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미미지가 생각의 한계다
소설가들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로 다룬다.
말은 내적인 느낌을 문자로 나타내는 기호일 뿐, 그 느낌의 본질은 아니다.
- 어슐라 르 귄(Ursula Le Guin)
‘어떻게 공부하는가?’에 관해 지금까지 살펴보았다. 여러 번 강조했듯이, 공부는 잘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지금부터는 조각으로 나눠 설명했던 ‘공부의 구조’에 관해 정리하고, ‘더 큰’ 공부를 만들고 ‘더 오랫동안 잘’ 공부하는 방법을 다룬다.
공부의 구조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자. 공부하는 것은 공부하는 시점인 현재까지 인류가 축적한 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하거나 몸에 익히는 것이다. 그 방법은 학습과 경험이다. 이것은 근육의 기억으로도 남지만, 대부분은 머릿속에 저장되는 뇌의 기억으로 남는다. 뇌의 기억에는 감각과 같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언어와 이미지’로 전환되어 저장되고 다시 재생된다. 또한, 뇌의 좌우에는 서로 다른 기능을 하기 위해 다른 기억이 저장된다. 앞에서 좌뇌는 언어, 논리, 수리에 관련된 기능을 하고 이와 관련된 것들이 저장되며, 우뇌는 감성, 아름다움, 통합적 사고와 관련된 기능을 하고 이와 관련된 것들이 저장된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공부하는 목적’이다. 공부하는 목적은 그것을 미래에 활용하기 위해서인데, 공부하는 대상은 전부 과거의 것들이다. 물리학이든, 수학이든, 언어든, 음악이든 모두 과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렇게 과거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공부한 것을 활용하게 된다. 그러나 공부한 것 중 무엇을 미래에 더 가치 있게 활용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려워 공부의 대상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우리는 목표로서의 꿈을 만들고 공부의 대상을 꿈을 향해 정확하게 조준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잘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잘 써먹는다고 해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꿈을 이루는 것은 남과 다른 무엇을 미래에 이루어내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과거만 공부해서는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꿈을 이루는 것은 내가 한 공부 위에 존재하는 무엇을 이루는 것이고,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잘 공부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데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절대 아니다. 충분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창조적인 능력이다. 그렇다면 창조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감각을 키워야 한다.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의지를 갖고 보는 능력이 그것이고, 듣는 능력이 그것이고, 맛을 느끼는 능력이 그것이다. 촉각도 후각도 마찬가지다. 물론 오감 중에 한두 가지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다른 감각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 감각은 신호로 느껴지는 감각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세계를 인식하려는 의지의 결과이기도 하다.
스티븐 윌트셔(Stephen Wiltshire)의 별명은 ‘인간 사진기’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열네 살 때였다. 불행하게도 윌트셔는 세 살에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다섯 살에는 특수학교에 입학해 선생님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전까지는 말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곧 윌트셔가 그림에 놀라운 소질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윌트셔는 도시나 건물, 자동차 등의 정밀묘사에 소질을 보였다. 윌트셔는 도심의 상공에서 헬리콥터로 한 번 돌아보고는 며칠 후 자신이 본 도시를 정밀하게 그려냈다. 그가 그린 그림은 매우 정밀해서 건물의 유리창 하나도 세세하게 표현했으며, 전체적인 도시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였다.
자폐증은 발달장애의 하나로 의사소통 및 언어, 행동, 사회적 상호관계 발달에 장애를 유발하는, 뇌에 문제가 생기는 증후군이다. 그런데 자폐증을 앓는 일부는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뇌 기능에 대한 보상체계가 작동해 특별한 능력이 증폭된다. 기억, 암산, 음악, 미술 등의 분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는 것이다. 윌트셔는 보는 감각, 기억, 그림을 그리는 능력에서 천재성이 발달했다. 이것을 의학적으로는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윌트셔처럼 볼 수는 없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밤에 숲을 혼자 걸을 때처럼 예민해진 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이롭지도 않다. 하지만 무언가를 집중해서 받아들이는, 세계를 내 안에 들여놓는 감각의 과정을 아무렇게나 해서는 제대로 된 정보가 들어올 수 없다.
이렇게 잘 감각된 정보는 우리 뇌에 감각 그 자체로, 언어로, 이미지로 기억된다. 기억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까지 학습과 경험으로 축적된 뇌의 기억과 비교되고 편집되고 교정되고 삭제되면서 새로운 기억으로 재편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릿해지고 무엇과 연결된 기억인지 잊히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윌트셔의 시각적 기억은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정밀하게 뇌에 기록되고 다시 정밀하게 재생된다. 때로는 이 감각이 과거의 학습과 경험을 순식간에 불러내 현재의 경험처럼 되살리기도 한다.
어려서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은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는 후각이 남다르게 발달했다. 그녀는 냄새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냄새는 우리를 수천 미터 떨어진 곳에 많은 시간을 건너뛰어 데려다주는 힘센 마술사다. 과일 향기는 나를 남부의 고향으로, 복숭아 과수원에서 장난치던 어린 시절로 둥실둥실 띄워 보낸다. 슬며시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냄새들은 내 마음을 기쁨에 녹아내리게도 하고 슬픈 기억에 움츠러들게도 한다. 지금 냄새에 관해 생각하는 동안에도 내 코는 가버린 여름과 멀리서 익어가는 곡식의 달콤한 기억을 일깨우는 향기로 가득 찬다.”
헬렌 켈러의 표현대로 감각은 뇌에 입력이기도 하지만, 입력되는 과정을 통해 기억을 재생하게 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감각과 과거의 감각적 기억이 입체적으로 융합하면서 입력된 정보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창조성이다. 생각해보라. 윌트셔가 자기가 본 기억을 다시 그려낸 그림은 무엇인가? 다른 예술가들이 그리는 풍경화와 마찬가지로 윌트셔는 자신이 본 것을 해석을 통해 다시 탄생시킨 놀라운 창조물이다. 윌트셔의 그림이 실제와 똑같아서 놀라운 작품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이 보는 세계를 그리기 때문에 놀라운 작품이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다름’이다. 전반부에서도 설명했지만, ‘다름’은 곧 ‘창조성’의 재료다. ‘같다’는 말은 새로울 게 없다는 말이다. 헬렌 켈러의 후각도 마찬가지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은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의 삶을 다룬다. 튜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에니그마(Enigma)라는 암호생성기를 해독하는 기계를 동료들과 발명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다. 튜링은 암호 해독을 통해 전쟁을 종식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지만, 군사기밀이라는 이유와 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전후 30여 년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허구가 많이 가미되어 원작인 앤드류 호지스(Andrew Hodges)의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Alan Turing: The Enigma)」과 달라진 부분이 많지만, 튜링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의 대사는 다름에서 나오는 창조성의 세계를 명확하게 묘사한다.
“당신이 평범하지 않기에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된 걸요. 난 믿어요.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내는 거라고.” 영화 마지막 부분의 이 대사는 사실 전반부에서 튜링 자신이 한 말이기도 하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