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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18. 2024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혼자 지키는 언덕이 있다

점심때쯤이면 가끔 우리 집을 기웃거리시다, 마당 끝에 서서 건너편을 유심히 살피다 가시는 마을의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요즘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몸이 많이 불편해지셔서 바깥출입을 못 하시고 계신다 합니다.


처음엔 동네 할머니께서 지나시다 힘들어 쉬시나 보다며 그러려니 했는데, 몇 번 반복되길래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 말을 붙였습니다.


"할머니! 저 윗동네 사지죠? 지나시는 것 몇 번 뵀어요. 차 한 잔 드릴까요?"


"마당에 웬 꽃을 이렇게 많이 심어놓았어요. 잘 가꾸어 놓고 사시네~"


남에 집 마당 구경 온 사람처럼 동문서답입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할머니는 목을 빼 강 건너편을 가리킵니다.


"우리 집 양반이 논에 갔는데 밥때가 됐는데도 안 와! 걱정돼서 나왔어요."


마을 윗동네에 사시는 노인네 분인데 강 건너편에 논이 있다 합니다. 바깥어른께서 농사지으러 거기까지 다니신다고 합니다.


점심때가 돼도 밥 먹으러 오지 않는 남편이 걱정돼, 그쪽을 바라보기 위해 오시는 겁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건너편 논이 잘 보인다 합니다.


먼 거리라 내 눈에는 사람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할머니! 멀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할아버지가 보이세요?"


"저기 봐! 이쪽으로 돌아보다 일하다 그러네! 경운기가 고장 났나? 왜 경운기에 매달려 있지?"

     

내 물음에 혼잣말처럼 대답을 하면서도 시선은 강 건너편입니다. 할머니의 시선 방향을 따라 두리번거려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푸르러진 강빛과 논과 비닐하우스 그 너머로 봄이 한창 무르익은 까마득한 산들뿐입니다.     

할머니에게 우리 집 마당은 '망부(望夫)의 언덕'이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혼자 지키는 언덕이 하나씩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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