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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리플렉팅 Dec 08. 2023

문화 대물림 속 온라인 마케팅의 필요성

진짜 필요한가? 진짜?

문화 인플레이션이 커져만 가는 시장에서 온라인 SNS 마케팅은 어떻게 길을 만들 수 있을까?



온라인 SNS 마케터란 꿈 그리고 절망


지난 12월 첫째 주 화, 수, 그리고 하반기를 통틀어 작곡가와의 만남, 뮤지컬 관람과 홍보한다며 쓴 글과 영상들 모두 회의감이 들었다.


‘절박함’은 무기력에서 온다. ‘가능성’이란 단어 하나만으로 매몰 비용이 되어버린 지난 시간은 큰 회의감으로 돌아왔다. 작년 운이 좋게 들어갔던 회관에서 공연 문화에 매력을 느끼고, 좀 더 내가 할 수 있는 온라인 SNS 마케터로서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애석하게도 사수가 없었지만, 그래서 영상팀과 협업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를 얻었고 스케치 현장이며 워크숍 명목하에 나는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됐다. 행복했다.


디자인과에서 경영학과로 전과하며 실무자와 기획자와의 교각이 되겠다는 꿈에 명명할 만한 직함이 없었다. 돌고 돌기를 반복했다. 일부러 포트폴리오를 만들려 하고 싶은 게 아니었지만, 어느새 모인 나의 여정은 포트폴리오가 되어주었다. 결국 내가 즐거움이 느끼는 건 '사람들이 몰랐던 매력을 알리는 것'이었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막 마케터의 꿈을 갖게 됐을 때, 늦었다는 건 포기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되려 늦었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그렇게 난 '마케터'란 세상이 명명한 이름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려갔다.


그 포트폴리오로 난 운이 좋게 좋은 문화회관에서 인턴을 할 수 있었다. 처음 프로젝트로 주어진 ‘국악 인터뷰’는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작년 '상자루'의 페거리 공연에서 느낀 충격은 또 다른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곡을 몇백 번 연주하는 동안 문화 문외한에 있던 나는 몰랐다. 국악이 뻔하지 않다는 걸. 새로운 시도가 있었음을. 몰랐던 시간들에 대한 충격과 깨달음은 동시에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알릴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들과 음악이 있다는 것, 아직도 나같이 모르는 사람들이 있음에, 뭔가 할 수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가능성이란 용기란 행복.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사전 준비를 하면 할수록, 그리고 직접 만났을 때 인터뷰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내 직함에 확신을 주었고, 더 잘하고 싶게 만들었다.


가장 큰 확산력을 지닌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마케터를 꿈꿨던 나는 점점 변화하는 플랫폼들의 알고리즘을 마주하면서 당황스러웠다. ‘나만을 위한 알고리즘’은 세상을 더 좁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알리고 싶었다. 특히 몰랐던 시간이 아까웠던 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시각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인터뷰할 땐 작곡가와 연주자의 마음과 히스토리를 더 많이 알리고 싶었다.


나는 안다. 비주류에 속하는 전통 장르가 어떻게 소비되는지. 문화적 가치로만 치부되고 마는 공연에 모이는 관객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메이저가 되지 못한 장르에 초대되는 건 같은 장르의 전공자라는 것을 무용하면서 알았다. 객석에서 울려 퍼지는 그들만의 박수갈채와 환호, 끼리끼리의 사이를 줄줄이 외는, 처음인 사람에게 주어지는 소외감은 특정 장르에서 크게 일어난다. 그런 소외감 없이 저렴한 가격에 한 번이라도 호기심에 찾아올 수 있는 공연이 있다는 것을 정말 새로운 음악이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 어떤 것임을.


ⓒ 브런치, <프리즘 리플렉팅> (Brunchstory, <Prism Reflecting>)

온라인 마케터가 굳이 필요할까?


하반기에 마주한 질문은 꿈이었던 온라인 마케터는 옛날 산업혁명처럼 앞으로 사라질 듯한 두려움이 되었다.


