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서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담긴 역사
낯선 곳에서 서점을 발견하면 이유 없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여름날, 더위 속에서 이 작은 서점에 눈길이 머물렀을 때도 그랬다. 이날은 37도까지 기온이 오른 기록할 만한 더위였는데, 책방 안은 이십 대부터 오십 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만, 책을 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낯선 곳에 가면 나는 늘 서점으로 먼저 향하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은 나와 같은 습관을 지닌 여행자를 위한 글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파리의 서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영화 <비포 선셋>과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나왔던 이 작은 서점에는 파리를 스쳐 간 영혼들의 쉼터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역사는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인 실비아 비치(Sylvia Beach)는 파리 6구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이름의 서점을 연다. 그녀는 제임스 조이스, 폴 발레리,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당대의 위대한 지성과 교류하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를 비롯해 내용 때문에 출간이 어려웠던 책을 펴낸다.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에서 지식인들이 모여 문학과 예술을 논할 수 있었던 공간. 가난한 예비 작가들이 책을 읽고 싶을 때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었던 이곳은 분명 책을 파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1941년 2차세계대전 때 독일인들에 의해 문을 닫기 전까지 이곳은 20세기 영미문학의 정신을 이끄는 본거지이자 예술가들의 쉼터였다.
실비아 비치의 뒤를 이어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제2의 부흥기를 마련한 사람은 바로 미국인 저널리스트이자 파리에서 유학을 하던 조지 휘트먼(George Whitman)이다. 그는 1951년 현재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있는 장소인 파리 5구에 ‘르 미스트랄(Le Mistral)’이라는 이름의 작은 서점을 열었으며, 1950년대 후반 실비아 비치에게 서점 이름을 물려받아 상호를 변경한다.
조지 휘트먼의 서점 운영 원칙은 간단했다. 첫째, 세익스피어를 중심으로 한 영문학 고서적과 중고서적을 판매하며, 이곳에 있는 모든 책은 손님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을 환대하며, 필요한 경우 영업시간 종료 후 잠자리를 제공한다. 서점 2층으로 올라가면 사방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작은 침대와 세면대 등이 놓여있는데, 놀랍게도 이곳은 숙소를 구하지 못한 여행자에게 제공하는 공간이다.
조지 휘트먼은 이렇게 서점에 머무는 사람들을 ‘텀블위드(Tumbleweeds)’라고 불렀다. 잠자리를 얻은 여행자는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서점에서 2시간을 일하고 책 한 권을 읽으며, 한 페이지 분량의 자서전을 쓰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이곳에 머문 3만 명의 여행객 중 놀랍게도 <비포 선라이즈>의 에단 호크(Ethan Hawke)가 있다. 16살의 어린 그가 처음으로 파리를 여행했을 때 이곳에서 6일 밤을 머물렀다고 하는데 그가 쓴 당시의 자서전이 궁금해진다. 3만여 명이 넘는 텀블위드의 자서전은 아직도 이곳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이렇듯 프랑스의 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실비아 비치는 1938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평생을 ‘서점을 가장한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구현하는데 바친 조지 휘트먼은 문화예술공로훈장(Officier des arts et des lettres)를 받았다.
그저 파리의 유명한 서점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곳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코로나 이후 경영난 악화로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폐업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에서 온라인 주문이 밀려들어 위기를 넘겼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분명 이곳을 한 번쯤 찾은, 혹은 이곳에서 도움을 받은 여행객들이리라.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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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 내부 사진은 직원의 허가 후 촬영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