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육지에 사는 허거북
Jun 19. 2024
Prologue. 임상에 계속 있어야 되나요?
제발 임상에 떠나라고 저에게 말해주세요. plz..
"넌 임상에 있어야 할 운명이야. 밖에 나가면 더 힘들어."
청천벽력 같은 말이다.
임상에 있어야 한다고? 차라리 나한테 욕을 해라.
독립한 지 7개월.
점을 봐주었던 무당말이었다.
"너 당장 그만둬, 그만두면 더 잘 나갈 수 있어. 넌 안 맞으니까 딴길가"
라는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갔더니,
임상에 있으라는 말만 들었다.
너무 힘이 드니까, 샤머니즘에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
힘드니까 별의별 생각이 든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수님과의 첫 면담이 떠오른다.
그 당시 때도,
난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임상에서 겁나 일을 못할 것이라는 것을.
"교수님, 저는 간호학과 잘못 온 거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저는 어릴 때부터 손으로 하는 일들 다 싫어했어요. 음악, 체육, 미술, 다 싫어했어요. 왜냐하면 너무 못했거든요. 근데 간호사는 손재주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진짜 손재주가 없어요."
"간호사는 딱히 손재주가 필요한 직업은 아닌 거 같긴 한데, 익숙해지면 괜찮아."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지.
어느 정도 손재주가 있는 분이었으니 그런 말을 하셨다는 것을 왜 생각을 못했을까?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다.
"교수님, 저 진짜 겁나 느린데 괜찮나요?"
—---------------------------------------------------------------------------------------
나의 목표는 딱 1년.
덜도 말고 1년이었다.
1년 뒤 퇴사였지만, 1년도 힘들어서 바로 퇴사하고 싶었다.
하루살이 인생 그 자체였다.
오늘도 버텼다. 내일도 버텨야지.
마치 감옥에서 달력을 펴고 하루하루 가새표를 치며
내가 받은 실형기간을 채우는 느낌이었다.
-너무 힘들면 그만두는 게 맞지.-
-퇴사해도 돼.-
주변 사람들 말이었고, 심지어 가족들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힘들어도 힘들다는 얘기를 잘하지 않았고,
사실상 잘 힘들어하지 않을 정도로 둔하였다.
하지만
병원은 달랐다. 7개월가량 되는 시기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나 그만둬야 하나 봐. 수선생님이 나보고 업무 개선 계획서 써서 오래…"
-업무 개선 계획서-
나의 병원 생활에 있어서 전환점이었다.
데이 출근을 하고 나서
수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거북 쌤, 퇴근하고 저 좀 봅시다."
나는 "네"라는 말 한마디만 하고 나의 할 일을 하였고,
퇴근할 때쯤에 수선생님 방에 들어가서 면담을 하였다.
대학병원 신규 간호사의 퇴사율이 하늘을 치솟는데,
수선생님은 나에게 항상 격려와 좋은 얘기만 하는 , 무조건 나의 편일 거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선생님께 환자를 맡길 수 없어요. 환자한테 해를 끼칠 것 같고, 선생님이 우선 너무 느려요.
3개월 동안 돌아가면서 봐줄 선생님을 붙여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업무개선계획서 써서 오세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업무 개선 계획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고 양식이 있는 계획서인가?
나는 얼떨떨해졌다.
신규 시절
기숙사를 썼던 나에게는 다른 부서 룸메이트가 있었고,
이 이야기를 꺼내자,
룸메이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거 권고사직이래."
룸메이트 왈,
업무 개선 계획서를 써오라고 해놓고
컨펌받을 때마다 계속 거절당하다가 결국 퇴사하게 만든다고 한다.
계획서로 피 말리게 만들어 퇴사시킨다고 한다.
업무 개선 계획서 작성하라는 건 너무 한 거 아니냐,
신규는 일을 다 못하는 거 아니냐?
신입은 원래 그렇지. 태도가 중요하지.라고 대체적으로…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난 지금 생각해도 심각한 신규였기에… ^^…
사실상 나는 배우는 데에 느렸고, 원래 성격, 행동도 느렸다.
