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_아베 코보
휴학을 결심한 건 단순히 책 한 권 때문이었다.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라는 책이다. 휴학을 하기 직전에 이 책을 읽었고, 최근에 다시한 번 읽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취미가 곤충채집인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직업은 교사이다. 그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곤충을 채집하러 다닌다. 어느 여름날 그는 휴가를 내고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 사구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생김새가 기묘한 어떤 마을에 도착한다. 사구는 점점 올라가는데 마을은 평지에 펼쳐져 있어 꼭 마을이 모래 웅덩이 안에 갇힌 꼴인 것이다. 남자는 촌장의 도움으로 마을안의 한 과부 집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마을에는 그 생김새만큼이나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마을 사람 전체가 모래벽을 파내서 밖으로 덜어내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다. 과부는 남자에게 모래를 퍼내지 않아 한 집이라도 모래에 잠기게 되면, 연쇄작용으로 마을 전체가 잠겨버리고 만다는 말로 이 광경을 설명한다. 남자는 곧 떠날 것이므로,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런데 다음날, 남자는 모래 구덩이 안에 갇힌다. 자고 일어나니 전날 자신이 타고내려왔던 사다리가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과부에게 항의를 해보지만 그녀는 입을 다문 채 여기서 나갈수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결국 남자는 부삽으로 모래를 퍼내는 삶을 살게 된다. 탈출을 시도해 성공할 뻔한 적도 있으나, 결국에는 다시 구덩이 안으로 던져진다. 그렇게 남자는 모래를 퍼내는 삶에 점점 동화되어 간다. 덫을 만들어 새를 잡은 뒤 쪽지를 매달아 날려 보내는 탈출 방법을 고안하기도 하지만, 이미 그는 과부와의 관계와 모래를 퍼내는 일상에 익숙해진지 오래다. 그리고 과부는 임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덫이 모세관 현상에 의한 유수장치 역할을 해 물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남자는 자신이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완벽히 망각하고 만다. 남자의 관심사는 이제 물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뿐이다. 곤충 채집따위는 이제 모래에 파묻혀 버린 것이다. 과부가 하혈을 시작해 마을 사람들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가 마을이 텅 비고 그토록 갈망하던 사다리가 내려왔음에도, 남자는 밖에 나가 몇 발자국을 걷다 다시 구덩이로 돌아가고만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제 마을사람들에게 자체적으로 물을 생산하는 방법을 어떻게 설명할까에 대한 고민뿐이다. 그렇게 웅덩이 속에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남자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결말을 맺는다.
휴학을 하기 전에이 책을 읽었을 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모래 구덩이에서 모래를 퍼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했다. 그 일상 속에서 덫에서 끌어올려지는 물 같은 부가가치를 발견한들, 그게 큰 의미를 가질 리가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남자가 한심했다. 일상을 탈출하려다 또 다른 일상에 갇혔음에도 그 안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것들에 애써 의미부여를 해가며 삶에 순응 하는 모습이 나약해 보였다. 남재는 모래를 퍼내는 동시에 매몰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휴학이 끝나가는지점에서 다시 이 책을 읽고서는 생각이 뒤집혔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않는다. 휴학계를 내고 수업을 들으러 가지 않는 시간에는 그와 다른 일상이 생겼다. 수업을 듣는 대신 전화를 받고 문서를 처리하는 게 익숙해졌다. 요컨대, 모래 구덩이가 은유하는 게 개미지옥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일반적인 일상임을 알게 된 것이다. <모래의 여자>의 한 대목은 그 부분을 명확히 안내하고있다. 남자는 탈출의 한 수단으로 덫을 만들며 그 이름을 ‘희망’이라고 짓는다. 그리고 그 ‘희망’은, 남자를 탈출시키는 수단이 아닌 일상에 자리잡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희망’이라는 게 생각지도 않은 역할을 하게 된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판단할 지는 모르겠다. 나는그가 어떻게 의도했던 간에 그가 만든 덫은 이름만큼의 가치를 그의 일상 속에서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휴학의 시작은, 이전과는 다른 것들을 해가면서 일상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이었다. 일단 과제와 시험에서만 벗어나 있으면 뭐든 잘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다른 것들이 손에 익어가면서, 그로부터 파생되는 소소한 가치에 매몰됐다. 딱히 특별해진 건 없었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나쁘지 않았다. 일주일에 몇 번 약속을 잡아 친한 사람이랑 밥을 길게 먹을 수 있었고, 아침에 생각해 뒀던 영화를 저녁에 볼 수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날 그날 하루를 잘 채웠다.
일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일상을 겪으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취는, 이전의 일상을 되돌아보며 그 가치를 저울질할수 있다는 것이다. 난 지금이 더 좋다. 그래서 한 학기더 휴학을 하고 1년간을 비워볼 생각이다. 아마 또 다른 것들을 시작하고 익숙해지겠지만, 적어도 뭔가를 새로 해야겠다는 압박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글을 거의 다쓰고 보니, 다시 모래구덩이로 들어가기로 한 남자의 마지막이 기억에 남는다. 이 남자를 자신 있게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혹은 그의 일상을 부정할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누구나 인정할수 있는 삶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