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놀던 해님이가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한 언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녀의 시폰 소재의 하늘하늘한 긴 치마가 눈에 들어온다. 여지없이 분홍색이다.
치마라고 해서 다 같은 치마가 아니다. 요즘 해님이에게 치마는 둘 중 하나다. 공주 치마와 공주가 아닌 치마. 공주 치마의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는 적당한 레이스와 큐빅, 리본 장식 따위가 붙어야 하며, 기장이 넉넉하고, 치마폭이 풍성해야 한다.
해님이가 생각하는 공주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공주'의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것 같다. 4세 아이에겐 '정실 왕비가 낳은 왕의 딸'이라는 출신보다는 겉모습이 중요하다. 머리를 틀어올리거나 늘어뜨리고, 티아라나 목걸이, 귀고리나 반지를 착용하고, 곱게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어야 공주다. 아이 기준에 맞추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름답고 고상하며 기품있게 꾸민 사람'으로 정의해야 한다.
공주
1. 정실 왕비가 낳은 왕의 딸 2. 어린 여자아이를 귀엽게 부르는 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아이가 이런 공주의 이미지를 갖게 된 건 언제부터 였을까?
물론 공주라는 말을 배운 건, 나에게서다. 예뻐 보일 때마다 "우리 공주, 우리 공주"를 연발하던 입버릇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건 '공주'의 두 번째 사전적 의미, 즉, '어린 여자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일뿐이었다. 그 정의에 따르면, 타고난 얼굴로 배시시 웃기만 해도 공주가 될 수 있었다. 꾸밈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해님이 주변엔 '아름답고 고상하고 기품있게 꾸민', 공주다운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여아는 보통 엄마가 롤 모델인데, 내 평소 모습은 공주와 거리가 있었다. 해님이에게 나는 항상 티셔츠에 헐렁한 바지 차림, 외출할 때는 그 의상에 야구모자와 운동화만 추가하는 엄마였다. 엄마가 화장하는 건,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했다. 심지어 우리 집엔 화장대도 없었다.
아이에게 끝내 사주지 않은 장난감도 화장대 장난감이었다. 해님이도 그 물건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로션 등의 몇 가지 화장품만 선반에 두고 거울도 보지 않은 채 쓱쓱 문질러 바르는 엄마를 보고 자랐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해님이는 금발의 마론 인형보다는 구조대나 중장비 차량을 더 좋아했다. 만화도 자동차나 로봇 만화를 더 봤다. <백설공주>를 읽어주긴 했지만, 해님이가 자주 빼오는 책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난감이나 만화나 책으로 공주를 배운 것 같지 않았다. 공주의 이미지가 해님이 뇌리에 깊게 새겨지는 최초의 계기는 따로 있었다.
"엄마 공주님, 선물이에요."
해님이가 내게 장난감 꽃을 쓱 내밀던 어느 날
"내가 왜 공주님이야?"
의아한 마음에 이렇게 반문했었다. 그때 난 공주와 거리가 먼 후줄근한 차림이었다. 헝클어진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 늘어난 체중만큼 커다랗고 헐렁한 옷 등 공주의 기준에서 애초부터 탈락인 꾸밈새였다.
꽃밖에 없었다. 내가 공주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해님이가 쥐여준 꽃 말고는 없었다. 꽃만 들고도 공주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생각났다. 신부였다. 결혼을 앞두고, 부케를 든 신부. 집안 곳곳에 놓인 웨딩 사진 액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머리, 얼굴, 의상 모두 4세 아이가 생각하는 공주 요건에 부합하는 인물.
해님이의 엄마이자, 결혼 전의 나. 그가 범인이었다.
그는 항상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스릴러 영화의 범인은 늘 주변 인물 중 하나인 것처럼.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해님이가 본 최초의 공주였다. 공주 책을 읽거나, 공주 만화를 보기 훨씬 이전부터였다. 24시간 아기를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에 아이가 영향을 받지 않을 리가 없었다.
돌아보면, 분수에 넘치게 비싼 돈을 들인 웨딩 스튜디오 촬영이었다. 평생 다시없을 아름답고 반짝이던 순간이었으나,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키운 긴 노동의 기간과 비교하면 잊는 게 당연한 찰나였다. 그래도 그 사진들 덕분에 나는 아이에게 꽤 예쁜 이미지를 남기게 됐다.
치장하고 싶은 마음의 기저엔 자신이 귀한 사람임을 드러내고픈 심리가 있을 것이다. 공주를 바라보는 아이의 동경이 나를 향한 동경에서 파생된 거라면, 해님이가 공주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엄마가 공주이기 때문이라면, 고마운 일이었다. 모두 엄마를 귀하게 생각해 주는 마음의 징표일 테니까.
해님이에게도 공주의 증거를 남겨주고 싶어서 였을까.
나는 만삭 촬영, 둘째 50일, 100일, 돌 촬영이 포함된 둘째 성장앨범 제작을 계약했다. 함께 사진을 찍으러 가는 첫째의 단독 앨범과 가족사진 촬영이 서비스인데, 사실 그 서비스 때문에 계약을 결정한 거였다. 아이에게 공식적으로 공주가 될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나 공주의 집 갈 거야."
이제 해님이에게 사진 스튜디오는 '공주의 집'으로 통한다. 한껏 멋을 내고 찾아간 하얗고 예쁜 스튜디오에서 자신을 향해 터지는 플래시 세례를 태연히 즐긴다. 엄마가 웨딩 촬영을 할 때 지었던 웃음만큼 환하게 아이가 웃는다. 예쁘다. 자식은 꾸미지 않아도 귀하지만, 그래도 꾸며서 더 자랑하고 싶은 보석이다.
이번 주는 둘째의 100일 촬영이다. 공주를 상징하는 소도구를 몸에 하나씩 장착하고서 또 그곳에 간다. 잠시 잊고 살았던 내 지체 높은 신분도 잠깐이나마 추억하는 시간이 되리라. 나도 이날만큼은 머리를 높이 틀어올리고 곱게 단장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