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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우 Mar 16. 2016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말에 힘이 있으려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을 갖춰야 한다.

나는 신촌에 있는 J 영어 회화 학원을 다닌다. 그리 잘하지는 않지만 고급반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그리고 원장님의 배려 덕에 무료로 영문법 스터디를(스터디라 쓰고 수업이라 읽는) 진행하고 있다. 이번 달부터는 영어 교수법도 배우고 입문자 분들을 도와드리기 위해 '국민영어법'이라는 초급반 수업의 조교로 일하고 있다. 영어 선생님이라고 명함 내밀 정도는 절대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고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오늘 국민영어법 수업 중 좋은 의미에서 아주 놀라운 일을 겪었다. 주어에 He, She, It, This 등과 같은 3인칭 단수가 나오면 왜 동사에 s를 붙여야 하는지 앞에 앉은 사람과 서로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문법을 가르치는 데도 불구하고 솔직히 나도 그 이유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예전에 공부했던 게 생각났다. 바로 문화적 차이. 우리나라는 농경문화가 발달했고 반면 서양은 상업문화가 발달했다. 농경문화에서는 혼자서 일하기가 힘드니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심지어 자연환경까지 중요하다. 반면 상업문화에서는 물건을 잘 사고팔기 위해 개개인의 능력이 중요했다. 상업 문화이다 보니 당연히 숫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우리말에서 그는, 그녀는, 그것은, 이것은 처럼 주체가 누구냐에 관계없이 ~은/는 만 쓰면 된다. 반면 영어에서는 am, are, is와 likes, loves, hates처럼 주어에 따라서 형태가 달라지기도 하고 s가 붙기도 한다. 이것을 문법적인 용어로 '수일치'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단수 복수 숫자 일치'. 뿐만 아니라 어순도 그렇고 존댓말의 유무도 그렇고 모두 위와 같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생기는 차이다.


앞사람에게 이러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었다. 역시 생소한 질문이라 그런지 다른 분들은 대부분 말이 없었다. 그때 국민영어법 수업을 진행하시는 이민호 선생님께서 '자, 그럼 김단우 조교가 설명해주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나를 앞으로 부르셨다. 30초의 시간을 주시겠다는 얘기에,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문화적 차이 때문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농경문화 상업문화, 관계 중시 능력 중시 등 위에 말했던 부분을 짧고 간결하게 잘 전달했다.(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런데 '문화?? 웬 문화????ㅎㅎㅎ'라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내 설명 이후, 이민호 선생님께서 문화적 차이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말과 함께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조교인 내가 말한 게 답과 가까워서 전체적으로 당황한 눈치였고 심지어 '헐 진짜 문화 때문이야?'라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다. 같은 말을 했는데 내가 말했을 때는 '말이 안 되는 대답'이 되었고, 이민호 선생님이 말씀하셨을 때는 '정답'이 되었다.




신뢰

이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3요소'가 떠올랐다. 설득의 3요소는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에토스는 믿을 수 있는가?(신뢰), 파토스는 마음이 움직이는가?(감정), 로고스는 뇌가 끄덕거리는가?(논리)이다. 그리고 설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60%, 30%, 10%이라고 한다. 신뢰에 대한 문제가 설득에서 무려 60%나 차지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 'Stay Hungry, Stay Foolish'를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북한의 김정은이 했다고 생각해보자. 납득이 되는가?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말했을 때 신뢰가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오늘 수업 때 있었던 일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민영어법 수강생 분들에게 우리 학원의 원장님이신 이민호 선생님에 대한 신뢰는 아마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 보는 조교(나)에 대한 신뢰는 거의 0에 가까웠을 것이다. 신뢰의 차이가 '문화적 차이'라는 같은 말을 하였을 때 아주 극명하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나는 오늘 국민영어법 수업 중에 있었던 이 일을 통해 확신했다.

말에 힘이 있으려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2016. 0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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