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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브르사비 Nov 02. 2020

19세기 한 조각가의 영혼이 깃든 작은 미술관

파리 부르델 박물관(Musée Bourdelle)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이다. 로댕의 조각이 온몸으로 인간의 고뇌와 쾌락, 기쁨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앙투안 부르델(Antoine Bourdelle, 1861~1929년)의 작품은 감정을 꾹 눌러 담아 조용히 대상을 응시한다.





부르델은 오귀스트 로댕·아리스티드 마욜과 함께 프랑스 근대 조각을 대표하는 3대 거장으로 불린다. 사실 내가 부르델의 조각에 매혹된 것은 형태 때문이 아닌 그 속에 스며있는 견고함과 묵직한 무게감 때문이었다. 로댕의 작품이 손으로 진흙을 이리저리 빚은 것 마냥 인간의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표현해 조각에 깃든 감정을 내 것처럼 느낄 수 있다면, 부르델의 작품은 산처럼 큰 돌덩이를 바람과 비가 깎아내려 형상을 만든 것처럼, 이 작품이 태초부터 이곳에 존재했을 거란 생각이 들게 한다.



파리의 16구,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부르델의 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진공상태처럼 멈춰있는 듯한 공기의 흐름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나는 자꾸 계절과 시간을 잊는다. 


수직으로 솟은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 사이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침묵이 고인 눈을 가진 두상이 나를 바라본다.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이건만 눈빛만큼은 무척 고요하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단어로는 그의 작품을 표현하기 어렵다. 부서질 것만 같은 찰나를 구현한 로댕과 달리 부르델의 시선은 ‘순간이 아닌 영원과 본질’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아틀리에에서 모델 그레이스 크리스티를 스케치하는 부르델


그래서인지 그는 그리스 신화에 매료되어 작품의 주제로 줄곧 활용했다. 아폴론, 헤라클레스, 페넬로페, 켄타로우스 등 신화적 인물이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등장했으며, 아폴론 흉상은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대중에게 인정받은 첫 번째 작품이 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조각의 양식 즉 형태마저도 고대 그리스풍을 구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경직된 자세와 굵은 목, 표정 없는 얼굴, 기하학적인 신체 표현은 고대 그리스 조각이 가진 특징 중 하나인데, 부르델 역시 ‘신의 세계’가 담고 있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인체의 한 부분을 강조하거나 간소화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조각도 건축처럼 구조적이어야 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하는데 이를 단순하고 딱딱한 자세 혹은 비틀린 기하학적인 자세로 표현한다.



일례로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를 보자. 이는 영웅 헤라클레스가 괴물 새를 겨냥해 화살을 쏘는 장면을 구현한 것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다. 이 작품의 신체 표현을 살펴보면 지나치게 길게 표현된 한쪽 팔, 바위에 지탱한 왼쪽 발의 불균형한 크기와 자세, 간략하게 표현된 전신의 근육과 얼굴이 눈에 띈다. 즉, 활을 뒤로 당기는 헤라클레스의 자세는 매우 불균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작품에서 당장이라도 화살이 쏘아져 나갈 것 같은 긴장과 역동감을 느낀다. 부르델은 로댕과 마욜이 추구하던 조형미가 아닌 구축적 형태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부르델은 고대 신전이나 고딕 성당에 놓인 조각상처럼 공공적 성격이 강한 옥외작품을 제작하는 등 전통적 개념의 조각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의 작품 중 대부분이 폭이 제한된 수직적 구조에 규모가 큰 작품이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 있어 중요하게 손꼽히는 다른 주제는 바로 베토벤이다. 베토벤의 음악, 천재성, 괴팍한 성격과 독특한 인생 여정까지 모두 사랑했던 부르델은 41년(1888~1929년)에 걸쳐 총 80여 개에 이르는 베토벤의 흉상을 만들었다.



“몽토방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나는 시골에서 쓰던 튼튼한 가구를 만드시던 아버지의 작업에 넋을 잃고 몰두하곤 했었다. 나무를 깎아 빵 반죽 통이나 걸상을 만들던 일이 나에게 건축의 균형감을 가르쳐 주었다.”


부르델에 관해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당대의 천재로 칭송받던 스승 로댕과 전혀 다른 작풍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사실 부르델을 논할 때 로댕을 빼놓고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어린 시절 목수였던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나무를 다루는 법을 배웠던 그가 조각의 세계로 빠져든 후, 가장 존경한 스승이자 오랜 시간 작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우정을 쌓아온 예술적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중요한 일은 모델링이다. 부르델에게 있어 그것은 건축이다. 나는 감정을 근육 속에 가두어버리고, 그는 양식 속에서 치솟게 한다

- 오귀스트 로댕


둘의 나이 차이는 21년에 달했지만,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마음 깊이 존중하며 서신을 주고 받았다. 그들의 첫 만남 당시, 로댕은 많은 제자를 둔 대가였으며 부르델은 그를 존경하던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놀라운 일이다.


두 사람은 뫼동에 있는 로댕의 집이나 현재 부르델 박물관이 위치한 아틀리에에서 식사를 함께하거나 산책을 했고, 만나지 못할 때는 편지를 썼다. 일상생활과 가족 그리고 친구, 작품에 대한 고민, 모델과 전시에 대한 조언 등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편지를 읽어보면 부르델은 로댕보다 조금 더 수다스럽고 매사 열정적이다. 부르델의 견고하고 묵직한 작풍 때문에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그의 편지에서 세상을 향해 열린 그의 마음과 아름다운 것에 쉬이 감탄하는 젊은 예술가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예술가의 아틀리에를 구경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부르델 생전의 작업실 모습 그대로 간직한 아틀리에부터 빛이 쏟아지는 전시 공간, 조각상이 곳곳에 숨쉬듯 자리해 있는 작은 정원까지.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는 부르델 박물관은 19세기 한 조각가의 영혼을 조용히 응시할 수 있는 곳이다.




Musée Bourdelle
주소 18 Rue Antoine Bourdelle, 75015 Paris
전화번호 +33 01 49 54 73 73
홈페이지 http://www.bourdelle.paris.fr
개관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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