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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현 Nov 11. 2020

이 글의 가격은 2만 원입니다.

나는 에세이스트의 자질이 있나 보다.

코레일 멤버십 회원 중 만 25~33세까지 청년
KTX 열차별 승차율에 따라 지정된 좌석을 10~40%까지 할인

'힘내라 청춘' 할인 티켓으로 29,700원에 신경주행 KTX 티켓을 발권했다.

출발시간은 새벽 다섯 시 반. 버스 첫차를 타기 위해 캐리어를 끌고 이십 분 이상을 걸어가야 했고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새우버거 단품으로 배를 채웠다. 여행자의 설렘 앞에서 모든 일들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무려 2만 원씩이나 할인을 받기도 했고.


어느덧 출발하기 십 분 전이 되었다. 롯데리아에서 여유롭게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플랫폼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코레일 어플을 열었다. 


'???'

'왜 출발이 서울역이지?'


뭔가 잘못되었다. 내가 있는 곳은 영등포역이었다. 얼마 전 수원을 가기 위해 영등포역에서 수원역까지 기차로 이동한 탓이었을까? 티켓을 미리 발권한 날부터 출발 직전까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영등포역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침착하게 모바일 티켓을 다시 한번 읽어본 뒤 출발 4분 전, 티켓을 반환했다.


경주에 일찍 도착할 이유는 없었지만 이미 새벽부터 나온 이상 빠르게 재 발권을 해야 했다. 적어도 전날 예약해야 하는 힘내라 청춘 할인은 받을 수 없었다. 영등포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는 오후 7시부터 있었다.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열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이동을 하는 동안 내가 한 실수들을 머릿속으로 되새겨봤다.

'티켓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출발역을 잘 확인했더라면.. 역에 일찍 도착해서 새우버거를 먹기 전 모바일 티켓을 꼼꼼하게 확인했더라면 이미 지금쯤 출발했을 텐데..' 새벽 다섯 시 반에 열차를 타기 위해 밤을 새운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49,600원으로 재 발권을 하며 할인 금액을 토해냈고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출발했기 때문이다.


밤새워가며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캐리어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러려고 잠도 안 자고 짐을 쌌던가. 캐리어를 집어던져버리고 싶었다.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싶었다. 머릿속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욕들을 떠올리며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옆에 앉은 남자의 핸드폰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그는 이어폰도 꽂지 않은 채 액션 영화를 보고 있었다. "챱챱챱챱" 찰진 타격 소리가 귀에 꽂히기 시작한다. 예민하게 날이 서있는 신경을 자극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오늘은 좀 달랐다. 뺨을 후려치고 턱에 주먹을 꽂아주고 싶었다. "매너 없는 자식!" 물론 모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나는 이성과 의식이 있으며 감정을 컨트롤할 줄 아는 사람이니깐.


 서울역에 도착을 했다. 출발시간까지는 삼십 분이 남았고 저 멀리 롯데리아가 보였다.


모닝스페셜
불고기버거 or 새우버거 + 아메리카노 2,300원


아까 영등포역에서 3,900원에 사 먹었던 새우버거 단품이 떠오르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심지어 새우버거도 비싸게 사 먹었구나.'


어이가 없어 허탈하게 서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을 글로 써 볼까??

'아니, 여기서 글감을 떠올린다고?!' 순간 정신이 나간 줄 알았다.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오늘의 상황들을 써 내려가고 문장을 배치하고 수정했다. KTX에 오르자마자 노트북을 열고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용한 아침 열차 안에서 타이핑 소리는 생각보다 컸지만, 분노의 상황을 글감으로 승화시킨 내가 대견스러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삽십여분간 타이핑을 하고 이내 피로를 못 이기고 잠이 들었다.





글쓰기 선생님께서 에세이스트라는 타이틀이 좋은 이유가 몇 가지 있다고 했는데 그중 한 가지는 '있어 보인다'라는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에세이를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나에게 바로 붙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경주 어반 스케치 페스타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고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그 날.

'나는 에세이스트의 자질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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