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딱 이맘때 아니었을까. 열어 둔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온도가 낯익은 걸 보면.
2.
바람이 참 좋았어. 살랑살랑을 넘어 조금 과하다 싶게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는 바람이었는데, 비 온 직후였는지 오기 전이었는지 습하기까지 했어. 물기 먹은 반곱슬이 1.5배는 부풀었거든. 그런데도 이런 기억인 걸 보면 그날 바람은 진짜 좋았던 거야.
3.
가을바람 좋던 그 새벽, 너와 나는 천변을 날듯 걸었어. 잡은 손을 힘차게 흔들며, 머리에는 서로 꽂아 준 코스모스를 달고. 길이 붐비는 시각이었다면 미친 사람들인 줄 알았겠지. 머리에 꽃을 단 둘은 갓 지은 시를 읊고, 같은 노래를 부르고, 바닥에 앉거나 누운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고, 어쩌면 춤을 췄던 것도 같아. 그날 남긴 몇 장의 흔적은 더이상 복구할 수 없는 하드 속에 잠들어 있어.
4.
예비군 훈련이 있었던 넌 군복 상의를 내 어깨에 걸쳐 줬어. 그렇게 나는 상의를, 너는 하의를 정답게 나눠 입고 예비군답지 않은 발랄함으로 내달렸어. 희미하게 묻은 땀냄새가 말갛게 느껴졌던 것도 그 바람 때문이었을까.
5.
이따금 공기가 차가워지잖아? 그러면 맨어깨에 닿았던 그 상의의 질량이 1그램쯤 느껴지곤 해. 그냥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