하지만 내가 있는 부서,
외과계 중환자실은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곳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부서에 들어온 해가 나의 삼재 시작이었다.)
빨리 안 해도 될 것도 빨리해야 하는 곳이었다.
약물도 빨리 달아야 하고,
LAB 나가야 하는 것도 빨리,
의사에게 상황 보고 할 때도 빨리 말해야 하는 부서였다.
승압제를 다는데 3분 넘게 걸리면
중환자실 교수님이 소리치는 그런 곳이다.
내가 있는 부서는 쉽게 말해서 흉부외과 중환자실이었다.
18 BED 중에서 보통 10 BED정도?
(환자가 누울 수 있는 침대가 18개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중 10명의 환자 정도?)
심장 수술이나 폐 수술이었다.
만나온 환자의 특성상,
혈압이 갑자기 떨어질 때도 있고,
(말 그대로 후두두 떨어진다. 혈압이 110대였는데 1분 만에 80대까지 떨어진다)
병동에 갈 컨디션의 환자였는데
그냥 물 마시다가 Aline(동맥혈관으로 보는 혈압), Heart rate가 갑자기 flat(일자로 삐-) 된 적도
도 있다.
그래서 바로 처치를 하거나 약을 달면 바로 회복되는 경우가 있기도 해서 빨리빨리 하라고 외치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다른 생각도 있긴 하지만 그건 생략한다.
"빨리빨리 말해! 지금 바쁘잖아!"
"말이 느리면 행동이라도 빨리해야 되지 않을까?"
"아 답답해."
이 부서에서 신규로 일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당연히 간호사 선생님들이다. 같이 일하고 부딪히는 사람들이니까)
또한 환자 파악도 제대로 잘 안 되었다.
환자를 보면,
이 환자의 히스토리가 이렇게 되어서 어떤 수술을 했고,
그래서 이전에 이런 이벤트가 있어서 이 약들을 쓰고 있고,
이럴 때 환자가 혈압이 떨어지고 랩 수치상 이 수치가 높기 때문에 유의 깊게 봐야 한다 등등.
이런 식으로 환자에 대해서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딱 인계 시간이 되면 바로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환자 파악할 때 촉박해져서 잘 안됬던 거 같았다.)
그러니까,
다른 간호사 선생님께서 나에게 환자에 관해서 물어볼 때마다
나는
"어... 어..." 이렇게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요령 없긴 했다.
그냥 " 한번 찾아보고 말씀드릴게요"라는 마법 같은 말이 있는데 그걸 몰랐다.
아무튼,
너무 긴장을 많이 하기도 했고, 겁도 너무 많아서 한두 번 확인할 것을 5번 넘게 확인하고,
환자 vital sign이 안 좋아질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얼어붙었다.
그렇게 되니, 일이 밀리기 시작하고 일이 밀리면 먼저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하는데,
나중에 해도 될 것을 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복장이 터지는 것이다.
말이라도 똑 부러지게 잘하면 괜찮은데,
그야말로 일 못하고 말도 못 하는 신규였다. 최악의 신규다.
하지만 1년도 못 채우고 퇴사?
안된다.
사실 이전 대학병원에서 독립 전에 퇴사해서,
더더욱 오기가 생겨있던 터였다.
첫 번째 대학병원 퇴사하기 전,
거울을 보며 수도 없이 울면서 다짐을 했던 것을 꺾고 싶지 않았다.
이 다짐을 이어, 두 번째 병원에서 이 악물고 일을 하였고,
너무 힘들 때는 인터넷 속 다른 선생님들의 신규시절 이야기를 보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렇게 따뜻한 위로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
나의 브런치로,
작디작은 임상 경력 만 2년 하고 2개월치 임상 이야기 및 신규시절 이야기로 작은 위로와 공감을 주고 싶다.
또 한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나의 인생 계획 중 하나는 임상 경력 1년 채우기.
1년 채우면 바로 퇴사할 계획이었으나,
나의 선택으로 인한, 운명의 장난으로 2년을 하게 된 우당탕 임상 브런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