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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브르사비 Nov 07. 2020

당신과 나만 아는, 파리의 걷고 싶은 길

숨겨진 보석같은 골목을 찾아서

파리의 골목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즐거움이 숨어 있다. 벽면 가득 시가 적혀있기도 하고, 평범한 주택가에 녹음으로 우거진 작은 예술가 거주지가 있기도 하다. 오늘, 늘 걷던 거리 대신 새로운 곳으로 작은 모험을 떠나보면 어떨까.




천재시인 랭보의 숨결이 깃든 Rue Férou

뤽상부르 정원의 북서쪽 맞은편에 있는 작은 골목, Rue Férou에는 벽면 가득 한 편의 시가 적혀있는 벽돌담이 있다. 120m에 달하는 짧은 길이지만 찬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오면 내가 꼭 찾는 곳이다. 이곳에 적혀있는 시는 프랑스가 사랑하는 시인, 랭보의 <취한 배(Le Bateau Ivre)>이다.



선원 없이 대양을 항해하는 배의 모험과 좌초를 통해 자유와 생의 의미, 좌절을 그려내는  시는  번도 바다를   없던 랭보가 상상만으로 그려낸 바다가 담겨 있다. 시의 구절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뤽상부르 공원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시의 구절을 음미해보자.



난 알고 있다네, 섬광으로 찢어지는 하늘들, 물기둥들,

격랑들 그리고 해류들을, 난 알고 있다네, 저녁녘,

비둘기의 무리처럼 비약하는 새벽,

또 난 가끔 보았다네, 인간이 본다고 믿었던 것을!


난 보았네, 신비로운 공포 점점이 박힌 나지막한 해,

머나먼 고대 연극배우들 모양의

기다란 보랏빛 응결체들을 비추는 태양을

저 멀리 출렁이는 수면을 굴리는 물결들을!


난 꿈꾸었네, 현란스레 눈 덮인 푸른 밤,

서서히 바다 위로 복받쳐 오르는 애무인 양

놀라운 수액의 순환

그리고 노릇파릇 깨어나 노래하는 인광(燐光)들을!



베를렌과 랭보, 그리고 랭보가 자필로 적은 시


생제르맹 거리의 카페에 앉아 100행에 달하는 취한 배(Le Bateau Ivre)를 쓴 당시 16살의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년)는 이 시를 당시 유명한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에게 보낸다. 그의 천재성에 감탄한 베를렌은 그가 발행하던 잡지에 랭보의 시를 게재했고, 소년에 불과했던 그는 하루아침에 문학계의 스타가 된다.


당시 유부남이었던 폴 베를렌과 연인관계가 된 랭보는 거칠고 뜨거운 사랑에 빠졌으며, 베를렌의 모호한 태도와 집착에 지쳐 헤어지기 전까지 여러 편의 아름다운 시를 남긴다. 그는 21살에 절필을 선언한 후 아라비아와 아프리카를 떠돌다가 37살에 암 때문에 다리를 절단한 후, 마르세유에서 사망한다.



이 외에도 Rue Férou와 인연을 맺은 예술가들이 있다. 알렉산드로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 아토스가 이곳에 사는 것으로 묘사되며, 2번지에는 사진작가와 영화감독으로 잘 알려진 만 레이(Man Ray)가 1951년부터 20년 이상 이곳에서 살았다. 6번지에는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F.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가 거주했다.



예술가들의 쉼터 Villa Santos-Dumont

한적한 15구의 주택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예술가가 거주했던 작은 주택이 모여있는 거리가 있다.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에 더욱 아름다운 이곳은 바로 Villa Santos-Dumont이다.



1889년 조각가 루이스 라파엘(Louis-Raphaël Paynot)은 포도밭이었던 땅을 구매하고, 그의 아들은 이곳에 25채의 작은 집을 짓는다. 본디 Villa Chauvelot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 거리는 1932년에 사망한 항공기 조종사 알베르토 산토 뒤몽의 이름을 따 Villa Santos-Dumont으로 불리게 된다.




예술가들이 주로 모였던 몽마르뜨나 6구가 아닌 남서쪽에 위치한 이곳에 예술가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라파엘 부자의 노력 덕분이다. 이곳의 주민으로 독보적인 조각 스타일로 유명한 오십 자킨(Ossip Zadkine), 화가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화가 빅토르 브라우네르(Victor Brauner)등이 있으며, 지금도 몇몇 예술가가 살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운 색을 간직하고 있는 작은 주택, 잘 관리된 화분. 이 거리에 사는 사람이 누구든 분명 이곳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이 분명하다. 파리지앵의 평범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거리는 잘 알려진 관광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가을에 더욱 아름다운 Rue Saint-Vincent

샹송에도 등장할 정도로 낭만적인 길, 바로 18구 몽마르뜨에 위치한 Rue Saint-Vincent이다. 특히 길의 초입에는 담쟁이 넝쿨이 여름부터 가을까지 벽면을 빽빽하게 채우며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10월 중순 무렵에 가보길 권한다. 몽마르뜨의 길은 제각각 사연을 품고 있어 어딜 가든 아름답고 흥미롭지만, Rue Saint-Vincent의 가을 풍경은 몽마르뜨에서도 독보적이다.



이 거리는 아리스티드 브뤼앙(Aristide Bruant)의 노래 <흰 장미(Rose Blanche)>와 마르셀 물루지(Marcel Mouloudji)의 노래 <몽마르뜨의 언덕의 애가(La Complainte de la Butte)>에도 등장한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Rue Saint-Vincent 길 끝에서 한 시인과 낯선 여자가 사랑에 빠졌지만, 그는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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