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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모 Aug 04. 2021

너의 옥상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1.

내 기억 속 너의 옥상은 이따금 노란 볕에 젖었다.


벽이 갈라져 있었는지, 무슨 색으로 칠해져 있었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처음 심장이 쿵 내려앉았던 순간, 요동치는 마음을 억눌러야 했던 순간, 해야 했던 말보다 울음빛이 먼저 입술을 비집고 나갔던 순간, 모든 순간들이 그때 그 옥상에 있다. 내게는 순간의 조각들이 모인 한덩어리의 이미지로 남았다.


2.

그래서였을까. 시간을 돌아 사진으로 본 옥상 몹시 낯설었다. 그곳은 내 기억 속 장소가 아니었다. 너의 옥상, 그것은 어쩌면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인지도 모른다.


3.

동이 터 오던 새벽, 너와 나는 옥상에 있었다. 뜬눈으로 까만 밤을 지샌 내가 먼저 거기에 올라 알 수 없는 안도감에 숨을 내쉬던 사이 네가 올라왔다. 그래, 맨션 외벽을 흠뻑 적신 햇살이 옥상 네 귀퉁이로 서서히 퍼지는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벅찼고 말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별을 보던 밤도 있었다. 곤히 잠든 도시에 너와 나만이 오롯이 깨어 있었다. 밝지 않을 밤이기를, 깨지 않을 꿈이기를 잠시나마 바랐던 것도 같다.


또 어느 붉던 저녁엔 시작도 없는 끝을 말했다.


4.

너와 내가 그 옥상을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5.

다시 한 번 그 옥상에 가보려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신기루처럼, 너의 옥상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모든 것이 까마득히 멀어지기 시작한 순간,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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