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파리도 매력적인 이유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해 온 파리. 언젠가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젊은 예술가들이 세계 각지에서 파리로 몰려들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들은 파리 북쪽에 위치해 집세가 저렴했던 몽마르트르로 하나 둘 모여들었고, 오늘날에도 이곳은 예술가들의 영혼을 간직한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18세기부터 파리에 등장하기 시작한 카페는 19세기에는 700~800개에 이를 정도로 성업하게 된다. 당시 가난한 예술가들은 겨울이면 난방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카페에서 긴 시간을 보냈는데, 그래서인지 파리의 카페는 지금도 커피와 술은 물론 간단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많다. 19세기 모습을 간직한 몽마르트르의 카페 몇 곳을 소개해 본다.
고흐와 모네 그리고 로트렉이 자주 찾았다는 카페 Le Consulat. 불우한 천재들이 머물렀던 이 공간에는 아직도 19세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 카페에서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라팽아질은 카페이자 선술집으로 르누아르, 아폴리네르, 모딜리아니, 피카소와 같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다. 이곳의 외벽에는 캐리커처 화가인 앙드레 질이 그린 ‘소스 냄비를 튀어오르는 토끼’가 그려져 있는데, 잽싼 토끼라는 가게 이름은 이 그림에서 비롯됐다. 밤에는 가수들이 샹송을 부르고, 시인들이 시를 낭독하기도 했던 이곳은 오늘날에도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고 가수들의 목소리와 악기만으로 공연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늦은 밤, 노곤한 몸을 이끌고 값싼 술을 기울이던 19세기 예술가들의 모습이 상상되는 장소이다.
1850년대에 지어진 장미의 집은 툴루즈 로트렉, 드가, 르누아르 등 여러 예술가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이 살던 곳이다. 그녀는 매력적인 외모와 외향적인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당시 기성 화단에서 여성은 인정받지 못하던 풍토였음에도 평생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화가들의 모델을 하던 수잔 발라동은 아이를 낳은 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스승은 로트렉과 드가였다. 그녀는 인물과 정물, 여성의 누드화를 주로 그렸으며, 여러 화가와 교류하며 꾸준히 자신의 화풍을 개척해나간다. 수잔 발라동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누드를 가장 많이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그녀가 살던 이곳은 ‘장미의 집’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는 핑크의 외벽에서 비롯됐다. 수잔 발라동의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가 이곳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다. 현재는 레스토랑으로 개조되어 운영되고 있다.
몽마르트르는 순교자에서 유래한 ‘마르트르(Martre)’와 언덕을 뜻하는 ‘몽(Mont)’이 합쳐져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몽마르트르의 꼭대기에는 석회암으로 만든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장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이곳의 지대는 석회와 점토로 이뤄져 있을뿐더러 석고 채굴장 투성이었기에 지반이 약했다고 한다. 성당 부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는 장엄한 대성당을 짓고 싶었던 기베르 대주교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80개가 넘는 30미터 이상의 돌기둥을 박아 넣은 후, 그 위에 성당을 짓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비용이 드는 공사를 강행한다. 20세기 초에야 완공된 이 대성당이 어찌됐든 파리의 상징 중 하나가 됐으니, 기념비적인 성당을 지으려고 했던 기베르 주교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1870년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가 침체된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건립한 사크레쾨르 대성당, 루이 14세 시기까지만 해도 교수형 집행장소로 쓰였던 테르트르(Tertre) 광장, 파리 사교계의 중심지였던 환락의 거리 물랑 루즈 등 몽마르트르에는 프랑스의 여러 문화와 역사가 혼재돼 있다.
몽마르트르를 사랑해 이곳에서 평생 살았던 프랑스 가수이자 배우인 달리다. 달리다 광장(Place Dalida)에는 그녀의 흉상이 놓여 있다. 동상의 가슴 부분만 사람들이 많이 만져 색이 변해있는데, 이는 연인이 생긴다는 속설 때문이라고. 그녀가 살던 집은 번잡한 몽마르트르의 거리에서 떨어진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있다. 달리다는 계속되는 주변 사람들의 불운과 사망으로 우울증을 앓다 54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고 한다.
파리를 대표하는 초록색 벤치에도 소복하게 눈이 쌓였다. 화창한 여름의 파리도 좋지만 눈이 온 후의 파리의 풍경도 눈길을 끈다. 혹시 꽁꽁 언 몽마르트르의 언덕이 걱정된다면 좀 더 쉽게 걸을 수 있는 길도 있다. 12호선 Lamack-Caulaincourt역에서 나와 뒤로 돌면 보이는 계단을 올라 사크레쾨르 대성당 방향으로 걷는 방법이다. 이렇게 걸으면 계단이나 오르막길이 많지 않아 쉽게 몽마르트르의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