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카고에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찾아왔습니다. 집집마다 전통이 다르겠지만, 보통 미국에서는 가을의 대미를 장식하는 추수감사절(Thanksgivng day) 다음 날 아침에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둡니다. 물론 매년 재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인조 트리를 써도 되고, 또 집 앞 마트에서 잘라놓은 진짜 전나무를 바로 구입해도 되지만, 저희 집은 거의 매년 트리 농장에 가서 아이들과 직접 나무를 잘라서 가져오는 걸 좋아합니다. 자른 나무를 차 위에 덜컹덜컹 싣고 오는 것도 재밌고, 농장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운치 있거든요.
시카고 근교에는 북쪽으로 꽤 많은 크리스마스트리 농장이 있어요. 저희가 이번에 간 곳은 Richardson Farm이란 곳인데 규모도 꽤 크고 다양한 종류의 전나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절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시즌 오픈을 하죠. 여기선 따뜻한 코코아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하고,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뜨끈뜨끈 맛있는 도넛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추운 날 야외에서 따끈한 어묵 국물과 떡볶이를 떠올린다면, 여기 사람들은 달콤한 코코아와 도넛이 생각나나 봐요. (제가 미국에서 더 오래 산다고 하더라도 제 입맛은 영원히 한국 사람일 것 같습니다)
저희가 농장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이 살짝 지난 오후. 지난밤 분명히 추수감사절 디너로 늦게까지 안 잤을 텐데 어찌나 부지런한 사람들이 건지, 벌써 많은 사람들이 차에 나무를 하나씩 싣고 출발하고 있었어요. 저희도 서둘러 농장에 들어가서 트랙터를 타고 나무 농장을 한 바퀴 돌아봤습니다. 구역별로 다른 나무 종류를 키워두고 있는데, 자기 마음에 드는 나무를 직접 골라 톱으로 베어가는 시스템이죠. 이미 크고 잘생긴 나무들은 Pre-cut 상품으로 잘라두기 때문에 아주 완벽한 나무를 찾는 건 사실 불가능해요. 아니면 조금 더 아침 일찍 서둘러 오면 가능했을지도요. 아이들과 농장 나무들 사이를 요리조리 둘러보며, 우리 집 천장에 딱 알맞은 크기와 좌우대칭 잘 맞는지, 색이 바랜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찾아봤지만, 역시나 그런 나무는 없습니다. 그냥 조금 부족해도 저희 마음에 와닿는 나무와 인연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직접 고른 나무가 더 애정이 가나 봐요.
트리 가격은 농장마다 책정하는 방법이 다른데, 보통 80~120불 사이인 것 같아요. 크기에 따라 하는 건지, 종류에 따라 하는 건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격만 생각한다면, 사실 집 근처에 있는 Home Depot와 같은 대형 유통 업체에서 사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만, 글쎄요, 좀 더 신선한 나무를 직접 고를 수 있고, 또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비용이 포함이 된 거겠죠?
집에 와서 보통 하루 이틀 정도 나무가 물을 먹고 가지를 다 펴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요, 아이들이 그 시간을 기다려줄 리가 없죠! 바로 트리 장식에 돌입합니다. 예전엔 하나하나 다 제 몫이었지만, 언제 아이들이 이렇게 컸는지 전 손 까딱 하나 안 했는데 윤서와 연우가 뚝딱 트리 장식을 완성해 주었어요. 매년 한 두 개씩 여행을 가서 새로 산 오너먼트도 꺼내면서 그때 얘기도 하고, 또 어린 시절 그림 그려 만든 장식품도 달아주고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트리 위 별 장식에 불을 켜면 트리가 완성됩니다. 올해는 8살 윤서가 동생에게 이 중요한 별 다는 임무를 양보해 주었어요. 순간순간 아이들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에서 전 평생 간직하고 나중에 꺼내볼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을 마음에 담습니다.
드디어 저희 집에도 크리스마스가 도착했습니다. 쳇바퀴 돌아가듯 숨을 헉헉 대며 열심히 살아왔던 올 한 해를 뒤돌아보고, 조금 느린 속도로, 여유 있게 이 시간을 즐기고 또 잘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2023년도 잘 마무리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