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함이 생기기도.
최근에 망원동 독립서점에 간 적이 있다. 통유리로 안이 훤하게 들여다 보이는 공간. 작고 좁은 공간에 사람이 여럿 들어차 있었다. 고개를 숙이곤 조용조용하게 책을 둘러보는 그림, 투명창 밖에 있었는데도 그 공간 안의 볼륨을 느낄 수 있었다. 망원을 한차례 돌아보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었다. 나는 다시 그 독립서점 앞을 지나게 되었다. 낮과는 달리 어슴푸레해진 길목에, 그 독립서점은 여전히 고집스럽고 또 고요하게 노오란 빛을 냈다. 불현듯 전자레인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엔 왠지 군고구마가 데워지고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책방 안으로 들어섰다.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책을 둘러보고 있는데 책방 주인이 슬며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혹시 책 추천해 드릴까요?”
나는 맨 처음엔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했다가 금방 정정했다.
“아, 저 책 추천 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평소 같으면 추천받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우연히 들어와 본 김에, 이 뜨끈한 군고구마를 품고 있는 것 같은 책방의 주인이 추천해 주는 책이 궁금했다. 주인은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평소에 좋아하는 책의 종류가 있는지, 작가가 있는지 간단히 물었다. 나는 … “음, 저는 최은영 작가의 책을 가장 좋아하는 편이고요. 장편보단 단편을 선호해요. 아 양귀자 선생님의 책 <모순>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소설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내 대답을 듣자 주인은 망설임 없이 몇 권의 책을 골랐다.
첫 번 째는 백수린 작가의 소설 <눈부신 안부>, 두 번째는 김화진 작가의 소설 <공룡의 이동경로>, 세 번째는… 기억이 안 난다. 일단 백수린 작가의 소설은 두 편정도 도전해 봤지만 잘 읽히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 소설은 내려두고 김화진 작가의 소설 <공룡의 이동경로>를 살펴보았다. 책방 주인은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문장을 좋아한다면 김화진 작가의 소설도 꽤 마음에 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나는 주머니가 풍족하지 않았지만, 회사 도서비가 아니라 사비로 책을 사고 싶지 않았지만. 왠지 그 책방에서 그 책을 사고 싶었다.
책방 주인의 말처럼 소설은 좋았다. 단숨에 읽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잃기 싫어서 야금야금 조금씩 읽었다. 이번 주말에 다시 책 방에 가서 책을 또 추천받고 싶다. 책방 주인이 다음엔 또 어떤 책을 추천해 줄까? 그 책도 내 마음에 쏙 들까? 주인이 추천하는 전혀 다른 장르의 책을 추천받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심지어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도 읽어볼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우연히 책 방에 들러 나답지 않게 책도 추천받았더니 내게 없던 유연함이 생긴 것만 같다. 새로운 분야로 시야를 넓히는 유연함. 어쩌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감각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