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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Mar 08. 2021

뭘 했다고 벌써 번아웃이 와?

그동안의 기록, 긍정적인 변화들

의류 쇼핑몰을 시작한 지 7개월 차가 됐을 무렵 코로나 3단계 격상 소식은 나의 번아웃 상태에 불을 지폈다. 겨울 사입을 전면 중단하고 내 상태를 살펴주는 것에 집중했다. 물론 쉬는 동안 마케팅 활동에 활발히 하자고 나름의 목표를 세웠지만 잘 지켜지진 못했다. 결과적으로 겨울 상품을 진행하지 않은 건 잘 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 매출도 전체적으로 많이 떨어졌다고들 하는데 사입 비용을 아낀 셈이 됐다. 만약 그냥 밀고 나갔다면 더 빠르게 지쳤을 것이다.


번아웃 기간에는 스스로를 압박하지 않으니 심적으로 매우 편했다. 낮에는 회사를 가고 저녁에는 상품 업데이트와 신규 상품 소싱으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보니 저녁에 온전히 나를 위한 게으른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마음이 금방 채워졌다. 그러나 또다시 봄이 왔다. 지난 몇 주간 바쁘게 봄 상품을 업데이트하고 이벤트를 하고 택배를 부쳤다. 거기서 얻게 된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1 번아웃이 오면 무조건 쉰다.

자영업이 지독히도 외롭고 바쁜 길이라 나처럼 번아웃이 오는 사람들이 충분히 있을 것 같다. 그럴 땐 나처럼 그냥 탁 놔버리는 게 좋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계속 어떻게 할지 생각하긴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부족했던 것도 보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보인다. 나의 성격에 대해 돌아보고 어떻게 하는 게 가장 롱런할 수 있는 길인가 많이 고민해봤다. 결론은 자꾸 다른 걸 하려고 하지 말 것. 딱 하나, 스토어팜 운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 또 소설이 쓰고 싶고 자사몰을 오픈하고 싶고, 그렇지만 최대한 자제하는 것으로.


#2 다량 등록이 아닌 상품 하나에 집중한다.

스마트스토어 월간칫솔 판매자의 전략이 크게 인상 깊었다. 평범한 칫솔을 12개 한 세트로 만들어 '가장 깨끗한 칫솔은 새 칫솔'이라는 슬로건(?)과 구매 논리를 만들어 네이버 쇼핑에서 해당 부문 1위를 했다. 상품 딱 한 개로 빅파워를 만들었다. 상세페이지에 엄청난 공을 들여서 한 번 클릭한 고객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의류는 어떨까? 의류는 구색이 너무 중요한 카테고리다. 하지만 확실히 상세페이지가 잘 되어있을 때 구매전환이 이루어졌다. '잘 되어있다'는 기준이 사진을 정말 잘 찍던 설명이 상세하던 사진이 많던, 뭐 하나라도 충족이 될 경우를 말한다. 나도 앞으로는 상품을 미친 듯이 등록하기보다는 나의 첫 신념대로 안 팔려도 내가 입어도 안 아까울 정도의 퀄리티에 옷들을 소량 사입해서 상세페이지에 심혈을 기울여 판매해볼 생각이다. 단골고객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스토어팜의 생태계 속에서 하나의 확실한 브랜드를 만들려는 게 나의 목적이었으므로 블로그처럼 한 포스팅에 성의를 다해보자. 이제는 정말 '닥등(닥치고 등록)'이나 '내 취향에 맞는 옷을 공유하고 싶다'는 추상적인 행위로는 경쟁력을 얻기 힘들다. (인플루언서 제외)


#3 잘된 업체 모방하기

유통채널을 돌아다니다 보면 1등 업체를 따라 하는 곳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곳은 좀 심하다고 싶을 정도로 느낌을 비슷하게 흉내 낸다. 오프라인 가게는 누군가를 따라 했을 때 비난을 많이 받지만 온라인은 그런 제재가 크지 않은 듯하다. 당장 선두주자인 네일 스티커 오호라만 보더라도 모방한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그런데 1등 업체를 잘 참고해서 내 것을 개선해나가는 건 큰 도움이 된다. 내가 혼자서 사진을 편집했을 때와 잘 된 곳이자 나의 지향점과 유사한 곳들을 보며 편집했을 때 결과물이 크게 달랐다. 어차피 따라 하고 싶어도 100% 따라 하는 건 불가능하더라. 잘 된 곳을 보면서 내 거랑 비교해가며 발전해 나가려 하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다.


