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의 TMI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현 Oct 13. 2020

취향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어?

 10월 17일 오후 5시 '하와이, 나의 소울 컨츄리' 저자와의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다.

 요즘의 내 일정들은 의도치 않은 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참 많았다. 예를 들면 친구 재윤의 집들이에 초대받아 갔을 때, 최근의 내 관심사인 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에세이, 독립출판, 크라우드 펀딩 클래스까지 들었던 이야기를 했고 재윤이는 본인의 친구가 하와이에 다녀오며 기록한 감상들을 독립출판으로 엮어서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펀딩에 참여해서 받은 리워드인 '저자와의 저녁식사'를 나에게 양도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뜬금없는 흐름이긴 했지만 난 이런 흐름을 좋아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정. 지금의 나에겐 꽤 재밌고 소중한 상황들이다. 티엠아이를 조금 풀자면 텀블벅 리워드에는 무중력 지대 나나나 클래스에서 같은 강사진으로 참여해 알게 된 하야티 강사님의 훌라 수업도 있었다.


하와이, 나의 소울컨츄리
진짜 태어난 고향도 아니고 자란 곳도 아니지만 영혼이 연결된 곳이 있더라. 내 영혼이 고른 내 고향이라는 의미로 <소울 컨츄리>라고 하와이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아서 만들었지.

 재미있는 표현이었다. 파리의 여행이 감명 깊었다며 파리 피플을 자청하는 사람들. 해마다 일본에 여행을 가다 보니 한국보다 일본이 더 익숙하다 말하는 이. 겨우 5일 다녀와놓고 하노이 사람처럼 얘기를 한다며 농담 섞인 핀잔을 들어봤던 나. 잠깐의 여행으로 그 여행지에 대한 감상을 길게 늘어놓으면 재밌게 보는 시선 반, 오버하는 거 아니냐며 치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반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볼 때가 있었고.

 책이 시작되는 순간에 쓰인 재미있는 표현이 취향에 와 닿으면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다 읽고 나서 꽤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말도 안 되는 고민에 빠져 버렸다. 정말 괜찮은 책인 걸까? 내가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읽는 모든 책이 재미있다고 느껴지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버리는 건 아닐까? 남들에게 이 책이 괜찮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공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을 남들 눈치에 기대고 있다 라는 걸.

 

 영화를 보고 나서 분명 재미있게 봤는데 친구가 "어떤 내용이야 재밌어? 후기 좀 들려줘봐." 했을 때 꽤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느낀 감상들을 간단하게 풀어내는 게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왓챠에서 별점을 매기는 기준도 그때그때 달랐고. 인생 영화 베스트 5,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와 그 이유를 묻는 질문 등에는 특히 더 대답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남들이 남긴 리뷰를 보며 "아 맞아. 나도 저런 감정을 느꼈어. 그래 저 부분이 특히 감명 깊었다고!" 뒤늦은 감상평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었다. 음식 리뷰, 전시회 감상평, 읽었던 책, 콘서트 후기, 강의 후기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오빠는 내 어디가 좋아?'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는 죄로 한동안 냉전 상태를 겪어야 한적도 많았으니. 

 이제는 좀 단련이 된 것 같은데도 새로운 분야의 낯선 환경 속에서 하나하나 알아갈 때면 꼭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맞는지, 남들이 내가 고른 이 선택지에 합격점을 줄지' 고민하는 나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이 고민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쳐 나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과 내가 그들의 합격점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떤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아마 며칠 뒤 저자와의 저녁식사에서 내가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상들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익숙한 일이니깐. 그래도 오랜만에 취향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고 정리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고, 감사하다는 표현은 꼭 해야겠다. 책을 읽는 동안 난 무얼 좋아했던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너무 눈치를 보고 살았던 건 아닐까?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고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잘 읽었다는 감상 조차도 남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뜬금없지만 네이버 지식인을 신뢰하는 이유가 있다. 어떤 문제가 생겨서 해결책이 필요할 때마다 '그래. 세상에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닐 거야' 하고 검색해보면 적어도 관련 질답이 한 개 이상은 꼭 나왔기 때문이다. 이 처럼 '취향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굳이 남들에게 풀어낼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내가 느낀 감상을 존중하자고. 그게 바로 취향인 것 같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입맛은 평생 변하지 않을 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