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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현 Oct 30. 2023

작심삼일러의 작심삼일

가슴을 뛰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림을 쉬었다.'라고 쓰고 '도망쳤다.'라고 읽어야겠다.  

 그림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느라 들어오는 강의자리는 마다하지 않고 해냈지만, 정작 나를 위한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그 덕에 강의를 하면서도 내내 찝찝했었다. 임기응변과 핑계는 몇 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나 보다. 전업 그림쟁이에서 반업 그림쟁이로, 반업 그림쟁이에서 취미 그림쟁이로 변하는 데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취미 그림쟁이가 되어서 그런지 그림 실력이 녹슬었어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요즘의 고민은 두 가지였다. 책을 쓰고 싶다는 것과 다시 그림을 하고 싶다는 것. 집필은 늘 생각하던 것이지만 중요순위가 낮았기 때문에 늘 뒷전이었다. 오후타임 근무로 바뀌면서 여유가 생겨 책을 써보겠다며 분주하게 움직여 봤지만 역시나 난 게을렀고, 신발끈만 묶고 도로 신발을 다시 벗었다.

 신발끈을 조여 매던 시절, 점심시간에 시간을 쪼개 교보문고에 갔었다. 내가 쓰고 싶었던 주제의 책들이 모조리 절판된 것을 알게 되고 허탈함에 여행 관련 코너를 뒤적이다가 지인이 최근 출간했다던 책을 발견했다. 같은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이렇게 알찬 결과물이라니. 놀라웠다. 그리고 반성했다.

오늘 그림모임에서 다시 만난 지인과 대화하다가 "어떤 책을 쓸지 고민이 된다면. 어떤 독자층을 대상으로 쓸지 먼저 생각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 단순하지만 명쾌했다. 책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쓸지. 전문성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그림이 얼마나 들어가고 어떤 이야기들을 넣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머릿속이 말끔해졌다. 내가 책을 왜 쓰려하는지, 누구에게 읽히려 하는지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잡다한 생각들이 빠르게 정리가 되었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림을 쉬는 동안 인스타를 보고 있으면 참 여러 가지 감정들이 들곤 다. 그중 가장 긍정적인 감정은 '스케치북을 들고 뛰어나가고 싶다'였다. 같이 그리면 분명히 좋은데 좌절감을 주고 반성을 하게 되는 그림. 같이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와도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아쉬웠고, 그럴 때마다 미래의 나에게 미루곤 했다. '제발 같이 즐길 수 있게, 그림 연습 좀 하라고!' 그러나 그 다짐은 작가님을 뵐 때마다 항상 도돌이표였다.

오늘 오랜만에 작가님을 만나 같이 그림을 그렸고 당당한 고백을 했다. "작가님의 그림은 쉬는 동안 제 가슴을 뛰게 만드는 그림이었다고." 그리고 고백하는 동시에 느꼈다.

언젠간 내가 느꼈던 이 감정을 남들이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그렇게 오늘도 난 작심삼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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