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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쭉정이 Jun 11. 2023

사색하러 떠난 교토여행(3)

우린 모두 각자만의 인생을 살아간다

'23. 6. 8. ~ 11. 나혼자 교토여행 마지막 밤

6/10 토요일.


알람도 맞추지 않은 채 눈 뜨는 대로 일어나야지 했는데, 6시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눈 뜨자마자 선명한 기분이 날아들었다. 무언가로부터 도피하듯 여행 와서는 고독함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정답을 찾기 위해 애쓰기보단, 그저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즐기는 것이 조금 더 괜찮은 인생이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어제의 쓸쓸한 기운이 잠결에 좀 남아있었나 보다. 세상은 혼자 살긴 어려운 것 같다.


다만 혼자만의 시간이 분명히 필요했기에, 잡념의 고리를 끊어내야 했기에 오늘은 더욱이 나의 마음이 외치는 대로, 즉흥대로 움직여보자 한다.





오늘의 오전 일정인 아라시야마로 향했다. 아라시야마는 교토 시내보다는 한적한 곳으로 예쁜 다리(도게츠교)와 흐르는 강(가츠라강)이 유명한 곳이다. 다리 끝에는 아라비카 커피숍이 있는데 여기 커피를 마시려면 웨이팅은 기본이다. 그나마 일찍 도착한 덕분에 6번 차례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라떼이긴 하지만 한국에서의 흔한 맛이라기보다는 드립커피 같은 느낌의 연하면서 탄맛이 나는 느낌이었다.

커피 한잔 때리고 천천히 산책을 했다. 그냥 걷다 보니 대나무숲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나왔다. 역시나 유명한 관광지는 사람들이 많다. 서양인을 비롯해서 한, 중, 일 모두가 한 곳에 단합하듯 모였다. 그래도 대나무가 주는 시원함과 웅장함에 사람들이 끄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대나무숲을 지나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걸었다. 그런데 웬걸, 너무나도 예쁜 동네를 발견했다. 아마 료칸이 모여있는 곳 같은데 세상에나 이렇게나 조용할 수가 있나. 오로지 새소리와 나무, 그리고 교토스러운 료칸뿐이다. 또다시 설렌다. 사람이 없어야지 설레나 보다. 정말이지 복잡스러운 성격이다.

생각이 샘솟았다. 서울에서 나는 잘 살고 있던 걸까. 서울에서는 스스로가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단점에만 메여 스스로를 가만 내버려 두지를 않았다. 이미 열심히 달리고 있는 자신에게 더 달리라고 채찍질을 했다. 달리다가 넘어지면 치료가 아니라 아니라 당장 일어나라고 비난했다. 너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된다며, 상처 난 마음에 소금 뿌리기는 나의 오래된 주특기였다.


아마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이유들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싶지만, 가끔은 서러울 때도 있다. 그런데 주변을 자세히 돌아보면 다들 저마다의 사연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면 괜히 위로가 된다. 인생은 원래 그런 건가 봐 라며.




잘 살고 있는 거라 믿어본다. 무언가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결국 더 잘살아보기 위함이 아닌가. 다만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것이 오히려 단점이라는 걸 이번 여행에서 느꼈다. 그렇게 살면 나무만 보일 뿐 숲을 볼 수 없다.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메여있기보단 조금은 유연하게, 그리고 가볍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삶에 여유를 주는 것이다.




열차를 타고 숙소로 귀가하는 길, 아직도 이런 노면 열차가 있다니. 왠지 이 노면 열차는 영원히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일까.




오전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뒤 가족 및 지인들 나눠줄 선물을 사기 위해 가볍게 나왔다. 어제 다짐한 대로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PIPPA'라는 우리나라의 따릉이 같은 자전거를 대여했는데, 중간에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면서 일시잠금이 아닌 그냥 잠금을 해버리는 바람에 이상한 장소에 반납한 게 돼버렸다. 벌금 30만 원을 낼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기념품을 구매한 가게의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도움을 주신 덕분에 해결했는데, 여기는 자전거 이용량이 많은 만큼 규칙이 철저하다. 자전거를 아무 데나 세워두면 순찰 중인 경찰관이 단속을 한다고 직원이 그랬다. 맞다, 여기는 국내가 아닌 해외였다. 남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서로 돕고 살아야 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숙소로 돌아와 그대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버렸다.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동안 무엇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을까.


숙소 라운지에서 좋은 노래가 들려와노래 찾기 기능으로 검색했었다. 그때 검색했던 그 노래를 다시 한번 들어봤다. FOREST BLAKK이라는 가수의 'fall into me'라는 노래인데, 울컥할 정도로 너무 좋아서 어떤 가수인지 찾아봤다.


캐나다 출신으로 어린 시절 부모 모두가 마약 등 범죄를 저질러 불우한 가정 속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젊은 시절에는 노숙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손에 쥐어줬던 기타 하나로 실력을 쌓아 빌보드 차트까지 올라갔다. 아마 그의 외로운 삶에 유일한 은 기타가 아니었을까.

노래도 좋은데 사연을 알고 나니 더 울컥했다. 사람은 각자마다 각자의 인생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내 신세보단 그의 인생이 더 평탄치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가고, 이렇게 버텨낸다. 이 사람은 기타에 그 무엇보다 진심일 것이다.


면서 다가온 수많은 외로움의 깊이를 감히 평범한 나같은 사람이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끝내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결실을 만들어냈다. 그래, 이런 사람도 있는 거였다.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꼭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다 보면 좋은 순간들 또한 오지 않을까.




여행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여행이었다.


6/11 일요일, 다시 서울로 복귀한.

3박 4일의 여행이 나의 일상에 어떠한 작은 변화가 있을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다.

잘 살고 있으니 괜찮다.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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