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호정 Jul 08. 2019

네모 속에서 동그라미로 사는 법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을 보고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모의 꿈'이란 노래가 있다. 무척이나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웠는데, 어째서인지 당시에는 동요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따라 불렀다. 둥글게 살아가라는 어른들의 말과 모순된 네모난 세상 속에서 살게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반복되는 가사와 특유의 밝은 분위기에 아직까지도 생각나면 흥얼거리곤 하는 노래다. 누군가 그래서 지금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냐고 묻는다면, 재미없는 농담이라도 들은 양 손사래를 치고 말 것이다. 나의 삶의 모양은, 어디론가 멀리멀리 굴러갈 수 있는 동그라미보단 점잖히 안정적으로 넓은 면을 바닥에 대고 의연히 살아가는 네모에 가까워졌다.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은 동그라미와 네모 얘기로 시작한다. 온갖 둥근 것들을 보며 자라지만, 네모 속에서 살게 되는 역설이 한 남자로 집중된다. '베르트랑(마티유 아말릭 분)' 가장의 책임감과 2년째 실직 중인 미움을 한 몸에 받는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단 쓸쓸한 가로등 불이 어울렸다. 그의 얼굴빛은 길게 드리운 그림자처럼 어두웠고, 그의 삶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짙은 푸른색만이 필요할 것이었다. 눈 앞에서 모욕을 당해도 자신의 자리와 처지 때문에 멋쩍은 웃음으로 재미있는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그는, 영락없는 실패자였다. 그는 어느 날 눈 앞에 놓인 남자 수중 발레 인원 모집 공고를 보고 수영장으로 향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많은 실패가 있다. 아침에 놓쳐버린 버스서부터, 실수투성이 프레젠테이션 발표, 다섯 번 고치고도 거부당한 기획서, 부랴부랴 갔지만 가장 좋아하는 빵이 품절되기도. 실패란 것은 참으로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 곳곳에서 덫을 놓고 밟기만을 기다리 듯하다. 베르트랑이 향한 수영장에도 이 덫에 한두 개씩 걸려 정신 차려보니, 실패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있었다. 취업, 사업, 사랑, 사람, 가정 그리고 꿈까지도. 수영장에는 그렇게 수많은 실패와 고민들이 가득했다. 절망의 맛을 보았던 만큼 필사적일까 했지만, 그들은 단지 코치의 시낭송에 맞춰 물에서 허우적댈 뿐이었다.

 실패는 실패로 존재할 뿐이었다. 모든 실패가 값진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실수였다거나 운이 없었다거나 하는 흔한 이유가 덧붙여진 특별할 것 없는 실패로, 격정적이거나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보통의 실패. 그것이 그들이 겪은 것이었다. 잔인할 정도로 익숙한 실패들을 각자 하나씩 갖고 있었다. 불행히도 실패는 끝이 없다. 최악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조차, 더 최악으로 그들을 이끈다. 끝없는 실패는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든다. 현실의 좌절은 그들을 수영장으로 이끌었지만, 수영보단 발버둥에 가까운 몸짓을 해댈 뿐이었다. 그렇게 바라보던 것들이 커다란 벽이 되어 절망에 빠져버렸을 때, 그들은 서로 같은 곳을 보게 된다.

 


 그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국제 수중 발레 대회에 지원한다. 무려 자신의 나라인 프랑스를 대표하며 출전하게 된다. 그들에게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것이 처음부터 그들의 심장을 뛰게 하거나 의기투합하도록 하진 않았다. 어쩌면 막연한 목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지 나아갈 곳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작은 성취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함께라는 단어로 뭉치자 유대감도 생겼다. 그들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긴밀해졌는데, 커다란 감정싸움으로 이어져 극의 긴장감을 더하신 대신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며 유쾌한 관계를 유지한다. 세상 노고를 다 겪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의연한 '아재 케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묘한 긍정의 힘을 준다.

 그들의 의연함은 실패에서 우러러 나오는 듯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마주하는 장애물을 맞서 싸워 극복하는 것이 아닌, 한계를 받아들이고 단지 주어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들이 성장하는 방법이었다. 패기롭진 못해도 무리하지 않았고, 젊지 않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다만, 한걸음 한걸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에도 굴하지 않고 관성을 싣고 꾸준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기에 그들도 '도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기분 좋았던 이유는, 익숙한 모양으로 펼쳐진 실패들이 여전히 어긋난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패 끝에 어떠한 모양으로도, 도전하고 나아갈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들이 보여준 낙담과 불평불만은, 여유와 유쾌함이 되어 이야기를 잔잔하게 이끌어간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실패 속에서 살아가는 스스로가 미워질 때쯤, 이 영화를 만나게 된다면 매력적인 캐릭터들에게서 친근함 속 따스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딱딱한 네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들과 함께 둥근 모양을 이룬 그들의 모습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말해준다.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Sink or Swim, Le grand bain


코미디 | 프랑스

2019.07.18 개봉예정

122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질 를르슈

주연 마티유 아말릭, 기욤 까네, 베누아 포엘부르데, 장 위그 앙글라드, 비르지니 에피라, 레일라 벡티, 마리아 포이스 등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이란 영원한 숙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