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들어오는 고소 고발 사건들, 반복되는 조사와 수사, 수많은 민원인의 상대, 그리고 피의자의 불송치 또는 송치 결정까지.
누군가의 혐의를 판단하는 일이란 날을 세워야 하는 만큼 늘 긴장되는 일이지만몇 년간반복하다 보니마음 한 켠이 무뎌진 것 같았다. 그렇게 무료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 특별한 새로움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어릴 적 꿈은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싶었다. 잘못한 사람을 내 손으로 정정당당하게 처벌하고 싶었다. 그게 이 세상의 정의라고 생각했고, 다행히재미없고 융통성 없는진지한 성격이었기에 그런 일을 잘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달랐다. 수사가 꼭 가해자 피해자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었고, 억울하게 고소당한 피의자들도 상당했으며, 예측불가능한 민원 또한 다양했다. 정의를 위해 맞서 싸운다는 거창한 것보다는 그저 고소 고발 내용을 정리해서 법리대로 검토 후 결정을 하는 것에 가까웠다.단지 누군가의 칼자루가 될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일하는 사무실을 보면 묵묵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직장뿐 아니라 조금만 돌아보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에게도 꿈이란 게 있을까. 꿈이란 건 단지 한때 철없고 순수했던 시절에나 할 수 있던 착각 같은 건 아니었을까.
오랫동안 수사부서에 있던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여쭤봤다. 어떤 힘으로 이 생활을 견뎌왔을지 궁금했는데, 대답은 의외였다.
'나는 그저 국가가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했어.그렇게 지내다 보니, 힘든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자연히 해결되더라고'
그렇다. 사실꿈이란 건 거창한 욕심이 있었다기 보단 오히려 순수한 것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서, 옳은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한때우리에게 간절한 꿈이었다.
대게 직장생활을 잘하는 선배들을 보면안정되고 변수 없는 자세를 유지한다. 그러면서도여전히 기본을 지키면서 중요한 순간일수록 그 누구보다 철저하고칼같이 원칙을 지킨다.장수의 비결인 것 같다.
거창하게 성과를 내려거나 승진에 욕심을 부리기보다는언젠가 다가올 때를 기다리며, 그보다 그저 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퇴근하는 자들이 진정한 프로인것 같다.묵묵하게한 걸음씩 나아가며 여전히진심을다하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분명 한 때 나보다 더 거창하고 순수한 꿈을 꾸었던자들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우리는 여전히 꿈을 이뤄가고 있는중이었다.
잠시 방황해도 좋으니, 천천히,그저 올바른 길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