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관련 상황에 대응하여 기업과 가구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지급한 정부재난지원금을 신청했다. 5부제 중 나에게 해당되는 월요일 아침, 양치를 하며 간단히 신청하고 출근했다. 카드사(하나카드) 웹사이트를 통해야 하기에 공인인증서까지 생각했으나 카드 혹은 휴대폰 본인인증만으로 생각보다 간편한 절차에 안도했다. 그리고 오늘 전액 기부가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나서야 내가 전액을 기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웹상에는 비슷한 사례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자료들을 보며 다시 생각해보니 '지원금 신청' 절차에서 '기부금액'을 입력하고 '신청완료'하는 플로우였던 것이다. 지원금 신청이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태스크를 수행한 것. 결국 회사에서 일하던 중 재난지원금을 신청한 카드사에서 문자도 받고 전화도 왔는데 안내를 받다가 "제가 하루종일 고객님들께 이런 안내를 해드리고 있거든요?" 라는 불친절한 톤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쨌든 안내받은대로 지원금 기부금액을 변경하러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하지만 이 절차에서도 헷갈렸다. '신청금액'이 아닌 '기부금액' 입력란에 '0원'을 입력해야 지원금이 전액이 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 뒤집힌 절차를 되돌리기 위해 다시 뒤집힌 절차를 밟았다. 끝까지 좋지 않은 경험이었다.
후에 알게된 사실은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이 내려왔을 때 카드 업계는 지원금 신청과 기부 신청을 별도의 기능으로 가져갈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즉, 기본적으로 지원금 신청 절차를 마무리하고 기부에 뜻이 있는 고객만 별도로 기부 신청 메뉴에서 기부하는 것. 하지만 정부의 지침은 지원금 신청 절차에 내부 신청 절차를 포함시키라는 것이었다. 물론 정부의 사업이니 정부의 지침을 따라야 했다. 인지와 행동을 유도한 것인지는 모른다.
흔히 말하는 다크패턴의 UX였다. 이는 이익을 위해 사용자를 교묘하게 속여 원하는 액션을 하게 만드는 인터페이스로 자주 경험하는 최악의 케이스인 휴대폰 본인인증이 있다. 통신사를 통한 휴대폰 본인인증이 가능한데 본인인증을 위한 앱을 설치하게 하는 탭이 디폴트라서 개인정보를 입력하다보면 어느새 앱설치를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일을 하다보면 비즈니스를 고려해 더 이득이 되는 정보와 선택지를 자연스레 강조하게 되지만 정도와 의도성에 따라 '불편', '양아치'의 수준까지 가는 경우들이 있다. VIBE 해지해보신 적 있나요..
당연히 서비스의 한 플로우를 설계할 때는 내 의사결정이 다른 구성원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파악되어야 한다. 어떤 피쳐를 내보낼 때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받고 User Test와 QA도 거친다. 페이지를 구성하는 정보들 중 안내 문구에 들어갈 단어 하나가 수많은 CS 문의를 불러올 수도 있기에 CS 팀과도 문구를 한 번 검토하곤 했었다.
플로우를 설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CS 문의량이 매우 늘어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지침에 의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담당자의 입장이 상상된다. 이로 인해 수많은 고객들을 추가로 전화응대해야했던 직원 분의 불만도 이해가 간다. 업계에서 흔히 농담처럼 얘기하곤 하는 불편한 "은행 UX"가 이번 사건으로 타의에 의해 다시 한 번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