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뉘앙세 Mar 25. 2021

아빠는 산을 좋아한다.

진짜 중요한 것들을 잊고 살지 않길 바라며. 나에게.

부산에 사는 아빠와 대각선 끝과 . 일산에 사는 .

아빠는 진심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시는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전화를 끊기 전에 몇 번이고 지나가듯 말했다.

“한번 내려와” , “내려와서 소주 한잔 따라줘”

“한번 내려와서 아빠 얼굴 좀 봤으면 좋겠다”

저렇게 말을 듣고도 몇 번을 미루다 미안한 마음이 커져 부산으로 내려왔다.


휴가를 낸 내가 기껏 부산에 내려가 계획한 좋은 시간은 아버지와의 등산이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꼭 혼자 등산하신다던 아버지.

오늘만큼은 아버지와 그 산을 같이 오르고 싶었다.


아빠는 같이 살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말을 걸었던 것 같다.

어쩜 등산을 하면서도 하는 이야기는 똑같은지.

20대엔, 언제나 나를 아이처럼 걱정하는 아빠에게 짜증을 내곤 했다.

오랜만에 보는 아빠에게서 똑같은 걱정의 말들을 듣는다.

잔소리에 나는 그저 미안하다. 사랑이 느껴져서일까.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나는 아버지를 잊고 살았다.

아빠는 변함없이 자식 생각을 달고 산다. 그래서 아빠는 나를 보면 좋아한다.


아빠가 싼 김밥을 나눠먹으며 새로운 주제를 꺼내본다. 여행.

꽤 오랜 시간 아버지는 여행이란 걸 가지 못했다.

사실 여행에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다. 여행 얘기를 해본 적 없으니.

해외여행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시냐 물었다.

없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술술 여러 곳을 이야기하셨다.

겨울에 일본 온천을 가고 싶으시다고,

체코와 같은 동유럽도 가보고 싶으시다고,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에도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근데 지금 이렇게 하는 등산이 더 좋다고 하신다.


내년부터 연금이 나온다는 우리 아빠. 연금 200만 원 자기는 다 못쓴다며

서른 넘은 아들 앞에서 밥값 내고 싶다며 웃는 바보 같은 아빠.

우리 아들 장가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같이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그 말 조차 혹시 부담 줄까 지나가듯 흘려 말하는 바보 같은 아빠

괜한 말하듯 웃는 아빠의 미소가 내 가슴을 휘젓는다.


나는 가족 한정으로 이기적이다. 가족에게만 나는 나쁘다.

세상 모두에게 노력하고 정작 가족에게는 소홀하다.

매년 꼬박꼬박 친구들과 해외를 나가는 나한테 화가 났다.

명절과 생신 적당한 축하로 스스로 잘했다 여기는 나에게 화가 났다.

내가 해주고 싶은 것, 아니 기본적인 해야 하는 것들만 해버리고

정작 아빠가 원하는 것에는 모른척하는 나에게 화가 났다.


일본 온천여행 비행기 값과 동유럽 비행기 값을 알아보며 괜히 눈물이 난다.

아빠는 나를 너무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

항상 나를 사랑에 빚진 사람으로 만든다.

지금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잘해도 부모님이 떠난 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일산으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나는 다짐한다.

못난 놈 중에 덜 못난 놈 해야지. 빚진 놈 중에 그나마 좀 갚은 놈 해야지.

후회하더라도 잘했다 생각할 몇 가지는 더 남겨놔야지.

내 평생 다 이루어드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부터라도 아빠의 조심스러운 바람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지.


하나씩 하나씩 시작한다.

아빠는 산을 좋아한다.

또 아빠는 나를 좋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