나는 안다. 그것은 나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영역도, 그런 깜냥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몇 년 차 대리급이 돼야 했을 나이에 이루지 못한 내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한 편으론 나는 시시각각 바뀌는 알고리즘과 관심사 중심의 노출도에 관련된 알고리즘의 변화를 경험하며 과연 온라인 마케팅이 공공과 민간을 통틀어 유용한지. 이제는 모르겠다.


현직자들과 이야기하고 싶지만 당장 나는 무소속이기에 더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작 올라오는 몇 개의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물어볼 수 있었다. 9월까지는 당당하게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었다.


이제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나는 내게 묻는다.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을 건데?' 질문에 침착한 나는 최근에 보고 온 면접에서 “자신 있어요?”라는 말에 나는 쪼그라들어서 말을 머뭇거렸다.


지난 회사 생활에서 튀면 튄다고 오해받고 평가받고, 선입견이 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적응하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는 것도 괴로웠다.


그래도 내 안에 있는 질문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끝끝내 나는 괴로운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질문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전공자들만 보는 그런 공연 말고, 아이와 부모, 단출한 나와 같은 가족이라 하더라도 볼 수 있는 공연, 현장감들에 초대하고 싶었다. 


회사를 나온 뒤엔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접하기도 했다. 접근성이 좋다고 생각하는 티켓값의 소극장 문화도 신규고객에게 친절한지는 모르겠다. 소위 말하는 회전러들을 위한 재관 도장, 혜택에 대해 처음인 사람은 속수무책이다. 처음 소극장에 갔을 때, 티켓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무슨 줄인지도 모르는 줄에 빼곡히 서 있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무슨 혜택이 있는지 알게 됐다.


한 땐 갤에서 뚜까 맞는 뉴비였다. 디시 갤러리에서 그나마 알음알음 물어 알 수 있기도 했다. 여전히 지금도 뉴비라고도 생각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박제되고, 쌍욕을 처먹고, 알게 됐다고 처음인 사람들을 위해 안내 글을 쓰면 ’너만 모르고 있던 사실ㅉㅉ’이라며 등신 같다는 말도 들었다. 혹여 누군가에게 박제될까, 피해를 줄까 시체처럼 가만히 앉아있다가 암전 속에서 뒤척여야만 하는 문화. 대극장에 가고 나서야 느껴지는 편안함. 관객 크리티컬을 맞이할까 하는 불안. 그럼에도 극장에 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관객들, 소비자들을 이해하고 싶어서.’


점점 소비하는 사람만 소비하고 마는 현실에 갑갑함이 느껴질수록, 질문은 더 커져만 갔다.


ⓒ 브런치, <프리즘 리플렉팅> (Brunchstory, <Prism Reflecting>)

마케팅의 우선순위


부끄럽지만, 난 어제 취업박람회에 다녀왔다. 취준생이라고 하기엔 많은 나이. 무엇을 시작하기엔 신문에나 나올 법한 나이. 나는 갓 졸업하거나, 20대인 친구들 속에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오가며 물었다. 신규고객 창출을 어떻게 하는지, 고객들의 유입 데이터를 얻기 위한 트래킹 방법은 어떤 게 있는지, 공공기관이라면 더 많은 대중화와 신규고객에 대한 확장성과 공공성을 생각할 거로 봤다. 그리고 나의 질문들은 나를 무너뜨렸다.


유명한 전통예술 기반의 극장의 홍보마케팅 팀장이 그런다. 무용, 국악은 애초에 홍보조차 안 한다고. 특히 국악은 적극적 홍보가 불필요함을 더 강조했다. 학교 기반의 교수님과의 네트워크, 전공자 기반의 관객층이 고정 수요자였지만, 그 이상의 어떤 질문들은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라는 말 아래 고정 관객층들에 대한 변화를 꾀하는 것보다 공연 기획팀에 부수적으로 된 마케팅을 펼칠 수밖에 없는 현실. 조금의 희망도 궁금증도 없다는 눈빛에서 나는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신인 작곡가와의 대담은 어떠했는가. 보수적인 소위 ‘선생님’들의 질문은 강연을 끊기 바빴고, 작곡가에게 말끝 좀 제대로 말하라며 으름장을 놓는 어르신. ‘어디 어디 대학입니다.’를 말하며 명함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보며 낙담했다.


