠다.


전부터 큰 차 큰 차 노래를 부르고 나도 차를 사면 큰 차를 사야지~ 했으면서 막상 큰 차를 끄니 소형차보다 더 넓은 차폭과 앞으로 긴 웨건 형태 때문에 도통 감을 잡기 어려웠다. 물론 계속 끌면 익숙해질 문제다. 그래서 이번에 차를 바꾸면서 내 지분도 넣는 등 공용 차 개념으로 얘길 했으나 정작 나 혼자 쓱 끌고 다니기엔 초보 운전에게 너무나 부담이었던 거다. 게다가 애인과 나 모두 각자 친구들과도 여행을 잘 떠나는데 그때마다 차는 하나인데 내가 자신 있게 탈 거라고 목소리 높이기엔 더욱 부담이었다.


그러니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도 내 차를 타고 가자는 말은 더욱 쏙 들어갔으며 애인과 함께 갈 때도 자꾸만 애인에게 운전을 미뤘다. 이러면 안 된다. 이러다 장롱 된다. 나도 내 차를 갖고 내 기동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그럼에도 서울 사는 한 집에 차가 두 개는 조금.. 그렇다. 환경적인 측면이나 비용 유지 측면이나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았다. 그래서 차와 자전거 그 어디쯤 느낌인 '질문 사절'로 유명한 초소형 전기차 모빌리티도 알아봤으나 가격은 초대형이었다.

출처 인터넷의 어디선가..

어쨌거나 애인의 차와는 정반대의 차를 사고 싶었다. 그래야 명분도 있지. 초소형 차, 전기차 또는 경차, 아주 저렴한 차, 연비가 엄청 좋은 차 etc. 그러나 요즘 나오는 모닝이나 스파크는 내 미감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 딱 떠올랐다. 이거다. 티코다.


90년대에 만들어져 불티 나게 팔렸다던 국민 경차 티코. '작은 차 큰 기쁨'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티코는 아주 작은 크기에, 경차에, 연비가 수동 기준 20이 넘는 차다. 오죽했으면 기름 냄새만 맡아도 간다고 했나. 사실 우리 집안이나 주변에선 티코를 타는 사람이 없었고 내가 티코를 잘 기억하기에 당시엔 너무 어렸다. 그래 나름의 이것도 올드카니, 소장 가치도 있겠지.


티코로 결정한 후부터 한 두 달 정도 여러 플랫폼에서 매물을 둘러봤다. 아무래도 오래된 차다 보니 더욱 따져볼 게 많았다. 사고 여부나 보험 이력, 키로수는 물론이고 올드카의 숙명인 미세 누유나, 하체 부식, 엔진 상태, 소유자 변경 횟수 등을 잘 따져 봐야 했는데 이미 올드카를 골라본 경험이 있는 애인 덕분에 그래도 기본적인 개념은 갖고 따져 볼 수 있었다.


쉽진 않았다. 매물 자체도 적을뿐더러 고질병이 있는 차량도 있고 올드카 특성상 리스토어를 한 경우가 많아 내부가 휘향 찬란한 차들이 많았는데 딱 질색이다. 무조건 순정 그대로를 원했으며 고르고 고르다 마음에 드는 차량을 발견했다. 마침 수도권에 있었고 금액도 합리적이고 수리할 부분도 거의 없었고 내부도 순정 그대로였으며 무엇보다 소유주가 그 긴 시간 동안 딱 두 명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시운전을 해보고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오래된 차인만큼 내 공력 없이 전문가에게 맡기고 싶어 티코 수리로 유명한 카센티에 가 오버홀을 맡기고 실내 세차 업체에 디테일링을 맡기고 기다리고 있다.

정말 장인 그 자체

땅바닥에 붙어가는 느낌, 가는 중인지도 모를 조용한 요즘의 차들과 달리 힘차게 들리는 내부의 엔진음, 떨림, 키를 직접 꽂아 돌려야 하는 아날로그, 장난감 차 같은 플라스틱 대시보드와 직물 시트, 요즘은 버스에서나 볼 수 있는 힘찬 기어 손잡이, 카트라이더 같은 승차감. 하나 같이 별로인 부분인데 왜 이렇게 재밌고 웃기고 벌써 소중할까. 첫 차라 이미 콩깍지가 씌었나. 이래서 사람들이 펀카 펀카 하나.


친구들을 태우고 등산을 가고 캠핑을 가고 애인을 태우고 큰 장을 보고 혼자 꿀꿀할 때 파주 같은 데로 훌쩍 떠나고 대중교통으론 영 불편하고 돌아가 갈 때마다 한숨 나오는 병원들을 차로 금방 가고. 이런 생각들을 하면 벌써 설렌다. 내 기동력을 갖는다는 것.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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