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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바라시는 곳, 다윗의 장막

서론

사도행전에 보면 "다윗의 장막"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행 15:15~17)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도 받았다는 보고를 하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가 인용한 말씀입니다. (암 9:11)


즉,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임하게 하기 위하여 무너졌던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죠. 그렇다면 이 "다윗의 장막"은 무엇일까요? 


다윗의 장막 소개


이 이야기는 다윗 이전 사사기의 암울했던 시기로 넘어갑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 암흑기를 겪고있었는데요. 하나님은 그 때 블레셋 민족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대한 블레셋 민족을 이기기 위해 언약궤를 앞세워 전투에 참가합니다. 
언약궤와 함께 하면 어떤 적들도 이길 수 있었다는 조상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도 따라해보려고 한 것이죠. 그러나 참된 회개 없이 단순히 전투력을 기대하고 언약궤를 들고 나간 그들은 크게 패했을 뿐더러 언약궤 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이 언약궤는 이후 여러곳을 떠돌다가 "기럇여아림"이라는 지역에 20년이 넘게 있게 됩니다.

(삼상 4~6장)


이후, 다윗이 이 언약궤를 사모하는 마음이 크게 생겨 이곳에서부터 언약궤를 모셔오게 됩니다. 다윗은 예루살렘 안에 장막을 치고 그 안에 이 언약궤를 모셔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다윗의 장막"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막을 하나님은 왜 그렇게 바라고 계시는 것일까요?


다윗의 장막 상세


다윗의 장막과 모세의 성막의 가장 큰 차이는 언약궤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세운 성막은 외소, 성소, 지성소의 구분이 있고 제단이나 촛대, 물두멍, 떡상 같은 여러 기구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는 두꺼운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지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언약궤를 죄악된 인간이 함부로 봤다가는 죽기 때문에 대제사장 조차 일년에 하루, 어린양의 피로 온몸을 뒤집어 쓴채 조심스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지성소입니다. 


그런데 이 다윗의 장막은 그런 것 없이 그냥 장막 들추고 들어가면 바로 언약궤가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어째서 이 다윗의 장막은 그런 여호와의 영광으로 인해 사람이 죽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다윗은 이 장막에서 끊임없는 찬양의 예배를 올려드리도록 하였습니다.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있게 하며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고
(대상 16:37) 


다윗이 군대 지휘관들과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는 이러하니라
(대상 25:1)


다윗의 장막의 의미


아쉽게도 성경에는 이 찬양단의 의미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찬양단이 어떤 원리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부터인간을 보호할 수 있었는지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다만, 다윗의 장막에는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죄악된 인간의 생명을 보전해주는 어린양의 피, 휘장, 여러 제사 대신 "신령한 노래"로 찬양을 드리는 예배자들이 있었다는 것이죠. 

즉 이 신령한 노래의 예배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인간의 죄악을 막아주는, "중보"의 역할을 담당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즉, 다윗의 장막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주어진 여러가지 복잡한 율법의 제약이 없어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 대면하여 앉아서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삼하 7:18)


결론


다윗의 장막은 누구든지, 율법의 제약에서 벗어나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구원 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료 하나님은 모세의 성막도 아니고 솔로몬의 성전도 아닌,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기를 그렇게 바라셨던 것이죠. 

지금 우리는 너무나 간단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두렵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어려움도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의 율법과, 다윗의 장막과 같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 인간을 만나려 하셨고, 마지막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구원의 방법을 베푸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유료 콘텐츠 구독자를 위한 추가 내용]


다윗 시대에 성막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다윗의 장막에 대해서는 이렇게 알아보았는데요. 

그렇다면 성막(제단과 물두멍과 같은 부속 기물들을 포함)은 어디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부분에대해 간략하게나마 나눠보고자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유료 콘텐츠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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