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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밖 Sep 01. 2023

미국인 손님을 초대하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또 오늘 같을. 매일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반복되는 요즘.  


아이들에게 매일 같은 잔소리를 하는 일상 때문에 어쩌면 하루가 매일 똑같이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부쩍 매일 조금이라도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 미국인 여행객들을 집에 초대해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으니.


지난주 금요일, 4명의 미국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우리 집에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게스트들의 방문 한 시간 반 전부터 8인분 비빔밥에 들어갈 야채를 썰기 시작하는데 프라이팬에서 기름이 튈 때마다 등에서 땀이 흐르고,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5명이 사는 우리 집에 오신 미국인 할머니 할아버지들.


'내가 왜 이걸. 미쳤구나... 애셋맘...'이란 생각이 들어 혀를 차면서도 준비가 다 안되어도 웃기만 하자로 결심하면서도 몸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미소는 만국의 공용어가 아닌가.


한식체험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직원은 사전 가정방문 때 우리 집 가족 구성원 멤버를 너무나 좋아해 주었지만 가족구성원이 다양한 만큼, 우리의 손님 대접 준비는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나이가 다른 모든 연령대가 같은 목표를 갖고 움직이기에는 많이 벅찼다.


그래도 큰 아이 지성이와 둘째 서진이가 아파트 1층에 내려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시기를 기다렸고 도착 후, 같이 모시고 올라왔다. 모두 70,80대여서 그런지 걸음이 아주 느렸지만 이렇게 여행을 하신다는 것에 감격스러웠다.


아직 영어가 어색한 지성이는 노트북으로 번역기를 돌렸고, 번역기를 통해 나온 영어 문장은 “My brother is fart."(내 동생은 방귀쟁이)였고 네 분의 미국인은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으니 서진이는 울상이 되어 울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친화력 좋은 서진이는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서 할머니 한분 등 뒤에서 손가락으로 어깨를 톡톡 치고 식탁 아래로 숨는 귀여운 모습을 보였으니.. 너의 역할은 그것으로 되었다고, 나는 생각했다.ㅋㅋ )


그러나 내가 요리와 영어(기본회화;)를 담당하며 뇌의 회전은 차츰 느려져갔고, 말도 꼬이기 시작했다.


엉망진창 같았지만 나름 게스트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맙다, 훌륭했다고 말해주신 것에 나는 만족했다. 이날, 기억에 남았던 대화는 딸보다 아들이 좋다고 하셨던 말이었다.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다) 이유인즉슨, 딸들은 부모형제들에게 들은 비난이나 나쁜 말들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지만 아들들은 잊어버린다는 것. 누가 최근에 내게 아들 셋은 요즘 '돌아온 금메달'이라고 부른다는 말에 배꼽을 잡고 웃었던 기억에 오버랩되어 한번 더 웃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너무 공감한 나머지 두 딸을 둔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그래, 최근까지도 우리 엄마는 딸에게 미안하다고 했으므로. 나 역시 과거를 절대 잊지 못하는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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