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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winkup Jul 06. 2016

다육이와 함께 여름 나기

누구에게나 힘든 계절을 보내는 방법

바깥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가, 그쳤다가, 다시 추적추적 내리기를 반복하는 여름, 서울은 드디어 장마가 시작되었다. 잠을 못 잔 것도 아닌데 눈 뜨는 시간부터 몸이 안 좋은 기분이 드는 건 장마철이기 때문일 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 사진'을 위해 베란다로 나가봐도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를 어둑어둑한 광경이 펼쳐져 있으니 힘이 날 리가 만무한 계절이다.



어느덧 다육이와 세 번째 맞는 여름이다. 다육이를 키우면서 가장 좋아할 수 없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여름에는 겪고 싶지 않은 벌레가 생기기도 쉽고, 어제까지 멀쩡해 보이던 다육이가 하루 이틀 만에 죽어나가기도 한다. 심지어 '녹아 없어진다'라는 표현이 다육이한테 적용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스무 장 찍어도 한 장 나올까 말까한 아침 7시 반의 풍경


3년 차의 자만심으로 맞이한 올여름은 호기롭게 들인 새 다육이가 분갈이 한 지 며칠 만에 생사를 오가는 위기를 맞는 사건으로 시작했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게다가 멀쩡하게 잘 있는 다육이 몇을 새 화분에 굳이 분갈이 한 이후로, 한 달이 넘게 영 힘들어 보이는 녀석들을 보며 아직까지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힘든 여름인데, 아무래도 괜한 짓을 했다.



여름을 보내는 다육이의 역변逆變 일지

정야(화분 오른쪽)와 환엽송록(왼쪽)은 베란다 환경에서는 웃자라기 쉽다. 두 달 넘게 물 한 방울 안 주며 웃자람을 막았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나, 여름 들어 급속도로 웃자라는 정야를 보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환엽송록은 말라가고 있으니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이후로는 같이 심기[합식]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보기엔 이쁠지 몰라도, 그 누구 하나 제대로 키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봄에 누구보다 예쁘게 물들던 까라솔은 여름에는 전혀 다른 얼굴이 된다. 일부러 강한 햇빛에 방치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새까맣게 탄 듯한 얼굴이 되니, 가끔 놀래서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다. 괜찮은 거 맞냐고. 여름의 까라솔은 원래 1년 중 가장 못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정상이니 미워하지도, 걱정하지도 마시기를. 어차피 가을이 되고 찬바람 불면 다시 미모를 찾을 테니까.


뽀얀 핑크빛이 돌던 입전이나, 고운 다홍빛으로 물들었던 당인 역시, 여름 들어 제 멋대로 자라기 시작했다. 아무리 햇빛이 제일 잘 드는 명당자리에 두어도 처음 모습으로 되돌릴 수가 없다. 이쯤 되면 좌절감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잘못 키우고 있어서 그런 건가?


단순한 조명의 차이가 아니다. 여름의 다육이는 그야말로 '꼬질꼬질'(이보다 더 알맞은 단어는 없을 법한)하다. 딱히 모양이 달라진 것도 아니지만 미모를 뽐내던 봄과는 달리 묘하게 생기도, 힘도 없어 보이는 치와와엔시스.


립스틱은 마치 메이크업 비포&애프터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던 라인은 사라지고, 살은 훌쩍 빠져 못나지는 중이다. 이럴 때 불쌍해 보인다고 물이라도 주면? 잎에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대신 빨간색은 더 사라지고 잎이 아래로 퍼지는 역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이쯤 돼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 하면, 나만 혼자 제대로 못 기르고 있다고, 내 다육이들만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너무 걱정 마시라는 거다. 여름엔 다들 못나지고, 다들 힘들어 보이는 게 정상이니까.



Q. 그럼 대체 여름에는 다육이를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까요?
A.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대로 두세요

그대로 둔다는 건 - 잘 안 자라는 것 같다고 굳이 분갈이를 해주거나, 물을 주거나, 영양제를 꽂아 두거나 하지 말라는 의미로 생각했으면 한다. 다만 장마 기간엔 이미 공중에 습기가 충분히 떠다니고 있으니 물은 아예 주지 않도록 하고, 꼭 뭐라도 해주고 싶다면 더위에 지친 다육이를 위해 선풍기를 틀어주자. 막힌 공기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하고, 화분 속에 차 있는 습기를 말려줄 바람이 필요한 것이다. 다육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데 있어, 통풍은 굉장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더 간섭해도 된다면, 지금은 새 식구를 들일 때가 아니다. 혹시 이미 새 식구들이 도착해있다면, 적어도 분갈이만큼은 좀 더 두었다 하자. 비닐 포트에 있는 건 절대 '불쌍한 상태'가 아니다. 분갈이란 사람으로 치면 결국 이사인 것인데, 사람도 살던 곳 한 번 옮기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는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힘내서 뿌리내리기 좋은 계절까지 기다려 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힘든 여름을 무사히 넘긴 다육이는 다음 여름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해진다. 그러니 조급해하지도, 너무 큰 걱정도 말고 가만히 지켜보도록 하자. 우리의 목표는 베란다 정원의 친구가 오랜 시간 같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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