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뜰밖 Dec 15. 2023

어른이 되어가는 일

그리고 Let it rain..


그들과 함께 섞여 있는 자리가 편하지가 않다. 여전히. 무엇 때문인지. 고민하다가도 에이 말자. 이러는 나. 나를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지면서도 그 배려의 저변에는 사랑하기 어려운 본능적인 차별과 배제의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사랑하기가 어려우므로 말 한마디도 신경 쓰며 하고, 더 많이 챙겨주는 말을 하고, 그러나 어느 순간에 노력이라는 벨트를 조여 매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는 나는 그냥 알아버리는 거다. 나는 저들의 원가족이 아니므로, 이런 것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나이가 된 거 아니냐,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냥 오랫동안 시골에서 살아오셨고, 시골과 도시의 차이를 여기서 나는 알 수 없다만. 그냥 내 편견으로는 그쪽 동네만의 어떤 특유의 문화, 이런 것들이 다른 문화에 영향받지 않고 섞이지 않고 살아온 세월 속에서 그들만의 무언가가 공고한 느낌이랄까.


나이가 들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김현 선생님이었나. 나도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준비만 하다가 늙어버렸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준비만 하다가. 그 준비가 무엇인지 알면 좋겠다만, 그 준비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냥 준비 근처에 머물다가 세월이 지나간 건 아닐지.

수능 100일 전처럼 무언가를 이루는 데 있어서 목표와 시간이 분명하게 설정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기간과 시간, 목표 같은 것들이 없다. 그저 그렇게 되어가는 것일 뿐. 검은 머릿속에서 새치가 보이듯, 눈이 녹듯, 젖은 땅이 마르듯 그렇게 서서히 되어가는 일.


서서히 되어가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은 또 무엇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곁에서 내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셨던 한 선배를 영정 사진 속에서 만났다. 그 미소와 표정은 그대로인데, 선배의 몸이 허공에 사라졌다.

그가 앞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들이 사라졌고, 그가 앞으로 할 수 있는 행동들이 사라졌고, 그가 앞으로 먹어야 할 밥들이 사라졌다.


평생을 기자로 살았던 그분의 언어가 사라졌다. 먼지 쌓인 신문 지면에는 그가 남긴 문장들이 알알이 박혀있다. 누가 다시 그것을 들춰보지 않는 한, 그 문장은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문장은 힘이 없다고 느낀다.


문장은 힘이 없는데, 마감은 힘이 있어서

써야 할 기사들이 마감 앞에 서면 정신을 곤두세운다.

노동의 힘.


오늘은 비가 내린다. 좋다.

Let it snow 말고, Let it rain..   

작가의 이전글 미국인 손님을 초대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