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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Jan 07. 2024

초보운전은 힘들다..

선유도에서 행신 나들이

태어나 혼자 가장 오래 운전한 건 강서구 화곡에서 강동구 둔촌까지였다. 그때는 정말 왕초보라 너무 더워도 운전 중 에어컨을 틀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돌아오는 길에는 올림픽대로로 빠지지 못해 그대로 북쪽으로 올라갔으며 거기서도 심지어 잘못 빠져 구리로 잠시 나갔다 다시 강변북로를 타고 대교를 건너 내려오기도 했다. 비가 억수로 오는 날, 하늘도 울고 내 눈도 울고 등줄기도 함께 울며 차를 몰았다.


그땐 내 차가 없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운전해 이동하며 운전 능력이 성장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난 이제 자차 소유자란다. 친구와 일요일에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왠지 그 전날 밤에 친구집까지 차를 끌고 가도 될 거 같았다. 내가 화곡 살 적에 친구와 가끔 서로의 집에서 급만남을 하기도 했는데 밤늦게 택시를 타면 10분이 조금 넘게 걸릴 정도로 가까웠다. 화곡이나 지금 사는 선유도나. 왠지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차 오른다!


어젯밤, 예상치 못한 눈이 펑펑 내렸지만 서울의 제설을 믿고 출발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거의 10시가 다 돼 가는 밤늦은 시간 다른 도시로 자유롭게 넘어갈 수 있다니. 진짜 어른이 다 됐네. 혹시나 추운 날씨 때문에 티코에 시동이 걸리지 않을까 봐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 착한 티코는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솔직히 말하면 성산대교 타기 전 집 앞 나들목에서 올림픽대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있는데 티코가 못 올라갈까 봐 긴장하기도 했으나 너무나 기우였다. 잘 나가 아주~


하지만 초보운전답게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그 첫 번째. 사이드 미러에 사각지대가 있는데 자유로에서 왼쪽 차선으로 끼어들 때 창문으로 직접 뒤를 확인하지 않아 뒤차에 가깝게 끼어드는 바람에 클락션을 맞았다. 비상깜빡이를 켜고 죄송하다고 빌었지만 그분도 많이 놀라셨겠지. 사각지대가 있더라는 남자친구의 말을 새겨들을걸. 그 이후부턴 사이드 미러 이후 창문으로도 살펴보며 사각지대를 극복하고 있다.


두 번째 실수. 실은 아직도 네비 보는 게 쉽지가 않다. 남자친구가 운전할 때 옆자리에서 보며 잔소리하는 건 쉬웠는데. 가는 길에 지하차도 옆 길로 빠져 고양 행신 쪽으로 향해야 했는데 지나쳐 지하차도 안으로 보기 좋게 들어갔다. 네비 시간이 늘어나는 끔찍한 안내음이 들렸다. 왜 미리미리 안 알려주는 거야? (알려 줬을 거다). 그 덕에 행신을 넘어 이케아까지 건너갔다. 거기서 돌아올 때도 제대로 못 빠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세 번째 실수. 최악의 실수. 신호 대기 후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눈도 오고 밤도 늦고 해 차선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는 변명을 해본다. 좌회선 대기 줄을 그대로 지나버렸고 앞에 있는 버스 전용 차로로 직진해 버린다. 내 눈앞에 정류장이 가까워지는 걸 믿을 수 없었고 급하게 오른쪽 깜빡이를 켜보지만 사람들은 껴줄 생각이 없다. 나라도 그러겠다. 제발요. 겨우 착하신 분이 속도를 늦춰 주어 겨우 차선을 바꿨다. 감사합니다. 20분 걸릴 거리를 거의 30분이 걸려 도착했다.


친구 집에서 얻어 잔 다음날, 의기양양하게 친구에게 직장까지 데려다주겠다 했으나 사실은 친구가 내심 거절하길 약간 바랐다. 하지만 친구도 무섭지만 궁금하다며 차에 탔다. 친구 직장인 여의도 부근까지 차를 모는데 하필 자유로에서 사고를 두 건인가 세 건이나 봤다. 초보운전의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어찌어찌 잘 끼고 잘 빠지고 하여 안전하게 친구를 내려줬다. 사고도 없었고 큰 실수도 없었다. 모든 게 스무스하게 잘 진행됐다. 안심했다.


내가 여전히 초보운전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살면서 못하는 걸 아예 하지 않아 그런지 해내기 크게 어려운 일이 없었다. 뭐든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잘하는 축에 속했다. 그런데 운전은 아직 많이 시간을 들이지 않아서인지, 겁이 좀 있어서인지 아직도 초보다. 운전 실력을 늘리기 위해 차까지 샀으니 이제 늘겠지만 왠지 드는 조급함을 숨길 수 없다. 친구 앞에서 너무 왕초보처럼 보이고 싶진 않았다. 나 좀 잘한 거 같아.


다시 네비에서 집을 찍는데 계기판이 서늘하다. 미친..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고 여기까지 왔다. 미쳤다. 왕초보 여기 있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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