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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May 26. 2024

그때나 지금이나 진짜 하기 싫은 공부가 있다

지난 멘토링에서는 역사 공부를 함께 했다. 역사? 뭐 그렇게 나쁘지 않았지. 자신만만하게 문제집을 펴는데 세계사다. 털썩. 문과 출신에 역사 관련 수업 대부분을 좋아했고 잘했지만 유일하게 정말 공부하기 싫었던 때가 바로 세계사를 몰아 배우던 이 시기였다. 그래, 이 시기였다! 외우는 거야 하겠는데 문제는 외울 게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당시 암기를 돕기 위해 집에 있던 세계사 만화 전집까지 읽었지만 여전히 어려웠다. 거의 때려 박는 수준으로 나열하기 급급한 교과서를 달달 외웠으니, 아직도 각 역사의 시기마다 언제가 동시대고 전후인지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서구 역사로 집중되기 시작하는 근대사 이전은 아직도 거의 모른다.


그랬는데 하필 내가 가르쳐야 할 역사가 세계사라니. 침착하게 책장을 넘겨 보지만 구석기, 신석기를 시작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이제 중국 문명, 춘추전국시대부터 진나라, 한나라. 그 이후엔 갑자기 헬레나 시대, 로마 이야기. 그러더니 갑자기 또 인도 역사까지. 그나마 구석기에서 최초 문명까지는 어찌어찌 흐름에 논리적인 맥락들을 짚어주며 외우기 쉽도록 설명을 해주었지만, 내가 봤을 때 교과서 집필자들도 중국 문명 이후부턴 그냥 때려 박았다. 틀림없다. 이때부턴 그야말로 세계사 랩이 시작된다. 이걸 대체 나는 어떻게 공부했으며, 이걸 아직도 애들한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고? 이게 최선인가 정말로?!


국어 수업 땐 초롱초롱한 눈으로 대답도 잘하고 고개도 끄덕였던 친구가 역사 수업 때는 하품을 수백 번 하더니 거의 졸다시피 한다. 자기피셜 역사를 가장 못하는데 더 문제는 하기 싫다는 점이란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단다. 학교 선생님도 잘 가르치시는 거 같고 애들도 좋아하는데 자기는 아무리 들어도 이해를 못 하겠단다. 감히 짐작해 본다면, 이 친구는 과학을 아주 잘하고 좋아하는데 아마도 논리적으로 이해를 해야 습득을 하는 스타일이라 이렇게 때려 외워야 하는 과목을 힘들어하는 것 같다.


어쩌겠나, 그래도 외워야지. 그리고 난 가르쳐야지. 잘할 수 있게. 그러나 중국 문명서부터는 나도 문제집의 설명 부분을 그냥 줄줄 읽는 수밖에 없다. 인도 문명에서 불교가 탄생하고 확대된 배경을 설명한다. “그러니까.. 마우리와 왕조 때 있지.. 상업이 발달했고 그러다 보니 카스트 제도의 상인 계급인 바이샤 힘이 커지고 귀족 계급인 크샤트리아들도 카스트 제도 제일 꼭대기에 있던 브라만 계급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차에, 평등을 이야기하는 불교가 인기가 많아졌고... 어쩌구 저쩌구...“.


졸고 있던 친구는 내게 묻는다. “근데 그럼 카스트 제도가 없었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럼 불교도 안 생겼을 거 같은데“. 역사에 가정이 의미가 있나. 하지만 이런 토론은 너무 값지다. 친구도 오래간만에 졸음에서 벗어나 눈을 반짝인다. 아니, 학교에서 이런 거 배우고 토론해야 되는 거 아냐?




지난주부터 한국어 교원 수업이 개강했다. 들어야 할 수업이 산더미다. 그래도 오랜만에 공부할 생각에 설레며 강의를 재생한다. 틀자마자 깨달았다. 내가 왜 그렇게 대학교 시절 교양과 복수전공이었던 신문방송학과 수업을 싫어했는지. 각종 교양 수업이나 신문방송학과 수업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대부분의 수업에 ‘기본 개념’이 있었다. 이를테면 대중문화론에서 대중과 문화라는 단어의 기본 개념을 배우는 것. 뉴미디어 수업에서는 각종 기본 단어들과 그 개념을 배우는 것. 말 그대로 이론의 역사를 배운다. 심지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물론 정말 중요하니까 하겠지만... 시험 역시 o x 퀴즈나 단답식이었던 그 수업들을, 그 시간들을 견디기란 쉽지 않았다.  


다만 본 전공인 철학과는 그런 걸 배우지 않았다. 어쩌면 학부생 수준에서 배우는 철학과의 모든 수업이 거대한 개념과 이론 수업이라 볼 수도 있지만, 대신 그 개념과 이론을 달달 외우기보다 그 사상을 깊게 이해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관에서 여러 관점, 여러 학자의 철학서를 빌려 다각도로 읽고 이해해야 했다. 텍스트를 반복하고 또 반복해 읽어 이해해야 했다. 외운다고 되지 않는 수업들이었다. 철학과 시험은 시험지라는 게 따로 없었다. 늘 논술 시험에서 볼 법한 큼지막한 백지를 네다섯 장 정도씩 나누어 주었고, 시험 문제는 한 두 문장이었다. 필수 준비물은 넉넉한 샤프심과 지우개였다.


이런 학습에 익숙해진 거겠지. 오랜만에 외워야 할 것들이 빼곡히 적힌 세계사를 보니 내가 다 눈앞이 캄캄하다. 설명을 해주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이거 어떡하나.. 다 외워야 할 텐데.. 중얼거렸다. 물론 역사도 당연히 논리적으로, 흥미롭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 고등학생 때 근현대사를 그렇게 공부했다. 하지만 한두 단 원에 이 모든 게 기술된 책은.. 정말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그저 나열된 듯한 역사에 각 문명마다 서로 어떤 시기가 겹치는지, 전후가 되는지 괄호 안에 적힌 연표 숫자로는 도저히 머리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그랬더니 이제 남 일이 아니다. 문법 교육론이니 교육 개론이니 배우는데 초기 주차라 그런지 기본 개념과 이론 중심이다. 정말 하기 싫다. 자꾸만 하품이 나오고 눈이 감긴다. 나 공부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네. 자꾸 휴대폰을 켠다. 산만해진다. 한참 딴짓하다가 화들짝 놀라 다시 강의를 본다. 아우 진짜 하기 싫어. 대학교 교양 수업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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