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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Jul 26. 2019

'맛 미'가 아닌 '아름다울 미'

영화 <알랭 뒤카스 : 위대한 여정>을 보고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의점 도시락을 샀다. '신상'이라는 두 글자에 이끌려 별 고민 없이 고른 것이었다. 5개 정도의 반찬이 보기 좋은 모양으로 담겨있었고, 뚜껑을 덮고 3분 30초 전자레인지로 데우니 연기도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옅은 플라스틱의 냄새도 났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 급급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요리를 먹는다는 느낌보단 젓가락을 들어 입에 밥을 넣고 이를 움직여 씹는다는 단순한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목 뒤로 음식들을 넘겼다. 다 먹은 뒤에는 방금 먹은 도시락이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렇게 먹는다기보단 끼니를 때운다는 느낌이 익숙해지자, 더 이상 먹는 것을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모양새가 된 것이 슬프진 않았다. 다만 제대로 된 '요리'를 먹어봐야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영화 <알랭 뒤카스 : 위대한 여정>은 이런 나에게 요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타 셰프인 그는, 자신의 자리에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보여주는 미식의 세계는 그간 알던 요리의 개념과 깊이가 달랐다. 정점에 오른 그였지만, 그는 더욱 욕심을 냈다. 더 알고 싶어 하고 멈추지 않았다. 그의 요리를 향한 열정을 여행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그가 베르사유 궁전 안에 레스토랑을 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지 보여준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업의 과정임에도, 그는 요리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여 화면 가득 풍미를 이끌어 낸다.



 요리란 음식의 가장 마지막 과정에 놓였으므로, 어쩌면 당연하게도 가장 처음인 재료가 되는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그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재료들이 갖는 날것의 모습을 보기 위해, 먼길을 떠나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때론 헬기까지. 그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었다. 그는 세계 각지에서 재료의 가장 날것의 맛까지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요리를 완성시켰던 것이다. 원산지를 글자가 아닌 눈과 입으로 확인하기에 진정 최고의 재료를 선별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맛보고 생각하였으므로 글자에 갇히지 않고, 요리를 틀 속에 가두지 않았다.

 그가 틀을 정해놓지 않는다는 것에 매우 재미있었던 일화가 있는데, 그의 밑에서 요리를 배웠던 다른 요리사가 알랭 뒤카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꼭 알랭 뒤카스가 레시피북을 찢어버린 이야기를 하곤 했다. 기껏 만들어 놓은 레시피북은 오히려 발전을 막는 한계점이 되어버리고, 음식의 여러 가능성을 정답과 오답이라는 것으로 답을 내려 버린다는 알랭 뒤카스의 가르침이 이야기 속에 있었다. 보통이라면 당연하듯이 레시피를 따르고 그것이 완성이라 생각하곤 하지만, 그는 끝을 정하지 않고 끝없이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언제나 새로움을 찾아가고 있었다.



 또한 그가 보여준 요리는, 단순히 '맛있는 맛'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손님들에게 '맛있는 기억'을 새기려 했다. 때문에 요리를 꾸미는 주변의 분위기나 느낌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가 보여주는 깐깐함은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감각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영화는 말해준다. 레스토랑의 가구들, 셰프들의 복장, 그리고 작은 숟가락 하나까지. 그는 어느 하나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몇 번이고 되새기며 고민한다. 그렇기에 그는 매번 새로운 레스토랑을 열 때마다 큰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움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맛있는 기억을 선사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수많은 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가 최고의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단순히 재료가 되는 동식물에 대한 감각이 좋았던 것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그 재료를 키우고 만드는 것인지를 확실히 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세프라는 직업으로 요리를 완성시키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고의 요리사가 보여주는 요리에 대한 영화임에도, 그가 요리하는 장면은 단 한 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의 곁에서 함께 움직이는 그의 팀은, 서로 의견을 나누고 그가 생각하는 요리의 레시피를 훌륭하게 완성해낸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과거 자신이 스쳤던 모든 인연을 놓지 않고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요리는 사람으로 귀결된다. 요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서 사람이 있었다. 원재료를 가꾸는 농부에서부터, 요리를 맛보는 손님들까지. 단순히 눈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닌 모든 감각으로 맛 좋은 기억을 남기도록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음식을 맛보고 흐뭇하게 미소 짓는 손님들의 모습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그가 보여준 미식 여행은, 과연 미식의 '미'자가 '맛 미(味)'가 아닌 '아름다울 미(美)'였음을 보여주는 여행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요리를 맛보는 것처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식지 않은 그의 열정이 어디까지 요리를 완성시킬 수 있을지, 앞으로도 이어질 그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며 글을 마친다.




알랭 뒤카스 : 위대한 여정

The Quest of Alain Ducasse, 

La quête d'Alain Ducasse


다큐멘터리 | 프랑스

2019.08.01 개봉 예정

80분, 전체관람가


감독 질 드 메스트르

주연 알랭 뒤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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