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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쭉정이 Oct 14. 2023

피해자와 그 가족들로부터 알게 된 것

지친 마음에 힘이 나게 하는 한 가지

야간시간, 당직근무 중이었다. 어느 한 아주머니가 경찰서를 방문하였는데, 본인은 고가의 물건을 취급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사장님으로 조금 전 손님을 상대로 물건을 팔던 중 돈을 잘못 계산하였음에도 그대로 물건을 가져가버렸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피해금액은 수천만 원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현금거래였기 때문에 피의자에 대한 인적사항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는 없는 상태였다. 우선 급한 대로 사건을 접수하고자 아주머니를 상대로 고소장을 작성하려 했는데, 아주머니가 피해를 당한 충격으로 고소장을 작성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천천히 당시 상황을 여쭤봤지만 아주머니는 하염없이 울면서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다.


사실 당시 상황이 어떻게 일어났고 그 시간과 장소는 무엇이며 피의자 인상착의를 확인하는 건 기초수사에서 중요한 내용이다. 기초 사실관계가 정확히 정리가 되어야 수사를 진행할 때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서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머니 얼굴을 보니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경찰서에는 매일같이 다양한 피해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고 그만큼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유독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나이대가 비슷해서였을까, 아니면 사기 수법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방법이라 그랬을까. 만약 우리 엄마였으면 지금 마음이 어땠을까.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갑자기 수천만 원을 피해당했는데 어느 누가 곧바로 마음을 차분하게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만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 옆에 달라붙어서 진술이 되는 대로 고소장을 대신 작성하면서 사건을 접수하던 중 가족들이 찾아왔다.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이 부리나케 달려와 아주머니 안위부터 확인하셨다. 그 후 자초지종을 차분히 설명드린 뒤 마무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주머니와 가족분들은 조금 안정을 찾으셨다. 그날 당직근무를 하면서 유독 마음이 쓰였던 날이다.




고소 고발을 다루는 부서에 있다 보니 출근하면 다양한 내용과 다양한 죄명의 여러 사건을 접하고 있고, 그렇게 하루가 매일 지속되다 보면, 가끔은 고소 고발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치여 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사적인 감정은 덜어내고서 법률적으로 논리적으로 사건을 검토해야 하다 보니 나의 감정 또한 다소 메마르거나 무뎌지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왔던 이 사건을 접하면서, 아주머니를 걱정하는 가족들의 진심 어린 모습이나 수사관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동했던 것 같다.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다양한 사건을 나름 경험했다고 생각했지만 대단한 것은 없던 것 같다. 결국은 인간애, 사랑하는 그 마음이 전부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수사뿐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결국은, 우리는 사랑에 의해 움직이고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




작지만 소중한 나의 초심이 다시 한번 떠오른 시간이었다.

결국 수사를 하고자 했던 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 생긴 의지였다.


그 초심이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인 만큼

변질되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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