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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선지자들을 숨기고 먹여살린 오바댜


북 이스라엘의 악한 왕이었던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의 통치 시기는 영적으로 매우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30~33)


이때 하나님은 그 땅에 혹독한 기근을 내리셔서 징계를 하십니다.

기근이 3년째가 되던날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셔서 그 땅에 참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리시고 기근을 풀어주도록 하십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더라(왕상 18:1~2)


이 때에 왕 아합은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물의 근원을 찾느라 애를 쓰던 중이었습니다. 그 때에 아합왕은 자신의 신하 "오바댜"를 불러 같이 물을 찾도록 했는데 이 때 오바댜에 대한 표현이 신선합니다.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왕상 18:3~5)


그는 '왕궁 맡은 자'로 표현이 됩니다. 그리고 아합이 지금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 할 때에 같이 하도록 할 만큼 왕의 신뢰를 얻은 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악한 정권에 충성하는 자" 처럼 여겨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기록되어있습니까?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선지자 백명을 숨기고 떡과 물을 먹인 사람입니다. 
말이 좋아 백명이지 이들이 먹어야 할 물과 식량의 양은 어느정도였을지 감도 오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몰래 공급해야 했으니 그는 물질적인 부담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 성경이 이후 구절을 읽어보면 오바댜는 아합으로부터 처벌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특히 그의 대화상대가 악한 아합 정권 앞에 당당히 맞서는 선지자 엘리야이기 때문에 그 둘의 차이는 더욱 대비되어 보입니다. 


악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우는 용기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의 용기와 정의감은 존경받을만 합니다. 


그러나 또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 악의 지배 속에 순응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또 마음속에 약간의 죄의식이나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오바댜를 보면서 위로를 얻습니다. 
그는 아합 왕에게 순응하며 살아가는 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그를 지극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엘리야처럼, 다윗처럼 강하고 용맹하고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이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수백명의 바알과 아세라 제사자등 앞에서 하늘의 불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작은 소년의 몸으로 거대한 블레셋 용사를 물랫돌로 쓰러트리기도 하지만 
또 많은 사람은 오늘 하루의 생계에 전전 긍긍하며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각 사람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바댜의 순종도 엘리야의 믿음만큼이나 귀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눈에 보이는 놀라운 업적, 대단한 용기, 뛰어난 능력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또 그런 것들은 어찌보면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이는 많이 받아 많은 일을 하고, 또 어떤 이는 적게 받아 적게 일을 하는 것이기도 하죠. 


그러나 한가지, 성경을 관통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적게 받은 자나 많이 받은 자나, 
하나님이 일관되게 원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충성"입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오늘 살아가는 삶 속에서 주저함과 눌림이 있으십니까? 


다른 믿음의 선진들 처럼 용맹하게 나서지 못하고 주눅들어있는 자신에게 속상하십니까? 


괜찮습니다. 그 속에서 하루 하루 천국을 이뤄가는 것은 꼭 큰일이 아니어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일상 속에서의 작은 순종들이 모여서 이뤄가는 것이니까요. 
그런 순종의 발걸음을 이어가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유료 콘텐츠 구독자를 위한 추가 내용]


마가복음 살펴보기(9) - 성전의 종말

마가복음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12장에 걸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3일동안 방문하시면서 장사꾼들을 둘러엎으시고 종교지도자들의 실패를 질책하십니다. 
그 일이 다 끝난 뒤 13장이 시작되는데요. 이 13장은 마가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마가복음 13장은 기독교와 유대교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로마-유대 전쟁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유료버전에서 다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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