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ㅎㅈ Jan 21. 2024

출퇴근하는 동안 휴대폰 보지 않기

몇 달 전부터 혼자 세운 출퇴근 규칙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휴대폰 보지 않기’. 예전 통근 시간이 35-40분이던 시절엔 출근길엔 주로 김현정의 뉴스쇼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다. 지금 집으로 이사 오고부터 출퇴근 시간이 대략 15분 정도로 크게 줄어버렸는데, 뭔가를 하기엔 꽤 애매한 시간이다.


게다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출근길이 시끄러움 대신 고요함으로 채워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음악도 잘 듣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15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 버스 안의 누구나 그렇듯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 sns의 밀린 소식과 여러 글들을 읽었다.


sns 앱 하나를 켰을 뿐인데 알고 싶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의 지인들 소식이 밀려 들어오고 나의 소식이나 생각, 기분 역시 그 한복판에 서 있게 되는 것이 소란스럽다고 느낄 즈음 sns 휴면 계정으로 돌리고 정말 가까이서 자주 만나는 친구들만 서로 팔로우하는 계정을 만들었다. 그러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문제는 돋보기였다. 세상에.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의 소식이 밀려 들어오고 있다. 나의 호기심은 두텁고 참을성은 얕아 안 봐야지 안 봐야지 하면서도 친구들의 소식 팔로우가 끝나면 나도 모르게 돋보기 속 모르는 사람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출근 준비와 출근 버스에서의 인스타 들여다보기라니. 문득 그러다 고개를 들어 밖을 쳐다보는데 마침 버스가 선유도와 목동을 이어주는 양평교를 지나고 있다. 새파란 하늘과 쏟아지는 햇살과 그 아래 안양천의 물결이 윤슬을 뽐내며 빛나고 있다. 물길의 양쪽이 온통 아름다운 녹색으로 물들었다. 이걸 못 보고 지나가고 있었다니. 게다가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보는데 왠지 눈이 살짝 침침하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거라곤 가까이 있는 액정 속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과 글자들을 보느라, 먼 거리의 풍경이 다소 부옇다. 라섹을 했는데 또 나빠지려나, 눈이.


이날 이후 나만의 출퇴근 약속을 만들었다. 출퇴근 길 걸어가면서 휴대폰을 보지 않기, 버스에서도 휴대폰을 보지 않기. 충분히 바깥을 살펴볼 것.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을 바라보고 그 안의 사람들과 그들의 얼굴을 관찰할 것. 액정 속 실재하지 않는 글자가 아닌 바깥의 실재하는 사물의 글자를 바라볼 것. 물론 요즘의 풍경은 딱히 아름답진 않다. 털이 뽑힌 듯 황량한 안양천은 거무튀튀한 갈색으로 물들었다. 날이 자주 흐린 요즘 안양천의 물길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는다. 안양천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실제로 존재한다.

작가의 이전글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