#4 광고에 인색해지지 말기

클럽하우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아마존 판매자로부터 한국인이 유독 광고에 인색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짜 맞다. 광고 영업을 많이 해봤는데 판매자들이 깐깐하게 굴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잘 나가는 판매자들의 공통적인 행위가 뭐냐면, 광고비 지출을 멈추지 않고 큰돈을 쓴다는 거다. 한 유명 쇼핑몰 대표도 운영 초창기 때 대행사로부터 매일 5만 원씩, 매출이 나오든 안 나오든 광고비를 지출했다고 한다. 오호라 역시 초창기에 광고비를 많이 태웠다. 광고를 통해 브랜딩이 된 케이스다. 회사 자체도 온라인 광고업을 메인으로 하는 곳 같았다. 그 얘기를 나랑 상관없다며 흘려들었는데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 내가 허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더 노출할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5 인스타 계정 다시 바꾸기

인스타를 어떻게 가꿀까 고민이 많고 지금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다. 이제 롤모델을 하나 정했고, 인스타 웹툰도 다른 곳에서 연재하기로 했다.


#6 환경을 생각하는 포장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됐다. 통계 자료나 강의를 통해 앞으로 친환경적 사업이 더 성장할 거라는 걸 들었지만 이걸 체감하진 못해서 또 그냥 넘겨버렸다. 하지만 친환경을 주제로 성장한 브랜드들도 있고 테이크아웃 커피 가격 인상에 대해 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는 걸 보고 다시 생각해봤다. 또다시 나만의 시야에 갇혔었구나. 옷 포장할 때 비닐팩이 2개나 쓰인다. 처음 OPP봉투는 종이로 포장하고 싶은데 사실 마땅한 게 없다. 적당한 사이즈나 가격대의 상품이 아예 없더라. 보통 식품 포장할 때 쓰이다 보니 옷을 포장할 만한 종이봉투가 없다. 아쉽지만 꾸준히 찾아봐야겠다. 종이로 포장해서 그 안에 환경을 생각해 종이로 포장했다는 안 내지를 넣어 보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7 채널 컨셉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판매자분이 나의 사진 컨셉에 정말 꿀팁을 주셨다. 하지만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어떻게 할지 계속 강구해봐야겠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은 그려놓은 상태. 내가 생각한 대로만 된다면 정말 멋진 샵이 완성될 것 같다. 다 똑같은 옷을 판매하다 보니 사진이나 가게의 컨셉이 너무 중요해졌다. 또 무신사처럼 고객 리뷰를 통해 구체적이고 다양한 코디컷을 공유하는 작은 커뮤니티장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리뷰 이벤트를 시작했다. 나중에 코디컷만 A4용지 한 장 짜리 잡지처럼 만들어서 공유해보면 좋을 듯.


#8 다양한 긍정적인 생각들

작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1~2번 주문 들어오던 것들이 이제는 2일에 한 번은 꼭 주문이 들어온다. 조금 감동. 올해 목표했던 방문자수, 판매량, 스토어찜 수가 완전히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 사람은 목표를 세워야 하나보다. 숫자까지 구체적으로. 리뷰도 40% 이상의 구매 고객분들이 작성해주시고 있고 환불율도 아직까진 적은 편이며 전체 평점은 꾸준히 4.7 이상, 구매자의 대부분이 직장인이며 20 후반에서 30 초반이다. 내가 타겟팅한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건 내가 잘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최근 사주를 봤는데 올해는 현상 유지만 하라고 한다. 나도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딱 내가 즐길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나의 가치를 전달하는 수준으로만 해야겠다. 마음이 늘 조급했었는데 여유를 찾은 느낌이다. 나를 너무 압박하지 않고 너무 무리하지 않으면서 차근차근 걸어가 보자.





회사 다니며 쇼핑몰을 운영하는 직장인의 기록입니다. 비정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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