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반복되는 출근길, 다이나믹한 일상 속에서도 무료함이 느껴지는 사무실에서 일과를 보내면 어느새 시계는 퇴근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기쁨과 보람된 시간임에도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늘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은 매너리즘이 곧잘 찾아온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렇게 맞이하는 퇴근시간. 나의 감성은 아직 살아있는 걸까, 아니면 그마저도 이제는 순응해 버렸을까. 퇴근길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왜인지 회사 옆에 있는 절에 가보고 싶다. 조금 걷다 보니 사찰 앞에 환하게 걸린 갓등들이 보인다. 이상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의 안정감이다.
저 멀리 법당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마다의 간절함이 보인다. 어떤 사연이 있어 저리도 간절할까. 멀리서 한참을 바라봤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삶의 의지와 간절한 소망은 과연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나에게도 그러한 간절함이 전달되었다. 바라보고 있자니 감성이 절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신기하게도 하루의 고단함이 서서히 풀어졌다.
최근 제주도로 휴가를 다녀왔다. 제주도에서 심리학 관련 강의를 들었는데, 사람들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었다. 대단한 물질을 얻었을 때나 또는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때가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편한 소수의 인원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연구의 결과였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낮다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였다. 나름 충격적인 결과다.
사찰에서 무료해진 감정이 다시 채워지면서 문득 제주도의 심리학 강의가 생각났다. 오늘 나의 공허한 마음이 달래져서일까, 그렇게 떠오른 기억은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서 느껴지던 갈증이 해소되는 순간이다.
법과 원칙을 첨예하게 따져서 피의자에 대한 혐의가 인정되는 논리를 세우는 것이 경찰이 당연히 하는 업무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렇게 혐의를 확인하는 과정은 결국 정의를 실현하기 위함인데, 피의자에 대한 설득이 없는 수사 결과는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수사관들은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늘 타인을 설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설득되는 때는 원리원칙에 입각할 때가 아닌 감정적인 소통이 될 때다. 전문용어로 '라포'를 형성한다고 한다.
피의자들도 사람인지라 원리원칙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감정, 자존심, 그리고 상황들이 허락하지 않을 뿐이다. 수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결국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은 감정에 있다.
사찰에서 어딘가 해소되지 않던 공허함이 풀어지면서 사람이 설득되는 방법 또한 이와 같음을 느꼈다.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궁극적으로 물질적인 것이 아닌 살아있는 감성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결국 완성된 수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즉 설득하는 힘이 필요하다. 사람을 세심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발견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