‘신인 작곡가가 말 좀 하게 내버려두면 안 되나? 신인 작곡가에게 좀 더 친절하면 안 되나? 좀 더 창작할 수 있는 실험 판을 만들어주면 안 되나? 지금 이 사람의 음악보다 말투가 그렇게 중요한가?’ 다행히 참여했던 회차에서 만난 신인 작곡가는 이러한 세계에 내공이 쌓였는지, 잘 넘어갔지만, 같은 참가자로 있는 나로선 보수적인 어르신들의 행동이 이해되질 않았다. 아쉬움이야 있을지 모르지만, 작곡가를 만나는 기회에서 작곡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평가하기 바쁜 사람들 안에서 숨이 막혔다.


문화 사각지대는 여전히 좀처럼 좁혀질 것 같지 않다.  앞으로 소비층 다음엔 1020대 소비자가 문화 소비자가 될 것이다. 1020은 현재 소비층들이 굳건한 문화 소비자들의 자녀이며, 주변 사람들이겠지. 여전히 서초구에 사는 사람들은 엄마와 아빠 손을 잡고 공연을 볼 것이며,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천천히 보기 힘든 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사람들이 공연장으로 와줄까. 공연장으로 올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게 나는 마케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신인 작곡가들이 더 이상 그들만의 세계에서 있지 않도록. 아티스트보다 음악이 먼저 들리는 세계. 배우 한 명보다 누구라도 믿을 수 있는 세상에 초대되는 공연의 기쁨을 알리고 싶다. 


하지만 이젠 허탈하다. 특정 장르는 그저 홍보조차 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말이. 어쩌면 카르텔화되어버린 문화 소비 시장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제오늘 언뜻 직면한 공연 소비문화로 보기엔, 전공자들만의 그룹 간에 초심자들이 끼어들 틈은 없을 듯하다. 굳이 그들에게 마케팅이 필요할까? 그런 장르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는 것은 나에게 보람이 있을까? 공공/민간으로 이어진다면, 굳이 비용을 들여 신규고객을 확보하고, 공공문화의 저변 확대가 서로에게 이득이 있을까?


나 같은 학력도, 스펙도, 나이도 많은 내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질문의 가치가 유효할까. 감히 바라건대 가치가 있었으면 한다.  

ⓒ 브런치, <프리즘 리플렉팅> (Brunchstory, <Prism Reflecting>)

질문의 끝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눈이 빨갛게 되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문을 열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어떤 슬픈 일이 있어도 현관문을 향하는 길에선 울어본 적이 없었다. 처참했다.  


사실 난 국가에서 한다고 하는 행사를 크게 믿지 않는다. 약간의 허점들이 곳곳에 보이는 한편, 결과를 내야하는 만족도 조사에 대한 요구와 끊임없는 구글 폼,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준비가 없는 점. 내용과 구성보다 참가자들을 채우기 바쁜 모습에서 무기력감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지레짐작한 사실이 그렇게만 끝나질 않길 바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과 공연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허탈감 속에 희석되어 갔다. 캐릭터를 더 잘보이기 위해 배운 애프터이펙트 콘텐츠 제작 수업이나, 수많은 관람을 통해서 보아온 배우가 해석한 캐릭터가 더 잘 보일 수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한 시간들. 내 기대와 달리 회사를 나온 후 나는 그저 관객 중 하나였을 뿐이다. 돈으로 취급되고 마는 사람 1. 전 회사에서 전문 사진가분에게 받은 가르침처럼 공연과 캐릭터를 살릴 수 있는 촬영은 관객으로서 할 수 없었다. 그저 수많은 관객 속에서 셔터박스를 울리는 사람들 중에 하나 뿐이었다. 한 장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사되기 바쁜 셔터음들 속에서 나는 점점 사명감을 잃었다.  


나의 질문들은 과연 어떻게 끝날까?



"수많은 질문들. 수많은 생각들. 아직 못다한 내 안의 말들." - 뮤지컬 <비더슈탄트> 중에서 <질문들>, ⓒ미스틱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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